정(情)은 물결따라 끝이 없이 가리
정(情)은 물결따라 끝이 없이 가리
  • 금혜지 기자
  • 승인 2013.05.11
  • 호수 138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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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의 절세미인 황진이의 삶과 사랑

“양반들에게, 세상에 복수할 것입니다. 그리고 당신에게도요. 저의 사랑을 잘라내고 저를 기녀로 눌러 앉히신 것이 그리 좋은 일만은 아닐 겁니다.”
드라마 「황진이」에서 양반집 규수였지만 기생으로 전락하는 황진이의 대사다. 이렇게 여러 매체에서 우리가 접한 황진이는 기생이지만 지성과 미모를 고루 갖춰 부당한 현실에 대항하는 인물로 묘사된다.

양반집 딸에서 기생이 되기까지
도서 「황진이 문학유산 정리」에 따르면 황진이는 당대 명문가 양반이었던 ‘황 진사’와 기생 ‘진현금’ 사이에서 탄생했다. 현금이 냇가에서 빨래하고 있을 때 황 진사가 물을 달라고 해 표주박에 물을 건네줬다. 황 진사는 물을 마신 뒤 현금에게 돌려주며 마시라고 했는데, 표주박에는 물이 아니라 술이 담겨있었다. 이것이 인연이 돼 황진이가 태어났다고 한다. 진이는 황 진사댁 고명딸로 유모와 함께 별당에서 키워졌다. 양반 가문에서 자라던 진이의 나이가 어느덧 혼기에 찼을 무렵, 황 진사의 정부인은 진이를 불러 앉히고 태생의 진실을 알려준다.

진이는 자신의 신분이 확인된 이상 더는 황 진사댁에 머물면서 별채 아씨 노릇을 할 수 없다고 생각했다. 그녀는 생모인 현금의 소재를 추적했고 현금이 몸을 파는 비천한 기생이었다는 사실을 접한다. 그녀는 생모가 기생 출신임을 안 뒤 자신도 기생이 되고자 결심한다. 황진이는 ‘놈이’란 종을 기둥서방으로 삼고자 그에게 정조를 줌으로써 기생이 되는 관문의식을 치른다.

황진이가 유혹한 남자들
‘벽계수’는 ‘조선 천지의 군자’로 자타가 인정하는 점잖은 학자였다. 그러나 황진이의 미색에 빠져 지조를 던져버리고 말았다. 그를 유혹하기 위해 황진이가 지은 시를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靑山裏碧溪水(청산리벽계수) / 청산리 벽계수야
莫誇易移去(막과이이거) / 쉽게 떠나감을 자랑하지 마라.
一到滄海不復還 (일도창해부복환) / 일도창해로 떠나면 다시 오기 어려워라
明月滿空山(명월만공산) / 명월(明月)이 만공산할 때
暫休且去奈何 (잠휴차거나하) / 잠시 쉬어간들 어떠리.

황진이가 이 시를 읊자 고고한 선비인 척해 황진이의 마음을 얻으려 하던 벽계수는 그녀를 돌아보다 낙마했다.

▲ 하지원 주연의 드라마 황진이 (위)와 송혜교 주연의 황진이 (아래)의 한 장면
‘소세양’은 중종 4년에 등과하여 시문에 능했고, 벼슬이 대제학까지 오른 인물이었다. 도서 「나 황진이」에 따르면 그는 황진이의 재주와 얼굴이 뛰어나다는 말을 듣고는 친구들에게 “내가 황진이와 한 달을 지낸다 해도 마음이 움직이지 않을 자신이 있다”며 “하루라도 더 묵으면 사람이 아니다”고 호언장담했다고 한다. 다음의 시는 소세양이 황진이와 30일을 살고 어쩔 수 없이 떠나려 할 때 황진이가 읊은 시다.



月下庭梧盡(월하정오진) / 달빛 아래 뜨락 오동잎 모두 지고
霜中野菊黃(상중야국황) / 서리 맞아도 들국화는 노랗게 피었구나.
樓高天一尺(루고천일척) / 누각은 높아 하늘과 지척의 거리
人醉酒千觴(인취주천상) / 사람은 취하고, 남겨진 술잔은 천이라.
流水和琴冷(유수화금냉) / 흐르는 물은 차가운데 거문고는 화답하고
梅花入笛香(매화입적향) / 매화는 피리에 서려 향기로워라
明朝相別後(명조상별후) / 내일 아침 님 보내고 나면
情與碧波長(정여벽파장) / 정은 물결 따라 끝이 없이 가리

소세양은 이 시를 듣고 탄식하면서 “나는 사람이 아니다”라며 황진이와 함께했다고 한다.

황진이가 사랑한 남자
논문 「황진이의 재조명」에 따르면 “황진이는 학식과 권세를 겸비한 많은 사대부를 희롱하고 조소했지만 그 가운데 진정한 사랑과 지식, 그리고 예기를 나눈 사람은 ‘이사종’이었다”고 전해진다. 이사종은 당시 왕을 보좌하는 관직 중 하나인 선전관이었다. 황진이는 그에게 반해 송도에서 3년, 한양에서 3년을 동거했다. 다음의 시는 이사종과의 열정적인 사랑 속에서 지어진 것이다.

동짓달 기나긴 밤을 한 허리를
버혀 내어
봄바람 이불 아래 서리서리 넣었다가
어론님 오신 날 밤이어든 굽이굽이
더디게 펴리라

“기생과의 희롱은 양반사회의 일반적인 현상으로써 양반들은 기생에 대한 존중이나 성도덕이 전혀 없었다”는 변원림 <도서 「역사 속의 한국 여인」> 작가의 해석에 비춰볼 때  당시 그들의 사랑은 파격적이었다. 선전관이었던 이사종이 아무리 출중하다 하더라도 기생인 황진이와 규범과 신분, 조건, 풍속을 초월해 나누었던 사랑은 세상의 이목을 집중시키는 사건이었을 것이다.

안남연<경기대 문예창작학과> 교수는 이들의 사랑에 대해 “그들이 나눈 것은 애정뿐만이 아니라 시와 소리였으며 남녀의 성을 초월한 인간적인 유대였다”며 “예기의 일치, 혼육의 일치로 보는 것이 타당할 것이다”라고 해석했다. 그러나 결국 이들은 엄혹한 신분제도 앞에서 6년의 세월을 뒤로하고 헤어지고 만다. 이사종과 헤어진 후에 황진이는 그리움을 못 이겨 시조를 지었다.

어져 내 일이야 그릴 줄을 모로다냐
이시라 하더면 가랴마는 제 구태여
보내고 그리는 정은 나도 몰라 하노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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