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의 나레이션은 바로 당신입니다
인생의 나레이션은 바로 당신입니다
  • 김은영 기자
  • 승인 2013.05.07
  • 호수 138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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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릭터가 아닌, 자신만의 목소리를 내고 싶은 성우 이용신 씨

“말하지 않아도 알~아요” 초코파이 광고의 옛날 노래다. 들어 봤던 기억이 있는가. 혹은 “손이 가요~ 손이 가, 새우깡에 손이~ 가요”라는 문구를 들어본 기억이 있는가. 누구나 한 번쯤 들어 본 이 광고노래의 주인공은 성우 ‘이용신’ 이다. 유명한 광고노래들을 비롯해 만화 영화 ‘달빛천사’의 주인공 ‘루나’, ‘캐릭 캐릭 체인지’의 주인공 ‘아무’, 최근에는 LOL(league of legend) 게임의 ‘아리’까지. 오늘도 수천만 사람들의 귀를 울리는 목소리의 주인공, 이용신 씨를 만났다.

나도 알고 있어, 내 목소리 예쁜 거
구체적인 직업을 목표로 삼아 인생의 모든 순간을 그것을 위해 바치기란 매우 어려운 일이다. 대부분 사람이 어렸을 적 꿈을 그대로 이어가진 않는다. 그도 그랬다. 다만 어렸을 적부터 그는 은연중에 성우가 되기 위한 준비를 조금씩 해오고 있었다.

“사실 처음부터 꿈이 성우는 아니었어. 대신 내 목소리를 가지고 할 수 있는 직업에 관심이 가긴 했지. 어렸을 때 목소리를 녹음해서 들어 봤는데 실제 목소리보다 훨씬 예쁘게 들리는 거야. 그때 깨달았지. 아, 내가 녹음빨을 좀 받는 목소리구나. 하지만 취미 정도로만 생각하다가 대학 진학할 때, 막연하게 방송 관련 일을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어. 그래서 ‘신문방송학과’를 선택한 거야.”

대학생활은 학비마련을 위해 아르바이트를 하느라 바쁘게 보냈지만, 그 와중에도 대학교 축제, 강변가요제에서 노래하며 상도 탔다. 줄곧 자신이 좋아하는 일은 놓지 않았던 셈이다. 이때까지만 해도 성우를 한다는 생각은 꿈에도 없었다. 이와 비슷한 일은 했지만 그게 자신의 직업이 될 거라곤 생각하지 못했다. 말하자면 그가 성우가 되기로 결심한 건 그의 계획에는 없던 갑작스러운 일이었다.

“완전히 모범생도 날라리도 아니지만, 난 말을 잘 듣는 학생은 아니었어. 난 내가 하고 싶은 일이 항상 1순위였어. 어느 날 성우 일이 하고 싶어서 시험을 보겠다고 부모님께 말했지. 그걸 들은 부모님은 얼마나 갑작스러웠겠어. 다행히 우리 부모님도 그걸 인정해줬고 격려해줬어. 그랬더니 ‘그래? 한번 해봐, 떨어지면 뭐 어때’라는 식으로 오히려 날 격려해 주셨어. 사실 성우 하겠다고 하면서도 되게 걱정했거든.”

내가 이 직업을 좋아할 수밖에 없는 이유
그 때의 결정이 그의 인생을 180도 바꾸어 놓았다. 무모한 도전으로 시작했지만, 성우는 생각보다 그에게 맞는 직업이었다. 신인시절 그가 주인공을 맡았던 만화 「달빛천사」는 많은 사람에게 그의 존재를 알리는 것을 넘어 ‘성우’를 드러나게 해준 작품이다. 지금까지 많은 작품을 했지만,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역시 「달빛천사」라고 말한다.

“그 작품을 하며 많은 사람이 이용신을 알게 됐지. 당시 온 반 애들이 주제가를 다 따라 부를 정도였으니까. 사실 달빛천사처럼 주인공이 가수 캐릭터였던 만화는 없었어. 이게 시청자로선 신선했던 것 같아. 목소리, 연기뿐만 아니라 노래도 부르게 되니 기존 성우의 범위와 다른 분야를 하게 된 거지. 덕분에 신인 시절부터 이름이 알려지게 됐지.”

그의 인기는 「달빛천사」에서 끝나지 않았다. 이후 성우 최초로 단독 콘서트까지 열게 됐고 인터넷에서 개인 라디오 방송도 진행했다. 그가 생각하는 이 직업의 매력은 무엇일까.

“성우는 나를 드러내는 것보다 캐릭터를 더 돋보이게 해주는 직업이잖아. 그러려면 최대한 특징을 보여주기 위해 나 자신을 그 캐릭터라고 생각해야 해. 그런데 오전엔 아라비아 공주 역할을 하다가, 오후엔 왈가닥 여중생 캐릭터를 한다고 생각해봐. 하루에도 수십 번씩 인생이 바뀌는 거지. 그렇게 여러 가지 인생을 살 수 있다는 점이 너무 재밌어. 그런 점이 성우가 가진 최고의 장점인 것 같아.”

다양한 캐릭터를 연기하며 재미를 느낀다는 그. 이제 그가 맡는 캐릭터의 범주는 다소 19금이라 할 만한 캐릭터까지 늘어났다. 최근 LOL(league of legend) 게임의 ‘아리’ 역을 맡아 사람들 사이에서 그의 이름이 다시 오르내렸다. 줄곧 어린이들을 대상으로 상냥하고 밝은 캐릭터를 맡아왔다면, ‘아리’는 조금 야한 목소리의 캐릭터다. 아무리 도전을 즐긴다는 그지만 이런 역할을 소화하기까지 역시 용기가 필요했다.

“그 캐릭터를 맡는다는 건 도전이었지. 실제 그런 분위기의 목소리를 연기할 기회는 많지 않아서 조금 용기가 필요한 일이었어. 다행히 게임을 하는 사용자들 사이에선 그 캐릭터가 대단한 반향을 일으켰다는 얘기를 들었어. 그 말을 듣고 정말 뿌듯했지. 내가 할 수 있는 또 다른 역할이 있구나. 앞으로 게임시장도 커질 테니 할 수 있는 일의 범위가 넓어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지.”


성우의 이모저모
우리는 분명 성우들의 목소리를 매일 같이 듣고 살아가지만, 스크린 뒤에서 일하는 그들의 존재는 잘 느끼지 못한다. 그가 말하는 성우의 솔직한 모습에 대해 들어보았다.

Q. 성우가 되기 위해 특별히 필요한 자질이 있나요.
A. 특출해야 할 능력은 없지만, 순발력과 뻔뻔함은 필요다고 봐. 왜냐하면, 마이크 하나를 두고 내가 그 역할에 빙의가 돼야 하는 거잖아. 녹음하다 보면 일 초만에 소화해야 할 캐릭터가 확확 바뀌거든. 어떤 연기 주문이 들어왔을 때 빨리 그 캐릭터의 특징을 잡아내 결과물을 내 줄 수 있는 능력이 필요해. 그리고 무엇을 시켜도 창피해 하지 않고 당당하게 할 수 있는 능력, 그거 정말 필요해. 너무 소심하면 못해. 겉보기에는 얌전해 보일지라도 그 안에 무언가 폭발하는 에너지가 있는 사람이 성우가 돼. 무작정 착하고 얌전하면 견디기 어려워. 

Q. 역할마다 다른 소리를 내야 한다는 것이 부담스러울 때는 없나요.
A. 그게 성우로서의 과제지. 그런 걸 잘하는 것이 성우한테는 하나의 능력이야. 소화해낼 수 있는 캐릭터가 많을수록 유능한 성우인 거지. 한 작품에 여러 역할을 해내야 할 때도 있어. 그걸 위해 성우들은 어떻게 소리를 내는지 연구를 많이 해야 해. 성우는 소리를 다르게 내는 직업이 아니라 결국은 말투를 어떻게 소화해 내냐는 직업이거든. 한 사람에게 소리가 100가지나 있을 순 없잖아. 그러니까 말투를 어떻게 잡아주느냐의 문제지.

Q. 성우를 하면서 얻은 일종의 직업병 같은 건 없나요.
A. 사실은 표현하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게 ‘듣는 것’이라고 생각해. 할머니, 아줌마, 아이의 말투가 다르잖아. 그래서 어딜 가나 귀를 열어 두는 편이야. 자주 듣다 보니 이젠 듣기만 해도 그 사람에 대해 파악될 때가 있어. 특히 전화 통화로 성우들은 절대 못 속여. 일반인들이 알아채기 힘든 것을 전화 통화만 해도 상황을 알아챌 수 있거든. 어느 정도 잡음이 들리고 미세한 숨소리에 따라 지금 어떤 공간에 있고 그 사람이 무슨 상황인지 다 파악이 돼.

Q. 성우에게 최고의 칭찬은 무엇인가요.
A. 연예인들은 사람들이 자신을 알아볼 때 기쁨을 느낀다고 하지만 나는 오히려 사람들이 “오, 그것도 네가 한 거야?” 라고 물어볼 때 뿌듯해. 성우 생활하며 제일 기분 좋은 말이 “네가 한 소리인 줄 몰랐어”야. 내가 다양한 컬러를 가지고 있단 소리잖아.

Q. 성우란 직업에 대해 단점이 있다면 무엇인가요.
A. 성우를 지망하는 사람은 많지만 정작 성우란 이름을 걸고 일하는 사람은 우리나라에 한 700명 정도밖에 안 돼. 그런 사람 중에도 이름이 알려진 사람은 소수지. 어느 분야나 다 그렇지만 성우는 그런 점이 좀 더 심해. 일도 원래 많이 하는 사람에게만 주어지고, 그런 빈익빈 부익부 같은 모습이 좀 있지. 그리고 성우는 위치가 좀 애매해. 분류를 연예인으로 하기에는 노출이 별로 없고, 목소리만 유명한 사람이니까. 그렇다고 방송 스태프라 하기에는 대중이 목소리를 너무 잘 알고 있고. 딱 스태프와 연예인의 중간 정도인 것 같아. 사실 어떻게 보면 그게 장점이야. 연예인보다 노출이 덜 돼서 사생활에 대해 신경 쓰지 않아도 되니까.

이제는 남 역할이 아닌, 내 목소리로
여러 캐릭터를 연기하며 다양한 삶을 살아 보는 것은 재밌는 일이다. 하지만 녹음기를 들었던 어릴 적부터 신문방송학과에 진학하기까지 진짜 하고 싶었던 일은 ‘자신의 목소리를 내는 일’이다. 그는 이제 자신의 목소리를 낼 때라고 말한다.

“성우는 감성적인 표현을 하는 덴 매우 알맞은 직업이지만, 머릿속에 있는 생각을 표현하려면 다른 일도 필요할 것 같아. 청소년 혹은 대학생들이나 막 첫 출발을 하려는 친구에게 나의 경험들이 용기를 줄 수 있다고 생각해. 얘기를 많이 하면서 학생들에게 용기를 주는 강의를 하고 싶고. 꼭 성우를 지망하지 않아도, 학생들이 새로운 도전을 하는 데 내 경험이 불쏘시개 같은 역할을 한다면 보람이 있을 것 같아.”
사진 류가영 기자 fbrkdud127/@hanyang.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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