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민주화 시대의 법집행
경제민주화 시대의 법집행
  • 김차동<법학전문대학원 교수>
  • 승인 2013.04.27
  • 호수 138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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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서 부산까지 갈 때 선택하는 교통수단에 따라 걸리는 시간과 비용이 서로 다르다. 시간이 없는 사람은 다소 비싸더라도 비행기나 KTX를 선택할 것이고, 다소 시간적 여유가 있는 사람은 상대적으로 저렴한 고속버스를 이용할 수도 있다. 그런데 재미있는 사실은 한 나라의 법집행도 다양한 사회구성체에 의해 이루어지고 있고, 각 집행수단이 갖는 편익과 비용이 달라 서로 간에 경쟁이 있다는 점이다. 공정거래사건을 예로 들면, 피해자가 직접 법원에 위법행위에 대한 손해배상을 청구하는 사적 집행(private enforcement)과 정부기관이 직접 제재하는 공적집행(public enforcement)이 있으며, 공적 집행은 다시 공정거래위원회의 시정조치·과징금 부과와 같은 행정적 집행과 검·경의 형사적 집행으로 나뉜다.

공적집행은 전국적인 단위로 서로 정보를 교환하면서 체계적으로 집행되어, 소위 규모의 경제(economy of scale)를 통해 집행비용 면에서 큰 장점이 있으나, 공무원 개인의 이해가 사회적으로 적정한 이해수준보다 낮기 때문에 대개 과소 집행되는 단점이 있다. 반면, 피해자가 직접 피해배상을 구하는 사적집행은 법집행의 이득이 바로 피해자 자신에게 귀속되는 까닭에 일반적으로 집행의 유인이 큰 장점이 있다. 그렇기 때문에 각 수단이 경쟁적 관계에 놓여 있고, 이들 간 최적조합을 찾아내는 것이 국가 법체계의 효율성의 척도가 된다. 각 집행수단이 갖는 장점은 살리고 단점은 보완하여 차선의 해결책(the second best solution)을 찾는 노력이 요구되는 것이다.

요즘 ‘경제민주화’란 화두가 인구에 회자되고 있다. 그 내용을 뜯어보면 정치민주화와는 달리 “국민을 위한(for the people)” 경제라는 의미에 방점이 찍혀 있는 듯하다. 경제민주화의 구체적인 내용 중에는 공정거래법 위반행위에 대하여 전속고발제를 폐지하고, 집단소송제도 및 징벌적 손해배상을 도입하자는 제안도 포함되어 있다.

전속고발제의 폐지는 공정거래위원회가 고발권을 행사하지 않음으로써 형벌이라는 공적집행이 너무 적게 이루어진다는 전제가 깔려있다. 그러나 행정집행과 형사집행 사이의 장단점을 논하기 이전에 양자는 공적집행의 수단 중 하나로서 앞서 든 바와 같은 공적집행의 단점을 공유하고 있다는 한계가 있다. 더구나 형사집행이 강화되면 위법의 정도가 낮거나 단순의심 수준의 사건까지 공정거래위원회의 행정집행과 별도로 검·경의 수사가 일차적으로 개시되어 기업의 경영활동을 위축시킬 수 있는 단점이 있다. 벌써부터 상시적인 압수수색, 감청의 위협에 대한 볼멘소리가 들린다.

반면, 집단소송제도 및 징벌적 손해배상은 대표적인 사적집행의 개선방안으로서 경제분야 민주화에서 부족한 “국민에 의한(by the people)” 경제 운용이 되고, 또 피해자의 피해구제를 기초로 했다는 점에서 “국민을 위한” 더 효율적인 경제민주화의 수단이 될 수 있다. 다소 가혹한 형사집행의 강화보다 경제민주화 시대에는 民의 주도와 보호가 장점인 집단소송제와 징벌적 손해배상제의 똑똑한 도입이 더 절실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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