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친 삶에 화낼 줄 아는 20대가 돼라
지친 삶에 화낼 줄 아는 20대가 돼라
  • 김은영 기자
  • 승인 2013.04.27
  • 호수 138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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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에 뛰어든 청년운동가 김영경 씨

오직 수능을 위해 숨 막히게 달려왔던 고등학교 3학년 시절, 대학 가면 좀 나아질까 했더니 물밀 듯 쏟아지는 과제와 대외활동. 그렇게 열심히 공부했는데 거대한 취업의 늪에서 내 몸 하나 안주할 자리가 없다. 수업도 빠지고 캠퍼스에서 컵라면 국물을 안주 삼아 막걸리를 마셨다는 낭만은 옛 선배들의 넋두리가 됐다. 대신 “토익 100점은 더 올려야 해”가 일상적인 대화가 된 현실이다. 혹 이 같은 현실에 분노한 적은 없는가. 적어도 계속 의자에 궁둥이를 붙이고 공부만 하는 내 청춘이 억울하단 생각이 든 적은 없는가. 청년 운동가 ‘김영경’ 씨는 이 같은 현실에 화를 낼 줄 알아야 한다고 말한다.

지금의 그를 만든 젊은 날의 추억
김영경씨 역시 평범한 대학생처럼 학과 공부와 아르바이트 속에서 청춘을 보낸 사람이다. 다만 아르바이트 때문에 다른 학생들보다 조금 더 바빴다. 부모님께서 등록금을 다 내줄 형편이 못돼 학자금 대출을 받아야 했던 그는 젊었을 때부터 각종 아르바이트로 무장해야만 했다. 이 시절, 그는 청년 아르바이트생이 사회에서 어떤 대우를 받는지 몸소 익혔다.

“휴학하고 고향인 대구에 돌아가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또래가 겪는 부당한 대우를 자주 봤어요. 보통 사람은 그런 상황에 대해 건의를 하면 해고된다고 생각해서 좀처럼 불만을 표현하진 않죠. 하지만 크게 문제가 되지 않는 선에서 제 의견을 표현했고 그 문제가 시정되는 것을 경험했죠. 이 사건 이후로 ‘어, 내가 말을 하니까 달라지네? 그럼 말해야겠다’는 의식이 자연스럽게 들었던 것 같아요.”

아르바이트도 많이 했지만, 동아리 활동도 그의 청춘 일부를 차지했다. 그곳에서 여러 선배, 동기들과 끈끈한 정을 느끼며 낯선 도시 생활에 적응해 나갔다. 당시 동아리에 있던 선배들에게 청년문제에 대해 알음알음 전해 듣기도 했다. 사회문제에 관심을 두기 시작한 그는 이번엔 총학생회에 들어가 학생운동에 앞장섰다. 이것이 김영경 씨의 대학생활이었다. 이때의 경험은 지금의 그에게 든든한 자양분이 됐다.

“대학에 와서 학생운동을 처음 접했어요. 1999년도에 제가 입학했는데, IMF가 터져서 등록금이 올랐어요. 이런 분위기에서 당연히 저희 학생들은 등록금 인상을 반대하는 운동을 할 수밖에 없었죠. 오른 만큼 다 깎이진 않지만 그래도 저희가 운동을 함으로써 등록금이 매년 깎였어요. 아, 내가 행동을 하니까 이렇게 바뀌는구나. 그런 경험이 제 가치관에 영향을 준 것 같아요.”

두 역할이 향하는 소실점, 청년
이러한 경험을 토대로 그는 본격적으로 청년문제에 대해 고민하기 시작했다. 뜻이 맞는 사람들이 모여 ‘청년유니온’이란 작은 단체도 만들었다. 당시 ‘청년’을 위한 노동조합 단체는 하나도 없었다. 처음 시작하는 일인 만큼, 불안한 마음도 있었다. 하지만 그는 지친 청년들에게 위로와 함께 그들의 목소리를 사회에 들려주고 싶었다.


“처음 단체를 만들었을 때, 불안감은 굉장히 강했죠. ‘6개월 이내에 문 닫는 거 아니냐’란 생각도 들었어요. 2기 위원회가 출범한 지금도 그런 마음은 있어요. 가야 하는 모든 길이 새로운 곳을 개척하는 일이에요. 하지만 많은 대학생들이 높은 등록금, 생활비 문제 때문에 아르바이트에 쫓기면서 최저임금도 못 받는 실정을 보며 ‘누군가는 얘기해야 하는 것이 아닐까’란 생각이 들었죠.”

‘청년유니온’은 외면받는 청년들의 삶을 위해 직접 나서서 목소리를 높이겠다는 다짐으로 시작했다. 현재 불행한 삶이 꼭 청년만의 탓이 아니라고, 사회 구조 때문이라는 것을 말해주고 싶다는 것이다. 그렇다고 시작부터 무언가를 개선하겠다는 거창한 계획은 없었다. 그보다는 여러 가지 이유로 상처를 받은 청년들이 모여 얘기를 나누고 사회에 자신들의 말을 건낸다는 생각만으로도 가슴이 설렜다.

“현재 청년들이 겪는 상황이 사회 구조에 의한 문제인데도 불구하고 전문가나 기성세대는 계속 청년만의 문제라고 호도하고 있어요. 청년들이 눈이 너무 높아서 취직을 못 하는 거란 식이죠. 그런 시선이 억울해서 사회에 우리들의 목소리를 내자는 생각이 들었죠. 그 취지로 청년유니온을 시작했는데 그 당시에는 사회에 저희의 의견을 피력하는 것만으로도 만족했어요. 무엇이라도 할 수 있다는 것이 참 좋았던 거죠. 그때는 그것만으로도 즐거웠어요.”

이젠 언론매체에서 그들의 퍼포먼스가 자주 오르내리게 됐고 많은 사람이 청년유니온의 존재를 알게 됐다. 그러나 청년유니온이 첫 시작을 알리는 테이프를 끊을 때, 아무도 그곳이 지금처럼 커지리란 기대는 하지 않았다. 단체를 세운 그들 역시 이렇게까지 규모가 커진다는 생각은 못했다.

“저희가 뭔가 더 뛰어나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모두가 서로 비슷하고 고민이 많은데 우리는 반 발짝 더 나선 것밖에 없거든요. 누군가는 시대를 잘 읽었다고 말하더군요. 시대를 읽었다는 그 말이 맞는 것 같기도 해요. 워낙 청년문제가 격화되고 자살도 많이 하는 시기인데 청년의 문제가 그들만의 문제가 아니란 말에 공감하는 사람들이 많았던 거죠.”

청년유니온 초대 위원장 임기를 끝내고 그는 서울시 명예 부시장, 문재인 캠프 공동선대위원장을 거쳤다. 사회 운동가로 시작해 정치에 입문하게 된 그의 행보는 다소 독특한 점이 있다. 기존 체제에 저항을 대표하는 운동가와 체제를 지키려는 정치인. 두 직업이 너무나 다르다. 모두 이 사실을 지적하는 듯 당시 그가 정치하겠다는 발표가 있었을 때 사람들의 반응은 극으로 나뉘었다. 정치에 발을 담그게 된 계기에 관해 그는 이렇게 말한다.

“형태는 달라도 같은 고민의 연장선에서 나온 결과에요. 시장 일을 할 때는 청년실업의 불안정한 노동을 해결하는 법과 제도를 만들려 했고, 실제로 시정된 부분도 있었어요. 그리고 앞으로 정권이 바뀐다면 좀 더 청년에게 이로운 정책을 만들게 하자는 생각으로 문재인 캠프에서 공동선대위원장 역할을 맡았던 거예요. 엄밀히 말하면 운동과 정치가 칼로 자르듯 정확히 분리되진 않더라고요. 그 이유를 생각해보면 당연한 것 같아요. 바깥에선 끊임없이 자치 단체에 관련 정책을 만들어 달라고 요구하다가 이제는 직접 만들게 됐으니, 이 길이 제겐 자연스러운 길이라 생각해요.”

같은 목적으로 시작한 일이지만 청년 운동과 정치인의 입장이 다르듯이 그들이 하는 일도 서로 다를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각기 다른 역할을  갖고 무대에 서 본 그는  조심스럽게 입을 뗐다.

“표현이 잘 안 되는데…. 아무래도 운동은 지를 수 있다는 것? 물론 청년 운동도 사회적 책임은 있죠. 우리가 말하고 싶은 것을 마음껏 하는 것이 운동이라면 행정과 정치의 영역은 그렇게 할 수 없는 것도 많아요. 청년유니온에선 청년을 위해 활동하면 되지만 정치에선 다양한 세대 간의 균형을 고민해야 하고 그런 과정에서 조율하는 부분이 쉽진 않더라고요. 운동은 조직 내의 민주주의지만 정치는 국민 전체를 대표하는 자리이므로 범위가 달라지니 책임감을 느끼는 범위도 달라지죠.”

지금도 그는 끊임없이 사회에 SOS 메시지를 보내는 중이다. 하루하루 사회의 양상이 달라지는 것처럼, 그의 방식도 한 곳에서 멈추지 않는다. 요즘은 특히 ‘경제민주화’란 단어가 이곳저곳에서 눈에 띄는 시기다. 이에 따라 그도 새로운 방안을 계획하고 있다.

“경제민주화가 중요한 시대적 화두가 됐잖아요. 작년에 경제민주화 2030연대에서 활동하며 느낀 건데, ‘경제 민주화’란 단어가 너무 포괄적인 개념이란 생각이 들었어요. 좀 더 의제를 구체적으로 잡는 것이 필요했죠. 그래서 저희는 일자리, 부채, 주거문제를 주력 분야로 했어요. 현재 이 부분과 관련된 문제에 대해 고민하고 해결책을 만들어 보자는 ‘함께 사는 서울 연대’란 새로운 단체를 준비하고 있어요. 차질 없이 진행되면 5월쯤엔 단체가 발주할 것 같아요.”

청년 때문에 힘들었다.
시위, 집회 등 어떤 형태로든 사회에 무언가를 요구하는 일은 대부분 사람이 뛰어들고 싶어 하지 않는 고된 일이다. 특히 기성세대에게 무언가를 말한다는 것이 쉽지 않기 때문이다. 그가 청년 운동을 하면서 느낀 힘들었던 점은 무엇일까. 정말 그를 힘들게 한 것은 아무 말도 듣지 않는 정부, 혹은 청년 탓만 하는 기성세대도 아니었다.

“청년 내부에서도 우리의 문제에 대해 무심한 사람들이 있어요. 청년이 겪는 상황을 얘기 하면 공감을 하는 사람도 많지만, ‘나만 잘하면 되지’라고 생각하는 청년도 있는 것처럼요. 저희는 사실 그런 사람들을 탓할 마음은 없어요. 태어났을 때부터 주위로부터 ‘좋은 회사에 취직해야 잘 살 수 있다’는 말을 세뇌당하면서 살았는데 그 생각을 바꾸기란 쉽지 않잖아요. 하지만 청년들에게 말을 거는 저희로서는 힘들긴 했죠. 기성세대가 그러는 거야 우리가 말하면 되는데 같은 또래들이 그러면 아픈 거죠.”

모두가 청년들에게 스펙을 쌓고 좀 더 좋은 대학에 진학하라는 말을 할 때, 그는 스펙을 쌓기를 권하는 사회에 물음표를 던졌다. 그는  차라리 캠퍼스의 맑은 하늘을 올려다보라고 충고한다. 본관 잔디밭에서 시켜 먹는 짜장면이 그렇게 맛이 좋다는 그가 생각하는 바람직한 청춘 사용 설명서는 무엇인지 들어보았다. 

“스펙을 쌓는 것이 불필요하단 생각을 하진 않아요. 다만 청년들이 자기 능력을 보여줄 기회가 사회에 적다는 것, 그게 정말 슬픈 일이에요. 이 사회에 청년들에게 능력을 발휘할 기회를 주지 않는 거죠. 그렇다면 청년은 두 날개가 필요한 게 아닌가. 한쪽은 스펙을 쌓고 다른 한쪽은 자신의 능력을 보여 줄 기회와 공간을 열기 위해 끊임없이 표현하는 것이 필요할 것 같아요. 그런 양 날개를 가진 청년이 되었으면 좋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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