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신의 진짜 꿈을 헷갈리지 마세요”
“자신의 진짜 꿈을 헷갈리지 마세요”
  • 김은영 기자
  • 승인 2013.04.01
  • 호수 138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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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하는 것을 찾아 가는 김미월 작가
“미안해요. 많이 기다렸죠?” 생전 처음으로 온 파주란 도시에서 김미월 작가를 만났을 때 그가 숨을 헐떡이며 건넨 말이다. 그의 첫인상이 어쩐지 파주와 닮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서울과 거리가 먼 시골은 아니지만 고요한 동네 파주. 이 두 면모가 그에게도 존재하는 것 같았다. 이 동네엔 사람을 만날 만한 장소가 없다며 그가 자주 글을 쓰곤 했다던 카페로 안내했다. 해리포터의 작가 ‘죠앤 k. 롤링’이 카페에서 원고를 완성했다는 일화처럼 이곳에서 여러 보석 같은 작품들이 탄생했다고 생각하니 느낌이 신선했다. 마치 꼭꼭 숨겨놓은 작가만의 동굴에 들어가는 느낌이라고 말해야 할까.

인생이란 이름의 소설
어렸을 적, 저녁을 먹기 전에 방영했던 25분짜리 만화를 본 적이 있는가. 기자는 동네 친구들과 놀다가도 만화가 시작하면 모든 걸 제쳐놓고 집으로 들어왔다. 그러다 끝을 알리는 곡이 나오면 아쉬워하며 멍하니 화면을 바라 봤던 기억이 있을 것이다. 김미월 작가의 경우엔 ‘책’이 그런 역할을 했다.
“어렸을 때 동화책을 읽은 적이 있어요. 그런데 책에는 모두 ‘끝’이 있잖아요. 동화책이 너무 재밌는데 이야기가 언젠가는 끝난다는 사실이 너무 아쉬웠어요. 끝이 없는 책을 어떻게 찾을 수 있을까 고민하다 내가 직접 책을 쓰기로 했어요. 이렇게 막연하게 생각한 게 작가 인생의 첫걸음이었죠.”


모든 사람이 어릴 때의 꿈을 그대로 간직한 채 실제 그 꿈을 이룬다면 얼마나 아름다운 세상이랴. 애석하게도 대부분 사람은 전혀 다른 일을 하고 살아간다. 또 김미월 작가처럼 그 꿈을 실제로 이뤘다고 해도 순탄한 인생을 산다는 보장은 없다. 그 역시 잠시 다른 길을 걸으며 방황하던 시기가 있었다.

“옛날에는 작가는 위대한 사람들만이 할 수 있다고 여겨서 제가 그런 사람이 되기엔 부족하다고 생각했어요. 머리가 굵어질 쯤엔 인권변호사나 가수 등 다른 직업에 관심이 있었죠. 결국 대학 졸업 후엔 직장에 취직했고요. 그러다 하루는 병원에 입원했는데 제가 진짜 원하는 일이 무언인가 깊이 고민했어요. 정말 제 마음의 밑바닥 가서 질문 했죠. 그곳까지 내려가서 얻은 답은 ‘작가’였어요.”

솔직하게 말하는 작가의 모습
그가 쓴 소설 중에 현실을 초월한 주제를 그린 작품은 거의 없다. 그는 항상 우리 눈앞의 ‘현실’과 마주한 이야기를 쓴다. PC방에서 일하는 여종업원의 이야기, 도심 속 좁은 고시원에서 사는 사람들의 이야기 등 직접 체험하지 않았더라면 미처 몰랐을 섬세한 소재를 다루곤 한다. 소설은 작가가 느낀 현실의 반영이라는 교과서 속 지식을 떠올린 기자는 이런 소재들이 그의 경험에서 나왔는지 물었다.

“소재를 위해 일부러 경험을 쌓는 편은 아니에요. 일상을 살아가다 한 순간 제 머릿속에 어떤 단상이 들어오는 순간이 있어요. 길을 지나가다, 혹은 카페에서 차를 마시다 문득 소재가 떠오르곤 하지요. 그때 마음속에 담아두거나 메모를 해뒀다 나중에 글을 쓸 때 사용하게 되는 경우가 많아요. 어쩔 땐, 어떤 설정을 위해 직접 체험하기도 했어요. 「서울 동굴 가이드-너클」에 주인공이 pc방에서 일하면서 어떤 게임에 빠지는 일화가 있어요. 생생한 표현을 위해 직접 pc방에서 아르바이트를 하고 게임을 좋아하는 친구에게 추천을 받아 해본 적이 있었어요. 게임을 안 즐겨서 그런지 사실 재미는 없었어요.”

조금 더 자세히 그의 소설을 살펴보면 현실 속 ‘젊은이들’에 관한 이야기가 많다. 또 젊은이 중에서도 완벽한 사람들이 아닌, 어딘가 부족한 사람들이다. 왜 하필 그들을 인물로 설정했는지 의문이 든다. 꼭 어떤 특별한 이유라도 숨겨져 있을 것만 같다. 그러나 그에게 들은 실제 이유는 생각보다 소소했다.

“아무래도 소설은 작가가 쓰는 거니 본인의 영향력이 크겠죠. 제 눈높이에 있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더 자주 들을 기회가 많으니까 자연스럽게 그런 소재로 쓰게 되는 것 같아요. 특히  그 연령대는 열려있는 나이잖아요. 어떤 가능성이 남아 있는 시기요. 앞으로 자기 삶이 어떻게 될지 모르니 훨씬 더 방황하고 위태로운 시기죠. 그러니까 할 이야기가 더 많은 사람들이라 생각해서 그들의 이야기를 쓰게 돼요. 아마 저도 나이가 들어 세상을 바라보는 관점이 달라지면 소설에도 변화가 생기겠죠?”

어떤 사명감을 갖고 굳은 결의를 다지는 비장함은 없었다. 대신 일상의 사소함이 작가란 단어에 수식해줄 뿐이다. 김미월 씨가 생각하는 작가의 매력이란 그런 것이다. 작가는 남에게 자신의 생각을 주입시키는 게 아니라 일상의 모든 것들을 자신의 노래로 바꾸는 사람이다.

“순수한 창조는 신만이 할 수 있는 거라 생각해요. 인간은 복제를 할 수 있을 뿐이죠. 소설도 수많은 복제품중 하나에 지나지 않는데, 그 과정을 통해 뭔가 새로운 걸 창조 하는 게 이 직업의 매력이라 생각해요. 그 작업이 쉽진 않지만 재미를 느껴요. 또 다른 점은 남들에겐 아무리 허송세월을 보내는 모습처럼 보일지라도 작가에겐 다른 의미로 읽힐 수 있단 것이에요. 그런 모든 경험을 나중에 소재가 돼 소설 속에 녹여 낼 수 있잖아요.”

정말로 하고 싶다면
어떤 사람들은 작가는 먹고 살기 힘든 직업이라 생각한다. 그래서 그들은 일찌감치 작가의 길을 포기하고 모두가 똑같은 정장을 입고 회사란 울타리에 들어가고 싶어 한다. 그들은 ‘작가는 어렸을 때 한번 꾸고 늙어서 꾸는 직업이지’라며 미리 선을 긋는다. 김미월 작가는 이런 사람들을 보며 의문을 가졌다.

“아주 소수의 작가를 제외하고 먹고 살기 힘든 것이 사실이에요. 그렇다고 미리 포기하는 사람들을 보면서 그들의 진짜 꿈은 작가가 되는 것이 아니라 ‘나중엔 나도 원래 작가가 꿈인데 먹고 살기 힘들어서 못했어’라고 생각하는 것 까지만 꿈이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어요. 진짜 ‘작가’를 꿈꿨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김미월 작가는 어차피 하고 싶은 일을 하던, 하기 싫은 일을 하던 힘든 시기는 온다고 말한다. 그러니 둘 다 힘들다면 차라리 좋아하는 일을 하는 게 낫지 않겠느냐고 묻는다. 하고 싶은 일을 해야 발전이 있고 행복을 느낄 수 있다는 것이다.

“앞일을 걱정하며 포기하는 대학생들을 보면 안타까웠어요. 꼭 자기가 그렇게 힘든 일을 겪으란 법은 없잖아요. 먹고 살 수 있는 작가가 돼야겠다고 생각해야지요. 나중에 어떻게 살지는 아무도 모르는 일이니 자기가 하고 싶은 걸 하는 게 좋은 것 같아요.”

이후 쓸 책에 대한 계획을 묻자, 그는 당장 다음 달부터 새 작품을 준비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렇게 말하는 그는 꽤 바빠 보였지만 앞으로도 담을 이야기가 정말 많은 젊은 작가의 모습이 보였다.

“제가 어렸을 책을 읽을 때 느꼈던 한 없이 평화로운 느낌, 이 세상에 나와 책만 남는 것처럼 빠져들고 행복했던 그 기분을 독자들이 느끼게 됐으면 좋겠어요. 제가 독서를 통해 위안을 느꼈듯이 누군가 나의 책을 읽고 위안을 받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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