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홍과 결별한 이후에도 이상은 그녀를 쉽사리 지울 수 없었다. 그는 말기에 술과 여자를 가까이하며 그녀의 역할을 대신 해 줄 또 다른 여급을 찾아 헤맸다. 그 과정 중에 이상이 만나게 된 두 번째 여인은 다방 ‘쓰루’의 여급 ‘권순희’다.

권순희와 사랑에 빠진 이상은 금홍의 이별을 위로받는 듯하나 새로운 장애물이 그를 맞이했다. 그에게 권순희를 소개해준 친구 정인택 역시 그녀를 사랑하고 있던 것이다. 정인택은 이상과 권순희가 서로 사랑한다는 사실을 알고 어느 날 자살 소동을 벌였다. 결국, 이상은 그 길로 그녀와 헤어지고 이후 정인택과 권순희의 결혼식에 사회자로 참가해 둘의 행복을 빌어주는 씁쓸한 역할까지 도맡았다. 그에게 두 번째 찾아온 사랑은 또 다른 상처를 남긴 채 고독은 깊어져 갈 뿐이었다.

그가 마지막으로 사랑했던 여자는 ‘변동림’이라는 지식인 여성으로 여급 출신이 아니란 점에서 이전 여자들과는 달랐다. 그녀는 이화여전 문과를 나온 여류작가로서 몇 개의 수필과 단편을 발표한 바 있는 지성적인 여자였다.

이상은 그가 자주 가던 다방 ‘낙랑’에서 변동림을 소개 받는다. 고 교수는 이상과 그녀의 첫 만남에서 그가 긴장한 모습을 이렇게 묘사했다. “이상의 이제까지의 오만하고 황량한 제스처는 그곳에서 죽어버렸다. 그는 부들부들 떨고 있었다. 그리고 커피에 녹여야 할 각설탕을 수전증이 잇는 사람처럼 주무르고 있었다.”

몽당연필같이 짤막한 그의 대답 때문에 대화는 길게 이어지지 못했지만 동림은 그런 그가 왠지 마음에 들었다. 그리고 며칠 후, 동림은 그에게 결혼 승낙의 편지를 보낸다. 1936년 6월, 둘은 결혼식도 없이 황금 정(지금 을지로3가)에 그들만의 조그만 신혼집을 차린다. 그러나 그들의 결혼생활은 행복하지만은 않았다. 그 무렵 이상은 결핵으로 몸도 쇠약해진 상태였고 다방 경영난과, 술과, 여자에 많은 돈을 탕진해 남편으로서 그녀에게 행복을 가져다줄 능력이 없었다. 변동림 역시 생활고 탓에 카페 여급으로 일해야 했다. 결국 위태롭게 이어갔던 그들의 결혼생활은 4개월간의 짧은 시간으로 끝난다. 이후 변동림은 ‘김향안’이란 이름으로 개명한 뒤 화가 ‘김환기’와 재혼해 한 예술가의 아내로, 그리고 여성 수필가로 활동한다.

한편 이상은 동경으로 건너가 문학에 전념하며 다시 자신을 위로하지만, 결핵이란 병은 그에게 더는 기회를 주지 않았다. 이 무렵 그가 쓴 소설 「권태」를 보면 그의 생활이 어떠했는지 알 수 있다. “나는 이 대소없는 암흑 가운데 누워서 숨 쉴 것도 어루만질 것도 또 욕심나는 것도 아무것도 없다. 다만 어디까지가야 끝이 날지 모르는 내일 그곳이 또 창밖에 등대하고 있는 것을 느끼면서 오들오들 떨고 있을 뿐이다.”

1937년 4월 16일, 병상에 누워있는 그에게 동림이 소식을 듣고 찾아온다. 이미 임종을 맞이할 얼굴을 한 그는 그녀에게 마지막 유언을 하며 눈을 감는다. “레몬 향기가 맡고 싶소.”

참고: 도서 고은 「이상 평전」,
이상 「권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