찌들어갈 너희를 위해
찌들어갈 너희를 위해
  • 이희진 편집국장
  • 승인 2013.03.02
  • 호수 138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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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털사이트에 대학생을 검색하면 나오는 연관검색어는 ‘대학생 필수 자격증’, ‘대학생 외교활동’, ‘대학생 취업 스펙’ 등이다. 단군이래 최고 스펙이란 말이 절로 나올 정도로 사회가 대학생들에게 요구하는 조건들은 점점 까탈스러워져만 간다. 듣기만 해도 암담한 이 단어들로부터 상대적으로 자유로운 학년이 있으니 바로 파릇파릇한 1학년, 신입생이다.

생각만 해도 싱그러운 그 이름 ‘새내기.’ 새내기들에게 스펙과 취업은 딴 나라의 이야기다. 가엾은 아이들은 대학(大學)에서 큰 배움을 얻겠다는 포부보단 달콤한 연애를 꿈꾸거나, 흥청망청 술을 마시거나, 아무런 구속 없이 여행을 가거나…. 단꿈에 젖어있는 새내기들은 말한다. “1학년 땐 놀아도 되는 것 아니에요?”

안타깝게도 대답은 “안돼”다. 대학이 지성의 상아탑이 아닌 취업양성소로 변해버린 지금 1학년이 아닌 1년이란 귀중한 시간을 헛되이 보내기엔 앞으로 다가올 1학년들의 장래가 어둡기만 하다. 1학년 때 망친 성적을 세탁하기위해 다음 학기 성적표는 재수강 과목으로 도배되고, 재수강을 하다보면 졸업 요건이 걱정되고, 누구는 장학금 받으며 학교 다니는데 나는 부모님 뵐 면목도 없고. 4학년이 돼 취업에서 쓰디쓴 탈락의 고배를 마시며 ‘1학년 때 놀지 말걸’이라는 뒤늦은 후회를 해도 이미 지나가 버린 시간이요, 떠나버린 버스다.

사회의 요구는 학년을 가리지 않는다. 사회는 하나만 요구하지도 않는다. 융합형 인재가 교육부의 화두로 떠오른 것도 같은 맥락에서다. 사회는 공부, 대외활동, 인간관계, 자기 계발, 자유로운 외국어 구사 등 이 모두를 소화해내는 슈퍼맨을 원한다. 이쯤 되면 갈피를 못 잡은 1학년들은 머리가 아프다. 어떤 것부터 어떻게 시작해야 하는지 도무지 감도 안 온다는 뜻이다.

하지만 뜻이 있는 곳에 길이 있다고 이 위기를 새로운 기회로 인식하는 배포가 필요하다. 겁먹고 긴장된 어깨를 이완하고 모든 것을 가볍게 봐야 한다. 대외활동은 밖에서 노는 활동이고 인간관계는 술 먹으면서 쌓는 것이요, 자기 계발은 극한으로 자기 자신을 몰아가서 내가 잘하는 것과 못하는 것을 알아가는 활동이다. 한 마디로 놀긴 놀되 현명하게 놀라는 뜻이다.

1학년은 도약을 준비하는 기간이다. 대학을 통해 자신이 무엇을 하고 싶은지, 삶을 결정짓는 가치관이 무엇인지, 어떤 사람이 되고 싶은지를 고민해야 할 때이기도 하다. 고민은 답을 가지고 오고 그 답은 나의 경험에 기반을 둔다. 경험은 책상에서 머리를 굴린다고 나오지 않는다. 경험은 몸으로 깨지고 부딪혀 익히는 데에 그 가치가 있다. 아프니까 청춘이다는 말은 아파야 청춘이라는 말이다. 기계같이 공부하고, 생각없이 놀고, 당구치고, 술 마시고 세상에 대해 한탄하던 시간은 청춘이 아니라 청승이다.

청승은 고등학교 때 많이 떨었으니 찬란한 20대 청춘을 위해선 나가서 노는 것이 절실하다. 학교 안에선 대학생활을 먼저 해본 선배와 이야기하며 조언을 구하고, 교수들과 대화를 통해 지식을 쌓는 기회를 만들어야 한다. 학교 밖으로 나가 더 큰 세상을 보는 호사도 놓쳐서는 안 된다.

시작이 반이다, 첫 단추를 잘 꿰어야 마지막 단추까지 잘 끼울 수 있다는 흔하디흔한 말이 대학생활을 빗겨갈 리 없다. 어떻게 대학생활의 첫 단추를 잘 끼우느냐는 본인에게 달려있다. 노는 상황 속에서 사람을 얻고, 자기 자신을 발견하고, 앞으로 나아갈 방향을 똑바로 바라볼 줄 알아야 한다. 학년이 올라가며 사회의 무지막지한 요구에 찌들어 갈지언정 굴복하진 않도록, 들어오는 1학년들은 현명하게 잘 노는 사람이 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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