먹는 사람을 위한 빵을 만들기 위해
먹는 사람을 위한 빵을 만들기 위해
  • 김은영 수습기자
  • 승인 2013.01.08
  • 호수 137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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빵에 자신만의 철학을 담은 연제홍 셰프
연제홍 셰프의 원동력은 ‘고집’이다.

우리학교 ERICA캠퍼스 앞, ‘아이모리’라는 이름의 빵집이 있다. 그동안 꽤 많은 학생이 빵을 사 먹던 가게였다. 그런데 몇 주 전, 아이모리의 가게 주인이자 빵을 만드는 셰프인 연제홍 씨는 아이모리가 2012년을 마지막으로 잠시 휴식기를 갖는다는 글을 올렸다. 이유는 오랫동안 지속한 적자 때문이다. 자신이 지키려는 상식과 현실의 벽 사이에서 갈등 끝에 그가 내린 결정이었다. 그는 자신이 상식이라 생각하는 것에 따라 빵을 만드는 사람이다. 제빵은 원재료의 맛을 그대로 살려내야 한다는 것이 그의 상식이다. 우리가 언제나 아이모리의 부드러운 빵을 먹을 수 있던 것은 연제홍 씨의 빵에 대한 강한 고집 때문이었다.

상식이 무너지다
그는 한국에서 작은 제과점에서 일하다 일본으로 건너가 ‘동경제과학교’와 다양한 곳에서 제빵을 배웠다. 처음엔 양과자를 배우려 했지만, 점차 배우다 보니 제빵에 관심을 두게 됐다고 한다. 일본에서 제빵을 배우면서 그에게 충격을 가져다줬던 일은 빵을 만들 때 재료에 대한 ‘상식’이 우리나라와 다르다는 것이다.

“한국에서 일할 때는 빵에 유화제, 첨가제를 쓰는 게 당연한 줄 알았어요. 그런데 일본에 가서 제빵에 관해 공부하며 본래 재료의 맛을 어떻게 살릴 수 있는가를 배웠어요. 제가 배운 곳만 그런가 생각했는데 아니에요. 아르바이트하는 곳, 연수하러 간 곳 다 똑같아요. 그런 합성 재료를 알긴 아는데 안 써요. 오히려 제게 왜 쓰냐고 물어보기까지 해요. 거기서 빵을 만들 때 유화제를 넣는 것은 불가피하다는 저의 상식이 무너져 버렸죠.”

한국으로 다시 돌아와 자신이 배웠던 것을 토대로 빵을 만들려고 했지만 ‘그의 가게’가 아닌 곳에서 적용하기는 쉽지 않았다. 원재료를 그대로 살려 빵을 만들면 가격도 오르기 때문에 가게 수지가 맞지 않았기 때문이다. 게다가 국내 유명한 빵집에서 총 책임자의 자리까지 올랐지만 오랜 시간 노동으로 허리를 다치게 된 후 그는 더는 일하던 빵집에 남아 있을 수 없었다. 총 책임자는 누구보다 바쁘게 일하고 신경 쓸 데가 많은 만큼 다친 몸으로 남의 가게에서 일한다는 게 부담됐다. 결국, 직장을 나오고 약 이년을 쉰 후 그는 개인 빵집을 열기로 했다. 다친 몸으로 다른 곳에서 일할 바에 편히 자신의 가게를 차릴 생각이었다. 흔히 개인 빵집을 열고 좋지 않은 결과로 끝낸 가게들을 자주 봐온 터라 걱정스러운 마음과 함께 조심스럽게 자신이 사는 동네에 빵집을 열었다.

“저뿐만 아니라 제 친척들까지 모두 한동네에서 사는 데 제가 아이모리를 열기전 까진 이곳에 빵집이 없었어요. 이왕 빵집을 할 거면 이 동네에서 열면 어떻겠냐는 생각이 들었죠. 가족들도 다 한 데 사는 동네니까요. 대부분 이곳 가게들은 거창하게 개업했다고 알리지 않고 조용히 문을 열어요. 저 역시 소소하게 빵집을 시작했죠.”

정직한 빵을 만들려 했을 뿐
예전의 아이모리와 지금을 비교하면 달라진 건 손님이 많아지고 빵 종류가 몇 가지 늘어난 것밖에 없다. 처음 개업할 때부터 한결같이 지켜온 것은 빵을 만들 때 좋은 재료를 사용해 최대한 맛을 내겠다는 그의 철칙이었다. 빵집을 열면서 그는 ‘진짜 빵’을 만들기로 했다. 각종 첨가제와 합성 재료가 들어가지 않고 진짜 천연재료만으로 만든 ‘진짜 빵’. 특별한 요리법으로 만들겠다는 것도 아니고 단지 진짜 빵을 만들려는 고집이 그를 지금까지 버티게 한 원동력이었다.

“재료가 제일 중요해요. 제빵 기술은 그걸 돕기 위한 한 부분이에요. 그 재료의 맛을 어떻게 잘 이끌어내는가 문제이지요. 그런데 대부분 사람은 재료의 중요성을 잘 몰라요. 그래서 일부 빵집에서는 질 낮은 재료가 쓰이고 좋지 못한 공정으로 빵을 만들어요. 예를 들면, 제과점마다 쓰이는 밀가루의 등급이 있고 버터도 마가린, 콘 파운드 등 여러 종류가 있어요. 사람들은 재료의 차이를 모르는 데다 좋은 재료로 만든 빵을 먹는 기회가 별로 없지요. 원가가 싼 합성재료로 만든 빵 맛에 익숙해져 있어요. 그런 빵들은 사실 소비자 보다 만드는 사람 위주로 만드는 빵들이죠. 대부분 이익을 늘리기 위해 싼 재료를 이용하는 게 현실이지요.”

아이모리가 그에게 남긴 것
정직한 고집으로 시작한 빵집이지만 운영이 순탄하지만은 않았다. 잦은 원자재 가격의 폭등에 따른 어쩔 수 없는 빵 가격 상승, 주변에 있는 대형 프랜차이즈 빵집, 높은 인건비 등 아이모리의 발목을 잡는 문제가 있었다. ‘제빵 기술’ 말고도 경영을 배웠어야 했다고 말하는 연제홍 씨에게 그동안 그가 겪었던 어려운 상황들을 들었다.

“이전에 가격을 올린 적이 있었는데 약 2개월 동안 장사가 안됐어요. 하지만 재룟값이 2개월에 한번 뛰는 것도 아니고 수시로 올라요. 그런데 장사가 안될까 봐 가격을 올리지 못하고 지금 상황까지 온 거에요. 그럼 가격을 또 올리면 되지 않겠느냐고 묻는 분들도 있어요. 하지만 저희 가게 빵 대부분은 학생들이 사는데 학생들은 100원, 200원이 오르는 것도 민감하잖아요. 그 때문에 섣불리 올리지 못하고 매출이 조금씩 오를 때 잘 될 거라 생각하다 이 상태까지 왔죠.”

아이모리를 운영한 삼 년 동안 어려움도 많았고 그렇게 큰 이익도 없었다. 오히려 적자가 나지 않으면 다행이었던 적도 많았다. 그러나 그의 빵을 향한 고집에는 변함이 없었다. 맨 처음 그가 사용했던 재료 그대로 지금까지 사용해 왔다. 지금도 그가 만든 빵 앞에서는 당당하다고 말한다.

“좋은 재료를 썼다는 것은 후회 안 해요. 다른 빵집에서 일할 땐 빵을 만들면서 이런 재료를 사람들한테 먹여야 하나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런데 내 가게에서 일하면서 그런 생각이 안 든 것에 자부심을 느꼈어요. 그래요. 자부심을 남겼죠. 단지 근처 빵집과 비교해 가격만 놓고 보자면 비싼 편이니까 돈이 별로 없는 학생들에게 팔다 보니 수지가 안 맞은 거죠. 어쨌든 학생들이 진짜 빵이 어떤 건지 알았다는 것에 만족해요.”

또한, 그는 아이모리를 운영하며 사람이 남았다고 말한다. 아이모리를 아껴준 사람들. 빵집이 알려지게 된 것도 블로그에 글을 게재해준 ‘사람’ 때문이었고 함께 가게를 운영한 직원들, 그리고 우리학교 학생 등 꾸준히 자신의 빵집을 찾았던 이들 덕에 지금까지 있을 수 있었다.

“가장 기분 좋았던 적은 전에 일했던 직원이 결혼해서 아이를 데리고 와 아기에게 빵을 사줄 때였죠. 그 직원이 다시 찾아와서 아이에게 빵을 사 줄 만큼 우리 가게를 믿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 고마웠죠. 또 손님들이 저희 가게에서 빵을 먹으면서 미각이 높아졌는데 문을 닫으면 이제 어디 가서 빵을 먹겠느냐는 소리를 들을 때 미안한 마음이에요”

약 2주 전, 연제홍 씨는 페이스북을 통해 학생들에게 빵집 운영을 잠시 쉰다는 글을 올렸다. 당연히 다음 해에도 그 자리에 있을 거라고 생각하던 학생들은 놀람과 아쉬움을 표현하는 댓글을 올렸다. 연제홍 씨는 앞으로 아이모리 빵집의 앞으로 방향이 어떻게 될지는 아직 확실하지 않다며 조심스럽게 말했다.

“다음 해에도 아이모리를 운영할지는 나도 잘 모르겠어요. 가게가 아직 나가지 않아서, 나간다면 끝난 거고 안 나간다면 일단 두 달 정도 쉬어 볼 생각이에요. 하지만 만약 다시 열더라도 그땐 혼자서 할 거에요. 그동안 너무 많은 적자가 났기 때문에 많은 사람을 고용하고 지금 같은 규모가 감당이 안 돼요. 아마 빵 종류도 예전만큼 많이 안 하고 기본 빵만으로 조그맣게 하게 될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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