깃발을 들고 있는 여인과 장총을 들고 있는 사내의 정체는?
깃발을 들고 있는 여인과 장총을 들고 있는 사내의 정체는?
  • 금혜지 수습기자
  • 승인 2013.01.04
  • 호수 137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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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라크루아 「민중을 이끄는 자유의 여신」에 얽힌 이야기
외젠 들라크루아(1798.4.26~1863. 8.13)는 프랑스 낭만주의의 대표 화가다. 그는 주로 장엄하고 극단적인 방법으로 심각하고 역사적인 주제를 다뤘다. 이전에도 역사화는 있었지만, 들라크루아는 왕이나 귀족·성직자를 위한 주문 제작에서 벗어나 자신의 관념에 따라 작품을 만든 최초의 역사 화가였다.

그의 역사화 중 현재 프랑스 공화국 상징으로 쓰일 만큼 유명한 작품이 바로「민중을 이끄는 자유의 여신」이다. 이 그림은 1830년 7월 작가 자신이 목격했던 혁명의 순간을 극적으로 묘사한 작품이다. 그림 전면에는 가슴을 드러낸 여인이 프랑스 국기를 들고 혁명군을 진두지휘하고 있다. 이와 대조적으로 왼쪽의 사내는 정장을 차려입고 장총을 들고 있다. 화면에서 가장 두드러지는 두 인물의 모델이 누구인가라는 논쟁은 이 그림의 가장 큰 화두 중 하나다.

먼저, 여인은 그림의 제목처럼 ‘자유의 여신’이라고 알려져 있다. 하지만 이와는 다르게 그녀의 모델이 매춘부가 아니냐는 주장이 제기됐다. 이 주장은 여인이 가슴을 훤히 드러내고 있으며 겨드랑이에 털이 묘사된 것에서 출발했다. 당시 고전적인 전통에서는 여인의 가슴을 드러내거나 체모를 그리는 것이 천박하다고 여겨져 금기시됐기 때문이다.

이 주장에 대한 반박은 크게 두 가지로 나뉜다. 첫째는 이 여인이 프랑스를 의인화한 ‘마리안느’라는 주장이다. 마리와 안느는 프랑스에서 가장 흔한 이름이라고 한다. 이 두 이름을 결합한 마리안느는 프랑스 공화국을 여성적으로 의인화한 인물로 쓰인다. 그녀가 가슴을 노출하고 있는 것은 적의 공격에 자신을 무방비로 내놓았음을 의미한다. 이는 마리안느가 모든 것을 드러내고 자신을 프랑스를 위해 희생했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두 번째는 이 그림에 남성들이 여성을 보는 고전적인 시각이 반영돼 있다는 해석이다. 서양의 회화는 주로 남성 화가에 의해 그려졌고, 향유계층 또한 남성이었다. 고전주의에서 그림의 여인들은 남성들의 관음증적 욕망이 투영된 인물로 그려졌다. 들라크루아가 근대적 낭만주의의 대표 작가이기는 하지만 여전히 이 그림에도 이전 사회의 고전적인 시선이 존재한다는 것이다.

이 그림에 얽힌 또 다른 주장은 여신 왼쪽에 있는 양복 차림의 남자가 들라크루아의 자화상이라는 설이다. 그는 프랑스 혁명이 진행될 당시 건강 악화 때문에 혁명에 참가하지 못했다. 「베리에에게 보낸 자필편지」에 따르면 그는 “조국을 위해 싸우진 못했지만 최소한 조국을 위해 그림을 그리려고 합니다”라며 혁명에 참가하고자 하는 의지를 드러냈다. 그림 속에서나마 투쟁의 의지를 그려낸 것이다.

서양 회화에서 자화상을 그림에 넣는 것은 작가의 서명처럼 사용되기도 했으며 이는 아주 흔한 전통이었다. 하지만 양복 차림의 남자가 공화당파의 유명한 당원이라는 주장이 지배적이기 때문에 그가 들라크루아 자신이라고 단정 지을 수는 없다.

참고: 서적 「명화를 보는 눈」, 고계수이, 눌와
논문 「화가 들라쿠르아와 여행에 관하여」
KBS 프로그램 명작의 그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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