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날카로운 비상을 꿈꾸며
더 날카로운 비상을 꿈꾸며
  • 김명지 기자
  • 승인 2012.12.06
  • 호수 137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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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산곶매에 어떤 이야기를 하는 게 좋을까.”매주하는 고민이지만 이번만큼은 좀 더 특별하다. 올해 마지막 칼럼이며 영영 마지막인 칼럼이다. 부끄럽게도 달고 다니던 ‘편집국장’이란 이름으로 장산곶매를 써온 것도 어언 1년이 다 돼 가는데, 그 이름이 여전히 부끄럽다는 것은 스스로의 몫을 다하지 못했다는 생각 때문일 것이다. 전부는 아니지만, 여기엔 신문의 기획과 취재 및 기사, 조판에 있었던 모든 일련의 과정들이 큰 비중을 차지한다.

한대신문을 읽고 고마운 비판을 가해주는 여러 독자위원들의 말처럼, 우리는 간혹 지지부진하게 느껴지는 ‘좋은’ 이야기를 한 적도 있었다. 학교를 홍보하고 학생들이 홍보되는 이야기들이 ‘톱기사’가 돼 면을 장식한 적이 꽤 있었다. 이를 두고 “한대신문, 대체 왜?”라고 여러 독자들이 생각한다면 한대신문은 충분히 숙고해야 할 ‘의무’가 있다.

그러나 이런 비판의 기능이 신문의 전부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물론 ‘비판적 분석’의 활동에서 신문의 의미가 더 영향력 있게 확대될 수 있는 것은 맞다. 우리는 언론으로서 학내 그 어떤 매체들보다도 날카롭게, 정확하게 비판하는 한편 사실 자체를 전달해야 한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역사를 기록하는 매체로서 있는 사실을 전달하는 역할 또한 간과해선 안 된다. 그 중 지나치게 한 가지 견지에서만 신문을 제작했다면 그것 또한 잘못이 되겠지만 말이다.

이처럼 신문의 역할은 ‘비판’, ‘교수, 교직원, 학생 3주체의 의견 수렴’ 외에도 다양하다. 만들어내려면 만들어낼 수 있을 때까지 확대될 만큼 무궁무진하기까지 하다.

한대신문에 아쉬운 말을 할 때 독자들은 ‘비판적 기능이 아쉬워서’, ‘분석 내용에 대한 공감대가 부족해서’, 또는 ‘일부 기사 소재 자체에 의아함이 생겨서’ 등으로 평한다. 이를 모두 종합해봤을 때, 결국 ‘부족하다’는 여러 평가들은 그 맥을 모두 같이 하는 것이 아닐까. 질 높은 분석이 필요한 대학신문, 주간지란 측면에서 칭찬의 기능은 칭찬대로, 비판의 기능은 비판대로 아쉬웠던 것이 아닌지, 이것이 그 모든 비판을 관통하는 하나의 결론이 아닐지 생각해본다.

한대신문에게 묻는다. “지난 한 해 동안 이런 다양한 역할과 책임들을 충분히 고려하며 ‘주간지’의 역할에 맞는 양질의 기사를 전달했나.” 이에 한대신문은 아마도 쭈뼛쭈뼛 답할 것만 같다. “최선을 다하고자 했습니다. 그러나 최선의 노력이 항상 최고의 결과는 만드는 것만은 아님을 당신도 알다시피….” 뒷말을 흐리는 한대신문의 모습 속에 책임자로서 본 기자의 부끄러움이 슬며시 보인다.

“그래도 내년엔 좀 더 잘 해볼게요!” 한대신문은 두 주먹을 꼭 쥐고 다시 한 번 얘기한다. 애석하게도 내년도 편집국장은 후임 기자들 중에 선발되고 다른 기자들의 구성 역시 내년엔 상당수가 바뀐다.

물론 여전히 남아있는 기자들도 있지만 여하튼간 내년의 한대신문은 올해와 또 생판 다른 존재가 될 것이다. 올해 있었던 한대신문의 과오들을 온전히 올해의 한대신문 구성원들이 해결하거나 보충할 여지가 적은 것이다. 대학생으로서의 당연한 한계다. 이에 아쉬움이 크다.

그러나 한대신문은 여전히 나아가고자 한다. 올해 좋았던 점을 개발하고 그렇지 않았던 점을 철저히 비판하고 반성하며, 더 나은 내년을 만들 것이다. 마음이 편치 않은 가운데서도 비관적이지만은 않은 이유다.

황해도 장산곶에 산다는, 작고 뿌리가 날카로운 장산곶매, 중국산 매의 횡포에 대항하며 장산곶 지역의 사람들과 가축들을 지킨다는 장산곶매. 그 작은 매의 부리가 이끄는 한대신문이 내년엔 보다 더 단단하고 날카롭기를 기원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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