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신 화가 툴루즈 로트렉의 세계 ‘물랑루즈’
단신 화가 툴루즈 로트렉의 세계 ‘물랑루즈’
  • 정혜원 수습기자
  • 승인 2012.12.01
  • 호수 137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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툴루즈 로트렉의 「물랑루즈에서」
▲ 마치 그림 속을 엿보는 듯한 현장감이 느껴지는 이 그림은 파리의 어느날 밤 물랑루즈의 풍경이다.
화려한 조명아래 춤추는 댄서와 흥에 겨운 사람들. 툴루즈 로트렉의 「물랑루즈에서」는 정해진 연출 없이 순간의 상황을 포착하는 스냅 샷의 구도로 한껏 고양된 물랑루즈의 분위기를 담고 있다. 로트렉은 어느 유파로도 구분되지 않을 만큼 개성적인 화가였다. 이정순<생활대 의류학과> 교수는 “로트렉은 인상주의 기법과 상징주의 기법을 작품에 함께 사용했으며 당시 유럽에서 인기를 끌었던 일본 판화를 작품에 반영하기도 했다”고 말했다. 1891년 로트렉은 라 굴뤼의 춤에서 영감을 얻어 처음으로 물랑루즈의 포스터를 완성했다. 이후에는 주로 채색석판화에 몰두하면서 예술세계가 점차 단순해지기 시작했고 핵심적인 자세나 표정으로 독창적인 형태의 인물들을 완성했다.

물랑루즈는 도시의 유흥가이자 파리시민의 은밀한 해방구였다. 특히 댄서와 매춘부같이 사회적으로 위축되고 소외된 사람들은 물랑루즈의 자유로운 분위기 속에서 위로와 동질감을 얻었다. 로트렉은 물랑루즈를 굉장히 매력적인 곳이라고 생각했다. 이런 이유로 로트렉은 물랑루즈를 작업장 겸 배경으로 삼아 많은 그림을 그렸다. 로트렉이 물랑루즈에 애착을 가졌던 가장 큰 이유는 그 역시 사회적으로 소외됐기 때문이다. 그는 왜소증을 앓고 있었다.

유명한 귀족 가문 출신인 로트렉은 부모님의 근친혼으로 어렸을 때부터 병약하고 성장이 더뎠다. 특히 뼈가 약했던 로트렉은 14살과 15살 때 양쪽 허벅지가 골절되면서 더 이상 키가 크지 않았다. 그는 평생을 152cm의 키에 하반신이 과도하게 짧은 난쟁이의 모습으로 지팡이에 의지해 살았다. “내가 만약 다리를 다치지 않았더라면 그림을 그리지 않았을 것이다”라는 로트렉의 말은 그가 그림을 통해 개인적인 아픔을 이겨낼 수 있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또 로트렉은 “드디어 나와 키가 같은 여자를 만났다”라는 말로 자신과 같은 상처를 가졌으나 동시에 그 상처를 어루만져 주었던 친구들에 대한 애정을 드러냈다.

로트렉이 심리적 위안을 얻었다는 것은 「물랑루즈에서」에 나타난 그의 모습을 통해 알 수 있다. 로트렉은 자기의 모습을 작품에 그리는 것을 싫어했다. 18살에 그린 「거울 앞에 선 자화상」이라는 작품에는 하반신이 사물에 의해 감춰져 있다. 로트렉의 「커피 포트」는 통통한 몸체와 짧은 다리를 가진 병 그림으로 로트렉 자신의 모습을 의인화 한 것이다. 이런 그림들은 그의 마음의 상처와 이에 따른 심리적 회피를 명확히 보여준다.

이렇게 자신의 모습을 나타내는 것을 극도로 싫어했던 로트렉이었지만 「물랑루즈에서」에는 장신의 사촌 옆에 자신의 모습을 그렸다. 이런 설정은 사실상 로트렉을 더욱 작고 볼품없이 보이게 하는데 이 모습을 보고 몇몇 평론가들은 “「물랑루즈에서」는 작가가 자신을 조롱하기 위해 그린 작품이다”라고 말했다. 하지만 로트렉에게 물랑루즈는 마음의 위로를 주는 피난처였다. 로트렉은 물랑루즈의 그림 속 사람들을 하나하나 그려가는 과정에서 편안함을 느꼈다고 한다. 로트렉은 동정과 차별이 없는 물랑루즈에서 자유로웠으며 마음의 상처 또한 치유할 수 있었다.

참고: 프로그램 「명작스캔들」, 논문「로트렉의 작품연구」
이미지 출처: 구글 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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