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 시절’ 떠나기, 당신은 혹시 두렵지 않습니까
‘대학 시절’ 떠나기, 당신은 혹시 두렵지 않습니까
  • 김명지 기자
  • 승인 2012.11.27
  • 호수 137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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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득 시인 기형도의 시집 「입 속의 검은 잎」이 책꽂이에 꽂혀있음을 본다. 1학년 때 강의를 듣느라 샀던 것이다. 당연한 얘기일 수 있지만, 이 시점에서 다시 한 번 책을 펼쳐보니 처음 사서 봤을 때보다 와 닿는 부분들이 더 많아졌다.

그 중엔 시 「대학 시절」도 있다. 이 시 역시 많은 학생들이 고등학교 시절부터 한번쯤 들어봄직하다. 「대학 시절」엔 침묵하는 대학 시절을 보내는 화자에 대한 냉소적, 관조적 태도가 엿보인다. ‘그 아름다운 숲에 이르면 청년들은 각오한 듯/눈을 감고 지나갔다, 돌층계 위에서/나는 플라톤을 읽었다, 그때마다 총성이 울렸다 …(중략)… 몇 번의 겨울이 지나자 나는 외톨이가 되었다/그리고 졸업이었다, 대학을 떠나기가 두려웠다’ 화자는 나뭇잎조차 무기로 사용됐다던 그 아름다운 숲을 지나가는 또래의 ‘청년들’과 달리 ‘플라톤’을 읽고 있었다. ‘플라톤’을 읽는다는 것은 대학생으로서 ‘본분’에 충실한 모습을 빗댄 말이리라. 모범적인 삶을 살아온 화자, 그러나 그러던 그가 졸업 때가 되면서 불현듯 두려움을 느끼는 것이다.

기형도 시인의 시대와 2012년 현재는 달라도 너무 다르다. 그 사이 우리사회는 민주화에 있어 상당한 진전을 이뤘다. 우리는 더 이상 민주주의에 대한 원초적인 법제 자체를 요구하지 않아도 되는 상태에 이르렀다. 대통령 및 국회의원 등을 직선제로 선출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 됐으며 앞으로도 그럴 것이란 기대는 (가령 쿠데타와 같은 일 없이) 더더욱 당연한 일이 됐다. 제도는 기본적으로 민주주의 그 자체가 됐다.

그러나 새로운 과제가 생겨났다. 우리는 과연 진정한 민주주의를 실현하고 있는가. 정치학자 최장집 교수는 저서 「한국 민주주의 무엇이 문제인가」에서 ‘우리가 자족할 만큼 오늘의 한국 민주주의가 좋은 내용을 갖추었다고 생각할 수 있을까’하는 질문에 ‘매우 회의적’이라고 전했다. 그 원인 중 하나는 ‘민중민주주의’에서 ‘시민민주주의’로 나아가는 우리 사회의 모습이다. 독자 여러분들도 알다시피 우리사회의 민주주의는 1970~1980년대 즈음의 여러 민중운동을 통해 이룩한 것이다. 그렇다면 이제 ‘민중민주주의’ 즉, 운동의 민주주의에서 보다 나아간 개념으로서 ‘시민민주주의’를 이루고자 할 때, 무엇이 추구돼야 하는 것인가. 이점은 학생사회에도 많은 이야깃거리를 시사한다. 학생사회가 진정한 ‘시민민주주의’로 나아가려 할 때, 우리는 어디를 어떻게 향하고 있는 것인가.

우리학교의 내년 한 해를 이끌 총학생회 선거가 끝났다. 그러나 학생들의 무관심은 여전하다. 서울캠퍼스의 경우 학생들의 관심을 이끌어보고자 야외 공청회도 준비해봤지만 미약한 준비 과정과 촉박한 일정, 홍보 부족 등의 문제로 아쉬움이 크다. 선거운동부터 실제 선거가 진행되는 과정들을 보고 들으며 본 기자는 (결과와는 상관없이) 학생들이 후보들의 자질이나 공약에 대해 어떤 생각을 갖고 투표를 행사하는 지 궁금해졌다. 정확한 답은 알 수 없었으나 이 과정들을 통해 다시 한 번 생각한 바가 있다. 우리 학생사회의 ‘민주주의’는 그 제도적 장치는 훌륭하나, 실제적인 시행과 절차도, 유권자들의 관심도 미비하다는 점이다. 학생사회의 ‘시민민주주의’로의 이행이 여전히 요원해 보였던 것이다.

시대는 변했지만, 그래서 학생사회 내 구성원들은 모두 다른 가치들을 추구하게 됐지만, 여전히 ‘플라톤’은 훌륭한 고전이지만, 또한 여전히 ‘플라톤만 읽는’ 모습은 대학 사회의 변화를 일궈내지 못하고 있다. 당신의 ‘대학 시절’은 어떠한가. 당신은 멀건 가깝건 졸업을 앞두고 있다. 거대한 ‘민주 사회’를 앞두고 있다는 뜻이다. 혹시 어느 시인처럼, 지금과 같은 그대로의 모습으로 대학을 떠나기가, 그 사회를 만나기가 조금은 두렵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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