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 잉여적 사회의 도래를 위해
친 잉여적 사회의 도래를 위해
  • 류민하 기자
  • 승인 2012.11.25
  • 호수 137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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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서윤 편집장의 원동력은 ‘재미와 의미’

소규모 독립 출판자들이 한자리에 모여 그들이 만든 책과 잡지를 사고파는 ‘언리미티드 에디션’ 행사가 지난 17일, 18일 합정동 카페 ‘무대륙’에서 열렸다. ‘잉여’롭게 부스에 앉아있느라 심심하다는 말과 다르게 그는 꽤 바빠 보였다. 적어도 기자가 있는 동안은 부스에 방문객이 끊이지 않았고, 그는 방문객의 질문에 답하기 바빴다. 「월간 잉여」 독자위원이 찾아왔을 때는 들뜬 얼굴로 인사를 나누고 화기애애하게 이야기꽃을 피웠다. 「월간 잉여」는 사랑받는 매체였다. 실제로 「월간 잉여」는 독자들과 재능기부자들의 힘으로 지탱돼왔다.

‘잉여력’ 의 선순환을 꿈꾸다
그는 여느 대학생처럼 언론사 입사를 준비하던 취업준비생이었다. 10곳도 넘는 언론사의 문을 두드렸지만 그를 받아주는 곳은 없었다. 마침 토익점수도 기간이 만료됐다. 언론사 입사에 가망이 없다고 느낀 그는 스스로 잡지를 낼 결심을 했다.

“작년엔 종합편성채널도 많이 생겨서 기대했는데 결국 못 들어가고 나니까 스스로 ‘잉여’ 같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어차피 언론사에서 안 받아주니까 내가 잡지를 차려서 경쟁해야겠다고 욱하는 마음이 들었죠. 실제론 경쟁은 커녕 매달 제작만 해도 빠듯하지만요.”

아르바이트해서 모은 돈을 털어서 지난 2월 창간호를 냈지만, 다음은 막막했다. 다행히 유수 종합일간지에 나온 「월간 잉여」에 관한 기사를 보고 많은 사람이 후원을 시작했고 정기구독을 신청했다. 그 힘으로 7월까지 잡지를 낼 수 있었다. 8월까지도 소셜 펀딩을 진행해서 무사히 낼 수 있었다.

“창간 당시엔 목표가 컸어요. 제 생활이 나아졌으면 하는 기대를 했고, 광고를 많이 받으면 「월간 잉여」에 투고하는 사람들에게 투고료를 줘서 잉여들에 자활 기회를 주겠다는 목표도 있었죠. 지금은 그냥 제작비나 선순환됐으면 좋겠어요. 이제 제 돈은 그만 쓰고 싶어요. 잉여들에게 뭔가 도움이 되는 매체를 꿈꿨는데 여러 사람한테 굽실거리면서 도움만 받고 있네요. 심지어 기고자가 구독도 해주시는 경우도 있고요. 「월간 잉여」가 망할까 봐 안타까우신가 봐요. 저만큼 주인의식을 가지고 도와주시는 것 같아서 감사해요.”

잉여들의 생각과 경험을 담은 글의 투고가 이어졌고 재능기부자들도 그를 도왔다. ‘월간 잉여’의 제호도 한 캘리그래피 전문가에게 받은 것이다. 하지만 근근이 이어졌던 ‘월간 잉여’도 인쇄비 부족으로 끝내 휴간을 결정할 수밖에 없었다. 취업준비를 중단하고 올인한 일인데 심정이 어땠을까.

“‘이대론 안 되겠다’는 생각은 들었지만 어느 정도 받아들이는 마음이었던 것 같아요. 「월간 잉여」가 망해선 안 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아서 도와주신다면 망하지 않을 것이고 반대라면 망하는 거라고 생각했어요. 매체는 소통이 중요한데 독자들이 필요하다고 느껴야 의미가 있는 거잖아요. 「월간 잉여」가 계속돼야 한다고 하는 사람이 별로 없다면 나올 가치가 사라진 것이 아닌가 인정해야겠다고 생각했어요.”

잡지가 언제 망할지 모른다는 생각을 했던 그는 정기구독자를 1년 단위로 받지 않고 4개월 단위로 받았다. 8월호를 냈을 땐 마침 정기구독 기간이 끝난 시점이었다. 그는 2개월간 휴간하면서 「월간 잉여」를 재정비했다. 여러 활동을 하면서 제작비를 모았고, 독자위원들과의 모임을 통해 앞으로의 「월간 잉여」의 모습에 대해서 구상했다. 그 결과 표지 재질과 편집스타일에 변화를 줬고 본격 유가지로 전환했다. ‘300잉 클럽’이라는 후원자 클럽도 만들었다.

‘잉여의, 잉여에 의한, 잉여를 위한’ 잡지를 표방하는 「월간 잉여」는 매달 시의적인 이슈와 ‘잉여’를 연결한 테마를 정한다. 이를테면 만우절이 있는 4월엔 ‘거짓말과 잉여’, 가족의 달인 5월은 ‘가족과 잉여’, 6·25전쟁이 터진 6월은 ‘전쟁과 잉여’, 제헌절이 있는 7월은 ‘법과 잉여’로 정하는 식이다. 매월 ‘잉여’와 관련된 테마로 잡지를 채우려면 힘들지 않을까.

“아직은 괜찮은 것 같아요. 자율적으로 경험을 투고해주시는 것만으로도 재미있는 콘텐츠가 되거든요. 예를 들어 500만 원을 다단계로 날리신 분의 이야기는 그 자체로 읽는 재미가 있지만, 경각심을 느낄 수도 있거든요. 다른 ‘잉여’들이 글을 읽고 같은 피해를 예방할 수도 있고, ‘나만 이런 게 아니구나’ 하는 위로와 공감대도 얻을 수 있어요.”

자신이 필요 없다고 느끼면 곧 잉여
잉여의 사전적인 정의는 ‘쓰고 난 나머지’다. 성장주의적 관점에서 잉여는 ‘존재가치가 없는, 게으르고 능력 없는 사람’이다. 하지만 그는 스스로 ‘쓸모없다’는 느낌을 받으면 ‘잉여’라는 조금 다른 정의를 내렸다. 즉, 언론사에서 일하는 사람도 데스크진에 기사를 킬 당하고 나서 자신이 쓸모없다고 생각한다면 잉여다. 그는 이런 ‘잉여’의 원인을 무엇으로 보고 있을까.

“인생을 사는데 절대적으로 너무 많은 노력의 양을 요구한다면 그건 잉여를 양산하는 구조적인 문제가 아닌가 해요. 지금은 수많은 자격증을 따고 높은 어학 점수가 있어도 서류전형에서 우수수 떨어지는 구조잖아요. 대체 무슨 짓을 해야 남과 차별화되고 노력이 보상받을 수 있을까요. 구직하는 사람이라면 다들 느끼는 정서일 것 같아요. 게다가 ‘고스펙’이라는 것도 자기 돈을 들여서 얻는 거잖아요. 개인 비용이 너무 많이 들어야 하는 고비용 구조의 사회는 건강하지 않다고 생각해요.”

이어진 이야기에서 그는 ‘기회의 평등’ 이야기를 했고 ‘주거비용’과 ‘의료혜택’에 관한 지적도 했다. ‘입시 맞춤형’이라 고학력자를 무분별하게 양산해내는 ‘우리나라의 교육’에 관해서도 성토했다. 잉여를 만들어내는 사회 구조에 관해 굉장히 할 이야기가 많아 보였다. 여러 주제를 건드리면서 한참을 의견을 피력하고는 머쓱하게 기자에게 정리를 부탁했다. 조금 두서없긴 했지만 꽤 구체적인 요구와 바람이었다. 그가 언론사 입사 준비를 했었다는 사실이 떠올랐다. 문득, 그의 미래 계획이 궁금해졌다. 불안하진 않을까. 「월간 잉여」를 낸지도 1년 가까이 됐는데 취업준비를 다시 시작할 생각은 없을까. 이어진 답변은 그가 지금 하고 있는 좋아하는 일에 굉장히 집중하고 있다는 인상을 줬다.

“되는대로 사는 편이라 몇 년 단위의 계획은 없어요. 언제 망하게 될진 모르겠지만 일단 취업 생각은 없고 ‘월간 잉여’랑 관련된 활동만 생각하고 있어요. 다른 신춘문예에서 떨어진 작품을 받아서 소규모 출판사를 통해 실제로 책이 나오게 하는 ‘월간 잉여 신춘문예’를 열어볼 구상도 하고 있고요. 출판사와 제 자전적인 내용의 책도 계약한 상태에요. 잡지를 만들게 된 과정과 그 과정에서 만난 사람들에 관해서 쓸 계획이에요. 집필이 좀 늦어졌는데 12월호를 마감하고 다시 마무리해야죠.”     

사진 류민하 기자 rmh719@hanyang.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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