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울 클레, 자연과 음악에서 ‘신비주의’까지
파울 클레, 자연과 음악에서 ‘신비주의’까지
  • 강지우 기자
  • 승인 2012.11.17
  • 호수 137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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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 하나로 다양한 예술 사조를 넘나들다

파울 클레(이하 클레, 1879~1940)는 스위스에서 태어나 20세기 초 독일에서 주로 활동한 화가다. 흔히 예술가는 특정한 예술 사조를 띠거나 개성이 강하게 드러나게 마련인데 클레는 예술적 사조를 띠지 않는 것이 특징이다. 정금희<전남대 미술학과> 교수는 “클레는 현대미술 선구자의 한 사람으로서 생명감과 정서, 지적 활동을 생명의 진행으로 환치시켜 예술로 보여줬다”고 설명했다.

▲ 「물고기를 둘러싸고」

자연과 음악에서 찾은 미술
클레의 작품에는 꽃, 나무, 물고기 등 자연을 소재로 한 그림을 많이 볼 수 있다. 4세부터 미술을 접한 클레는 간단한 드로잉부터 수채화에 이르는 방식으로 꽃을 표현했다. 클레는 뮌헨부흐제에서 유년시절을 보냈는데 마을과 시골 풍광을 자주 묘사했다. 때문에 자연에 대한 관심이 각별했고 동·식물과 곤충을 수집하기도 했다.

클레의 미술에서의 핵심인 선은 자연에서 시작됐다. 나무의 잎맥과 줄기, 나무가 바람에 굽어지는 모습 등에서 직선과 곡선, 면의 요소들을 이끌어 냈다. 클레는 독일의 예술종합학교인 바우하우스에서 재직할 때도 자연에 대해 연구했다. 특히 하등 동물을 나타낸 표본들을 소재로 그린 「식물 연극」은 식물학적 풍경화를 펼쳐 놓은 듯하다. 이 작품은 식물의 성장과 함께 자연의 다양성과 번식력을 표현했다. 클레의 자연에 대한 통찰력은 예술의 범위를 뛰어넘은 생명 그 자체였다. 자연을 소재로 한 작품으론 「전나무 숲의 생각」, 「금붕어」, 「슬픈 꽃들」 등이 있다.
▲ 「산업화된 풍경」


음악적 추상 회화를 화폭에 그려내는 것도 클레의 특징이다. 클레는 음악가 집안의 영향을 받아 음악에 재능을 보였고 바이올리니스트로도 활동했다. 결국 화가의 길을 택하지만 음악은 그의 미술에 많은 영향을 미치게 된다.

그는 선 중에서도 평행선을 사용해 율동감을 강조했는데 이는 기하학적 입체감도 표현하면서 음악적 요소를 재현한 것이다. 예를 들어 「산업화된 풍경」에서는 급격하게 산업화된 사회의 모습을 나타내기 위해 공장의 모습만을 표현한 듯하다. 하지만 오른쪽의 AT는 음악용어 ‘a tempo(본래 빠르기로)’로 추측되며 왼편에는 하프 모양과 계단의 층계가 음계를 연상하게끔 한다. 또한 여러 겹의 평행선이 악보의 오선을 닮았다. 이경임<디자인대 금속디자인학과> 교수는 “클레는 알파벳과 조형적 요소의 경계를 두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 「코미디언2」


클레에게 바우하우스 재직 시절은 음악과 기호를 회화로 표현한 중요한 시기였다. 그는 첫 강연에서 바흐의 소나타 곡의 악절 일부를 회화적 언어로 표현하기도 했다. 특히 클레는 ‘대위법(음악에서 둘 이상의 멜로디를 한 선율로 결합하는 작곡 기법)’적인 회화를 강조했는데 평면의 이차원에 회화의 시·공간적 차원을 동시에 재현할 수 있다고 봤기 때문이다.

‘신비주의’적 예술 사조
클레가 활동한 때는 세계대전과 산업혁명으로 급격한 사회 변화가 나타나던 시기였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 철학이 흔들리고 예술에서도 사상적, 기술적으로 급변했다. 클레는 이런 변화에 민감하게 반응하며 여러 표현기법을 복합적으로 시도했다. 클레의 작품에 더 다가가기 위해 그가 수용하고 시도한 복합적인 경향들을 이해할 필요가 있다.

클레의 작품에서는 과학주의, 유겐트스틸, 인상주의, 표현주의, 초현실주의, 입체주의, 분할주의, 인본주의 등 다양향 예술적 경향이 나타난다. 클레는 선을 기본으로 하며 단순한 선으로부터 복잡한 조형적 요소로 확대해 나갔다. 조형이론을 과학적으로 설명하고자 한 클레에게 ‘선의 작가’라는 애칭을 붙이기도 한다. 또 해부학을 공부한 클레는 인체의 근육이나 동식물의 구조를 구체화해 표현했다. 유겐트스틸은 자연을 하나의 조형적인 모티프로 해 간단한 조형적 미를 표현하는 것이다. 클레는 자연에서 선을 유추해 변화시키고 패턴을 형성해 대상을 추상화했는데 이 때문에 클레의 근본을 유겐트스틸에서 찾기도 한다.

클레는 인상주의의 영향으로 선으로 형성되는 형태들이 빛에 의해 변할 수 있음을 알았다. 그러나 클레는 인상주의와 표현주의를 그대로 받아들이지 않고 새롭게 해석했다. 인상주의는 근원적 실체를 파악할 수 없지만 자연스럽고 경쾌한 느낌을 주는 것으로, 표현주의는 받아들여진 인상을 가능한 한 가장 충실하게 표현하는 것으로 여겼다.

클레는 즉흥적으로 심리를 표현하기 위해 선을 자동기술법, 즉 초현실주의까지 발전시킨다. 이 교수는 자동기술법을 “무의식적으로 떠오른 생각을 이성의 통제 없이 표현하는 것”이라 설명했다. 클레는 희한한 배경과 세련된 기법으로 초현실적인 표현을 했다.

클레는 이탈리아 예술에서 인간의 존귀함을 인식하고 기계문명에 찌든 인간의 삶에 냉소적 시선을 보냄으로써 인본주의 경향을 드러낸다. 「나무 위의 처녀」, 「코미디언2」은 기괴한 캐리커처 기법으로 각각 고전의 미의식과 현대의 삶을 풍자하고 있다.

클레는 추상주의에 가깝다는 평이 많지만 이처럼 다양한 예술 경향을 아우르는 모습을 보인다. 일부 미술학자들은 이러한 클레의 예술 경향을 ‘신비주의’라는 대안적 예술 사조로 바라보기도 한다. 이 교수는 “시대가 변함에 따라 예술가들도 표현의 변화에 유동적인 것이 당연하다”며 “예술가들을 반드시 하나의 예술 사조로 분리할 필요가 없다”고 덧붙였다.  

참고: 도서 「파울 클레」,   
논문 「파울 클레(Paul Klee), 음악의 구조를 이용한 회화의 다차원성 추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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