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UE] “좋은 무대를 디자인하려면 ‘좋은 눈’을 가져야죠”
[HUE] “좋은 무대를 디자인하려면 ‘좋은 눈’을 가져야죠”
  • 류민하 기자
  • 승인 2012.11.15
  • 호수 137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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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대 디자이너 정승호 동문의 예술적인 고집

정승호 무대 디자이너의 원동력은 '꿈'이다

‘무대 디자이너’라는 직업은 사실 생소하다. 무대 디자이너는 무대의 모든 시각적인 요소를 설계하는 사람이다. 무대 디자이너 정승호가 디자인하는 무대는 공연에 참여하는 모든 요소의 배경이며, 그 자체로 하나의 유기체다. 그리고 그의 꿈이 뛰노는 장이다.

무대를 만나기까지
그는 원래 연극영화학과가 아니라 체대를 지망하던 학생이었다. 체대와 연극영화학과는 꽤 거리가 있어 보이는데 어찌 된 일일까. 그가 우리학교 연극영화과에서 무대 디자이너를 꿈꾸기까지의 과정은 순탄치 않았다.

“아이스하키 선수였던 아버지를 닮아 운동에 흥미가 있었어요. 하지만 체대에 낙방했죠. 마침 부모님께서 전자 쪽이 전망이 좋을 것 같다며 추천해주셔서 광운대 전자재료공학과에서 한 학기를 다녔어요. 그런데 도저히 적성에 안 맞았어요. 하얀 가운을 입고 반도체 회사에 다니는 모습을 도저히 상상할 수 없었거든요.”

학교를 자퇴하고 그는 짧지만 강렬한 이미지를 영상으로 표현하는 CF 감독이 되고 싶어 우리학교 연극영화학과에 지원했다. 당시 우리학교에서는 유명한 CF 감독이 많이 배출되고 있었다.

“그렇게 들어간 연극영화학과를 거의 10년 만에 졸업했어요. 집안 형편이 넉넉지 못해서 휴학도 밥 먹듯이 했죠. 내가 뭘 잘하는지 학교 밖에서 다양한 체험을 하면서 알아보고 싶었기도 했고요. 단역 배우, 공사판 노동자, 촬영 현장 스태프 등 안 해본 일이 없어요.”

훌륭한 교수님들의 연기 수업을 들으며 품었던 배우의 꿈은 단역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깔끔하게 포기했다. 아르바이트로 운동권 학생 단역을 맡으며 수도 없이 NG를 냈기 때문이다.

“선배가 단역 아르바이트를 권유해서 몇 편을 했어요. 운동권 학생 역할이었는데 대사가 구어체가 아니라 문어체로 쓰여서 입에 잘 붙지가 않았어요. 카메라가 클로즈업으로 들어와서 찍는데 대사를 계속 틀렸어요. 사람들이 집에 못 가게 되니까 점점 너무 미안해졌어요.‘나는 연기를 하면 안 되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하지만 그에게는 연극이란 ‘꿈’이 있었다. 그래서 맞는 일을 찾는 일이 오래 걸려도, 그렇게 찾은 일이 정말 힘든 일이라는 것을 깨달았을 때도 계속할 수 있었다. 또 그는 무대 제작 아르바이트를 접하면서 ‘무대 디자이너’라는 직업에 매력을 느꼈다. 연출이나 연기보다 무대 디자인이 더 재밌었고 잘할 것 같았다. 무대미술을 가르치던 교수에게는 ‘배우 하지 말고 무대미술 하라’는 말까지 들었다. 그의 표현을 빌리자면 ‘망치질 하나는 끝내주게 잘하는’ 학생이었다. 무대 디자인을 본격적으로 배우고 싶었던 그는 미국으로 유학을 떠나 무대 디자인을 처음부터 다시 배우고 돌아왔고, 「스위니 토드」, 「내 마음의 풍금」 등의 작품으로 유명세를 얻기 시작했다.

간절한 고집
무대 디자인은 혼자 하는 일이 아니다. 공연이 펼쳐지는 장을 디자인하는 것이기 때문에 공연에 참여하는 모든 스태프들과 소통해야 한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각자 다른 주관을 지니고 있으면 부딪치기도 한다고.
“회의에 저와 연출자뿐 아니라 배우, 의상 디자이너, 조명 스태프 등 정말 다양한 사람들이 참가해 각자의 의견을 제시해요. 주관이 다르면 매번 부딪치죠. 하지만 대화를 통해서 생각을 맞춰가려고 해요. 그러면서 그 사람 것도 아니고 내 것도 아닌 결과물을 같이 만들어 나가는 거죠.”

다소 원론적인 이야기에 그친 것 같아서 그가 굽히는 편도 많은지 슬며시 물었다. 각 분야의 전문가들은 모두 각자의 고집이 있을텐데 합의가 힘든 순간이 있지 않을까. 도저히 접을 수 없는 의견이 있을 땐 어떻게 하는지 궁금했다.

“사실 어떤 건 절대로 안 굽혀요. 완벽하게 확신이 드는 디자인을 생각해내면 간절하게 다른 사람들을 설득하죠. 왜 이렇게 해야만 하는지를요. 제 간절함에 다른 사람들이 설득 당해서 테이블의 에너지가 그쪽으로 흘러가면 제가 원하는 무대가 구현되는 거죠. 그래서 디자이너는 말을 잘해야 하는 것 같아요.”

무대 디자인은 장면을 디자인하는 것
일반적으로 무대를 공간으로만 파악하기가 쉽다. 하지만 무대를 ‘제3의 배우’라고 표현하는 그에게 무대는 정적인 존재가 아니라 유기적인 존재다.

“무대 디자인은 공간뿐 아니라 장면을 디자인하는거에요. 장면을 이루는 요소는 공간 외에도 시간, 조명, 배우의 동선 등 다양하죠. 디자이너는 장면을 이루는 모든 요소들을 고려해야 해요. 장면을 디자인하다 보면 공간이 이야기를 할 때도 있어요.”

장면을 디자인해내기 위해서는 치밀한 대본 분석이 필수다. 대본을 읽었을 때 받은 어렴풋한 느낌을 명확하게 시각적으로 구현할 수 있는 자료를 찾고, 대본의 시대적 배경을 조사하기도 한다. 그동안의 경험에서 언뜻 영감을 받아 새로운 무대에 응용하기도 한다. 치밀한 장면 분석이 강점인 그는 미술을 전공하지 않은 것을 불리하다고 생각한 적이 한 번도 없다.

“처음 무대 디자이너가 되겠다고 생각했을 때 아무래도 디자이너니까 그림을 잘 그려야 하는 줄 알았어요. 물론 잘 그리면 좋죠. 하지만 그림 실력보다는 상상력이 훨씬 중요해요.”

그는 예술가가 ‘뭐가 달라도 달라야 한다’고 생각한다. 다를 수 있으려면 남과 다른 생각을 해야 한다고 믿는다.

“절 가르치셨던 한 교수님이 좋은 디자이너가 되려면 ‘좋은 눈’을 가져야 한다고 하셨어요. 아직도 명심하는 말이에요. ‘좋은 눈’은 세상을 달리 볼 수 있는 눈이겠죠. 사물을 바라볼 때 다른 사람보다 조금 더 관찰하고 생각하는 거에요. 그러다 보면 어느 순간 사물 이면에 있는 것이 보이기도 하고요.”

사진 허인규 기자 high0325@hanyang.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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