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상상하고 버텨야지, 그게 깡이지”
“더 상상하고 버텨야지, 그게 깡이지”
  • 허인규 기자
  • 승인 2012.11.09
  • 호수 137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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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디오 드라마 황금시대의 주역, 김선옥<사회대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과> 교수


김선옥 교수의 원동력은 ‘깡다구’이다

그의 이야기를 듣고 있으면 할아버지께서 옛날 이야기를 들려주는 것 같다. 한 편의 드라마처럼 머릿속에 저절로 장면이 그려진다고 할까. 말뿐 아니라 드라마로도 사람들을 매혹해왔던 그는 천생 이야기꾼이다.

70년대에도 스펙보다 스토리
대학 시절 김선옥 교수는 방송 엘리트 코스를 밟은 학생이었다. 방송과 관련된 상도 많이 받았고, 새로운 도전도 즐길 줄 알았다. 지금으로 생각하면 다양한 대외활동 스펙으로 무장한 학생이다. 실제로 30년 후 그는 KBS 라디오 본부장이라는 위치까지 올랐다.

“제4회 한대신문 학술상에서 내가 쓴 소설 「생전연습」이 문예부문 최우수 작품으로 당선돼서 연재됐어. 계속 소설을 쓰다 보니 창작이 재미있기도 하고 새로운 것을 하고 싶은 마음에 대학 최초로 뮤지컬에도 도전했지. 「노래하는 한국인」이라고 음대, 체대, 연극영화학과 등 약 200명의 학생이 동원됐던 뮤지컬 극본을 썼어. 그때 우리 등록금이 3만 원이었는데 제작비가 700만 원일 정도로 큰 공연이었어. 한대신문에 투고한 소설이 극본을 쓸 수 있었던 계기가 됐지.”

방송에 관심을 두면서 그는 본격적으로 한대방송국 활동을 시작했다. 그 때 받은 상들은 방송국 합격에 큰 힘이 됐다. 하지만 그는 수상 같은 실적보다는 스토리가 중요하다고 말한다. 그는 상을 받으며 스펙을 쌓았지만 동시에 그만의 스토리를 만들고 있었다. 상은 그 과정에서 자연스레 따라왔다.

“자신만의 콘텐츠로 존재감을 가져야 남들보다 앞서 갈 수 있어. 나에게는 작품을 만드는 과정 하나하나가 의미 있는 스토리였지. 한대방송국에서 「횃불이 타오르듯」이라는 프로그램을 제작한 것도 그 중 하나인데 대학가는 물론 KBS나 MBC 등에서도 인기를 얻어 화제가 됐어. 작품이 인정받았다는 사실도 중요하지만, 작품을 만드는 과정이 더 의미 있었어. 항일 운동가들의 노래들을 피아노 연주로 재구성한 프로그램이었는데 구전되는 노래를 채록하기 위해 전국의 할아버지 할머니들을 직접 찾아다녔어. 그런 일화가 진짜 경쟁력이야.”

그와의 인터뷰는 취재라기보다는 이야기를 나누는 것에 가까웠다. 경험에서 나오는 그의 이야기에는 말 한마디마다 무게가 있었다. 그는 그저 ‘이런 일을 했다’고만 말했지만 ‘나는 이런 이야기가 있다. 당신은 어떤 이야기들을 만들고 있느냐’는 말로 느껴졌다.

“KBS에 입사하기 전에는 MBC의 ‘웃으면 복이 와요’라는 코너의 스크립터로 일했어. 명동 뒷골목에서 미국잡지의 블랙코미디를 각색해서 연출자에게 주는 일이었지. 일주일에 한두 차례 정도 내가 각색한 콩트가 사용될 때마다 돈을 받는 쏠쏠한 재미도 있었지만 그렇게 일하는 것 자체가 재미있었어. 그때부터 PD가 되면 코미디 프로그램을 해야겠다고 생각했지. 그런데 회사에서 몸이 왜소하다는 이유로 라디오 연출자로 일하게 했어. 옛날에는 촬영현장 사람들이 직접 플로어를 뛰어다니고 AD가 촬영기사보다 먼저 마이크 같은 소품을 옮겨야 했거든. 당시에는 아쉬웠지만, 덕분에 잘할 수 있는 일을 찾아 1970년대 초 라디오 드라마 황금시대의 주역이 됐지.”

 

상상이란 사다리로 최고까지 오르다
KBS 라디오 1·3국장, KBS 라디오 본부장, 아트비전 이사, 경인방송 전무이사 그리고 현 한양대 겸임교수. 한국 방송의 주축이었던 그는 최고 위치까지 오를 수 있었던 이유가 ‘창의력’이라고 말한다. 그는 항상 ‘만약 …하면 어떻게 될까’, ‘이렇게 하면 재미있을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창의적인 생각을 하려면 책을 많이 읽고 기발한 상상을 하는 것이 중요해. 내가 연출한 프로그램 중에 「물 분노하다」라는 작품이 있는데 ‘물이 분노하면 어떻게 될까’라는 상상에서 출발했지. 지금은 상황이 다르지만 그 당시 우리나라는 물을 사 먹는 일이 없을 정도로 물이 풍족해서 신선한 생각이었어. 물론 텅 빈 머리로 기발한 생각을 하는 것은 힘들어. 그래서 책을 읽는 거야. 평소에 책을 통해 외국의 이슈에 관심을 두고 우리도 곧 그렇게 될 수 있다고 생각한 거지. 상은 그냥 따라왔던 것 같아. 항상 기발한 아이디어나 새로운 포맷을 고민했던 걸 인정받은 것은 아닐까.”

그는 기존의 것을 당연하게 받아들이지도 않았다. KBS 라디오 시스템에 ‘왜’라는 물음을 던진 그의 자세는 채널 성격을 확고히 하는 데 이바지했다.

“KBS는 채널이 너무 많아. 그러니까 특색이 없고 내용이 똑같지. 나는 KBS 제1라디오를 시사토크와 뉴스중심의 시사 정보만으로 구성했어. 음악도 필요 없고 딱 그것만 하자는 거지. 지금도 그 체제는 유지되고 있어. 그리고 장애인과 노인을 위해 특정방송 제3라디오를 개국했어. 제3라디오는 책을 읽어주는 프로그램이나 당일 신문을 읽어주는 프로그램이 주를 이루지. 요즘 인재들은 그런 사고가 많이 부족한 것 같아. ‘기존의 것’이 ‘당연한 것’은 아니야. 그래서 안타깝지.”

KBS 아트비전 이사로 있으면서는 ‘불멸의 이순신’, ‘해신’ 같은 작품들의 미술·디자인을 총 책임졌다. 바다를 배경으로 하는 드라마이기 때문에 리얼한 재현을 위해서는 전투함이 필요했다. 그는 버려진 폐선으로 500톤급 전투함 11척을 만들었다. 라디오국의 일과는 전혀 달랐지만, 재미를 붙이려고 노력했고 결국 적응해냈다. 그는 그런 도전이 힘들기보다는 재미있었다고 말한다. 그는 경쟁사회에서 최적화된 인물인지도 모른다. 치열한 경쟁을 이겨낸 그는 이제는 지금까지의 비결을 후배들에게 알리고 싶다고 말한다.

“경쟁사회에서 살아남으려면 ‘깡다구’가 필요해. 물론 그 ‘깡다구’는 그냥 나오는 게 아니지. 첫째, 초지일관 밀고 나가는 오기와 악착이 필요해. 열정만이 자신의 운명을 결정할 수 있고 성공의 지름길이야. 둘째로 상상하고 창의성을 발휘해야 해. 방송은 창조산업이기 때문에 새롭고 꿈같은 것이 헛된 것만은 아니야. 포기하지 않고 더 창의적인 생각을 하려는 노력도 ‘깡’이야. 셋째로 좋은 것, 쉬운 것, 편안한 것에서 탈출해야 해. 영원히 살 것 같이 살지 말고, 오늘 죽을 것처럼 치열하게 살아야지.”

사진 류민하 기자  rmh719@hanyang.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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