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려함에 가려진 무용수를 바라보는 검은 시선
화려함에 가려진 무용수를 바라보는 검은 시선
  • 이다원 기자
  • 승인 2012.11.04
  • 호수 137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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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드가 드가의 「무대 위의 무용수」
▲ 여성 무용수가 동작을 취하고 검은 정장의 사나이가 이를 지켜보고있다.
인상주의 화가들은 빛의 변화에 따른 순간의 포착을 중요시한다. 인상주의 화가들의 작품들 중에 풍경화가 많은 것은 이 때문이다. 그런데 인상주의 화가이지만 다른 인상주의 화가들과 달리 유난히 인물화를 즐겼던 화가가 있다. 프랑스 화가 에드가 드가다.

드가는 인물화의 주제로 특히 여성 무용수를 즐겨 그렸다. 인물들의 역동적인 움직임을 좋아했던 드가에게 여성 무용수는 최고의 그림 소재였다. 그래서 드가의 또 다른 이름이 ‘무희의 화가’였다. 이런 드가의 작품들 중에서 가장 손꼽히는 작품이 「무대 위의 무용수」다. 이 작품은 드가의 그림 양식의 특징을 잘 보여주고 있다.

살짝 기울어진 머리, 한쪽만 보이는 다리, 화려한 의상. 「무대 위의 무용수」는 무대 중앙에서 어느 여성 무용수가 동작을 취하고 있는 것을 묘사하고 있다. 커튼 뒤에 가려진 다른 무용수들은 무대 중앙의 무용수에게 시선을 집중시킨다. 그림에서 가장 독특한 점은 주인공이 화면의 중심에서 벗어난 구도와 무용수를 위에서 내려다보고 있는 시점이다. 이정순<생활대 의류학과> 교수는 “인물을 중심에서 빗겨 대담히 배치하고 제한된 틀에 맞춰 배경을 자르는 것은 그 시대에 매우 파격적인 시도였다”며 “이는 드가의 전형적인 그림 수법으로, 우연히 셔터가 눌려 찍힌 사진처럼 사건의 순간을 포착한다는 작가의 의도가 강하게 드러난다”고 설명했다.

이런 기술적인 수법 외에도 드가의 여러 작품에 걸쳐 나타난 또 다른 특징이 있다. 이는 일반인들도 쉽게 발견할 수 있는 것인데, 드가의 그림에 여성 무용수와 함께 이를 지켜보는 검은 정장을 입은 사나이가 종종 등장한다는 것이다.「무대 위의 무용수」에서도 찾아볼 수 있는 이 검은 정장의 사나이는 속된 말로 그 시대의 ‘스폰서’로 설명할 수 있다.

당시 프랑스 사회에서 여성 무용수는 가난한 하류 계층의 소녀들이었다. 반면에 사교장의 성격이 강했던 오페라 극장에서 발레를 관람했던 것은 사회 지도층들과 귀족들이었다. 이들 중 2층 박스석에서 무대를 관람한 최상류 계층들에게는 극이 끝난 뒤 무대 뒤에서 무용수들을 따로 만날 수 있는 특권이 주어졌다고 한다. 무대 뒤 마련된 크고 화려한 공간에서 가난한 무용수들과 부유한 상류 인사들 사이의 은밀한 만남이 이뤄진 것이다. 검은 정장의 사나이에 대해 일부는 그저 ‘예술 후원자였을 뿐’이라고 설명하지만 ‘19세기 프랑스 발레계의 퇴폐의 상징’이라는 것이 다수의 의견이다. 드가는 화려한 무대 뒤에 숨겨진 예술계의 어두운 단면 또한 화폭에 담으려 했던 것이다.

한편 드가의 일생과 관련해 재미있는 이야기 하나가 전해진다. 무용수들과 여인들을 주제로 수많은 작품들을 남긴 그가 실은 여성 혐오주의자였다는 것이다. 이는 13살이라는 어린 나이에 어머니의 죽음을 맞아야했던 드가의 유년시절과 관련된다. 어머니의 죽음은 그에게 상실감과 죄의식, 격한 분노를 느끼게 했다. 또 13살 소년에게 어머니의 부재는 마치 누군가에게 버림을 받는 일과 같았다. 이 때문에 드가는 예술가들 사이에서도 금욕주의자이자 독신주의자로 유명했다고 한다. 동시대에 활동한 다른 인상주의 화가 마네는 이런 드가를 두고 “여자를 사랑할 수도, 여자에게 사랑한다고 말할 수도 없는 친구”라고 말했다고 한다.

참고: 논문「미술풍경 : 여성을 싫어했지만 여성의 본질에 매료된 드가」, 「예술을 사랑했던 화가 드가」, 「드가의 회화에 나타난 시점의 연구」, 프로그램 「명작 스캔들」 
이미지 출처: 구글 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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