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 종소리, 저녁 기도의 알림인가 아기를 향한 진혼곡인가
교회 종소리, 저녁 기도의 알림인가 아기를 향한 진혼곡인가
  • 노영욱 기자
  • 승인 2012.10.06
  • 호수 1373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장 프랑수아 밀레의 「만종」
▲ 「만종」은 평화로운 농촌 풍경을 그린 것으로 널리 알려져 있지만 달리에게는 아기 무덤이 숨겨져 있는 공포스러운 작품이다.
해질 무렵의 들녘에 서 있는 한 농민 부부. 하루의 일이 끝나자 교회에선 종소리가 울려 퍼지고 이들은 감사의 기도를 드린다. 장 프랑수아 밀레의 「만종」은 일을 마친 뒤의 평온함과 기도의 경건함을 그리고 있다. 이정순<생활대 의류학과> 교수는 “자연의 거대한 품 안에서 우뚝 서 있는 인간의 모습이 화면을 압도한다”며 “황혼이 들녘을 무겁게 채운 것을 표현하기 위해 활용된 어둑한 색조와 시적 정감은 밀레 예술의 정수이며 이는 자연 속에서 인간이 느끼는 감동을 전달한다”고 말했다.

밀레는 노르망디 농촌의 토박이 농부의 아들로 태어났다. 그림을 위해 파리로 유학한 그는 1849년 파리의 정치적 혼돈과 콜레라를 피해 가족과 함께 바르비종으로 이사했다. 그 후 그는 30년 동안 이곳에 거주하며 농민과 자연을 화폭에 담기 시작했다. 초상화가로 널리 인정받던 그였지만 농민의 행동과 전체적인 분위기에 더 주목해 농민의 순수함과 노동의 가치를 표현하고자 했다. 이로서 밀레는 풍경을 인간에게 종속시켜 노동하는 인간의 존엄성을 그린 바르비종파의 대표적 화가로 자리매김 했다. 이 교수는 “자연의 변덕스러운 날씨와 투쟁해야 살 수 있는 농부들의 삶은 초라하고 남루하지만 밀레는 그 속에서 펼쳐지는 고귀한 인간애를 심미적 경지로 이끌어 냈다”며 “그는 농민들이 삶에 순종하는 모습을 그리고자 했다”고 전했다.

한편 스페인의 초현실주의 화가 살바도르 달리는 자신의 저서에서 「만종」속 부부 사이에 놓인 감자 바구니가 아기의 무덤이라는 주장을 내놓았다. 작품의 부부가 기도를 하는 이유는 수확에 대한 감사가 아니라 굶어 죽은 아기로 인한 슬픔이라는 것이다. 실제로 달리는 이 작품을 보는 순간 알 수 없는 불안감과 공포에 시달렸다고 한다. 달리가 끊임없이 의문을 제기하자 루브르 박물관은 X선 검사를 실시하게 된다. 그런데 놀랍게도 바구니 쪽에 알 수 없는 윤곽선이 발견됐고 이것이 당시 사용되던 아기의 관과 흡사하다는 의견이 제기됐다. 달리의 주장이 설득력을 얻게 되는 순간이었다.

밀레가 그린 것이 감자 바구니라고 믿는 이들에겐 달리의 주장은 황당한 가설에 불과하다. 그런데 당시 작품이 그려진 유럽 사회를 생각하면 달리의 주장이 얼토당토하지 않은 것만은 아니다. 실제로 19세기 중반 유럽의 영아 사망률은 25%에 달했다. 빵을 달라고 보채던 아이가 나중에 보니 굶어 죽어 있었다는 이야기를 소재로 한 말러의 가곡이나 유명한 시들도 이를 뒷받침 한다. 이 교수는 “밀레 본인만 해도 「만종」을 그릴 당시 너무도 가난해 자식들의 먹을거리를 걱정할 지경이었다”고 전했다.

평온한 농촌 풍경과 여유를 잊고 바삐 살아가는 현대인에게 감사의 의미를 상기시킨다는 점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밀레의 「만종」을 찾고 있다. 게다가 다소 괴기스럽고 파격적인 달리의 주장은 「만종」이 해석될 수 있는 폭을 넓힘으로 이 작품을 더 흥미롭게 만들었다. 현재 작품 속 부부 사이에 놓여 있는 것이 감자 바구니인지 아기의 무덤인지 확실히 알 수 있는 방법은 없다. 하지만 이 논쟁 속에서 변하지 않는 것이 있다면 밀레의 소박하고 숭고한 예술이다. 이 교수는 “「만종」은 슬픔과 고통 속에서 꽃피워진 작품이기에 밀레 예술의 정수를 보여준다고 평가 받는다”고 전했다. 

참고: 논문 「프랑스 바르비종 회화의 자연관에 관한 연구」, 프로그램 「명작 스캔들」
이미지 출처: 구글 이미지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