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용의 입장을 새롭게 바라보는 역발상의 무극
처용의 입장을 새롭게 바라보는 역발상의 무극
  • 김유진 기자
  • 승인 2012.10.06
  • 호수 137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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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용설화를 재해석한 영화 「이두용 감독의 처용무」

▲ 처용탈의 모양은 색이 붉고 코가 커 한국인의 모습과는 다르다.
「이두용 감독의 처용무」는 제목에 감독의 이름이 직접 들어간다는 점에서 독특하다. 처용무 앞에 감독의 이름이 붙은 이유는 ‘이 감독이 생각하는’ 처용무이기 때문이다. 처용은 자신의 아내와 역신의 불륜을 목격하고 관용의 춤을 췄다고 알려져 있다. 후손들은 처용의 너그러운 정신을 닮고자 처용무를 지금까지 계승하고 있지만 이 감독이 생각하는 처용무의 성격은 조금 다르다. 처용이 아내의 불륜을 목격하고 춘 춤은 죽음의 춤이라는 것이다.

영화는 처용가가 잔잔하게 깔리면서 송&남 무용연구소(이하 무용연구소)를 배경으로 시작된다. 영화의 주인공은 율, 정희, 민기다. 율은 무용연구소의 주인이며 나이가 많은 무용가다. 율은 자신의 제자였던 정희를 아내로 맞아 무용연구소를 함께 운영하고 있다. 율은 전통 처용무를 재해석한 현대무용 「처용무」를 연출하는데 율은 처용, 정희는 처용의 아내로 연기하게 된다. 그리고 율은 자신의 제자이자 정희의 동기생인 민기에게 역신 역할을 맡긴다.

전통 처용무에 대한 율의 생각은 단순했다. 왜 처용무를 주제로 창작 무용을 만들었냐는 아내의 물음에 “재미있잖아. 마누라가 다른 놈과 간통했는데 처용은 그저 춤을 추는 게 기막힌 희극이지”라며 웃어넘긴다. 그러다 율은 처용무를 연습하면서 정희와 민기의 눈빛이 심상치 않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젊은 아내와 좀 더 오래 살기 위해 매일같이 약을 먹는 자신이 비참해지기까지 한다.

결국 율은 공연 전날 정희와 민기의 간통을 목격한다. 처용과 같은 상황에 처한 율은 충격을 받지만 정희와 민기에게 냉정한 어투로 공연이 끝난 뒤 얘기하자고 말한다. 공연 당일 민기와 정희는 그 누구보다도 애틋한 연인처럼 춤을 춘다. 율은 민기와 정희의 춤 앞에서 격정적이면서도 조금은 슬픈 듯한 춤을 춘다. 처용과 비슷한 상황이지만 율은 관용의 춤을 췄던 처용과는 달랐던 것이다. 공연이 끝나고 출연자들은 무대에 올랐지만 율은 사라진다.

영화는 율이 매일같이 먹었던 약을 던지고 춤을 추며 걸어가는 장면으로 끝맺는다. 역신과 아내를 마주하고 용서했던 처용과는 달리 율은 민기와 정희의 곁을 떠나는 것이다. 「이두용 감독의 처용무」의 촬영감독을 맡았던 이동삼 감독은 “율은 약을 버리고 죽음을 맞으러 간 것”이라며 “영화 중반에 율이 말했던 ‘기막힌 희극’을 몸소 보여주는 장면”이라고 말했다. 겉으로는 신이 난 듯 춤을 추지만 약을 버리고 아내 곁을 떠나가는 율의 속내는 오히려 희극보다는 비극에 가깝다.

사진 제공:  공 미디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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