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섯 가지 색의 움직임으로 역신을 물리치다
다섯 가지 색의 움직임으로 역신을 물리치다
  • 김지연 기자
  • 승인 2012.10.06
  • 호수 137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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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용의 아량으로 탄생한 처용무의 상징적 의미
서울 밝은 달밤에 밤늦도록 놀고 지내다가 들어와 자리를 보니 다리가 넷이로구나. 둘은 내 것이지만 둘은 누구의 것인고? 본디 내 것이다만 빼앗긴 것을 어찌하리. (「삼국유사」에 기록된 ‘처용가’)

▲ 다섯 가지 색의 처용무복을 입은 무용가들이 처용무를 추고 있다.
신라 헌강왕 때 등장한 처용설화는 인간으로 환생한 동해용왕의 아들, 처용의 이야기다. 처용이 놀다 밤늦게 집에 들어가니 아내가 웬 남자와 동침을 하고 있었다. 그러나 처용은 화를 내지 않았고 이에 감동해 아내를 범하던 자가 역신(전염병을 의미하는 존재)으로 나타나 처용과 약속을 했다. ‘처용의 형상이 있는 곳이면 그 곳은 절대 들어가지 않겠다’는 내용의 약속이었다.

이후 민간에서는 전염병을 피하기 위해 처용의 얼굴을 대문 앞에 그려 붙였다. 궁중에서는 섣달그믐날 처용 얼굴의 탈을 쓰고 처용무를 추는 나례(악귀를 쫓기 위해 행하는 의식)를 행해 나쁜 기운을 막아 전염병을 피하고자 했고 관아에서도 매년 한해를 시작하기 전 처용탈을 쓰고 처용무를 추는 것을 의례로 했다.

처용무는 신라시대부터 조선시대를 거치면서 점차 궁중무로서 형태를 갖추게 됐다. 신라시대와 고려시대의 처용무는 한 명 혹은 두 명이 추는 춤이었으나 조선시대에 들어서 중국의 음양오행사상의 영향을 받아 다섯 명이 함께 추는 ‘오방처용무’로 자리 잡는다. 음양오행사상이란 ‘음양사상(인간의 모든 현상이 음과 양이 확장하고 소멸함에 따라 결정됨)’과 ‘오행사상(목, 화, 토, 금, 수의 다섯 가지가 음양의 원리에 따라 우주의 만물이 생성하고 소멸하게 됨)’을 함께 묶어 부르는 말이다. 오방처용무는 다섯 명의 처용이 모두 짙은 자주색의 동일한 가면을 쓰되 상의는 청색, 백색, 적색, 흑색, 황색의 다섯 가지 색을 입는다. 오행사상의 다섯 가지 색, 즉 오방색이 이 처용무복에 적용되면서 각 방위별로 상징적인 의미를 띠게 되는 것이다.

청색은 동쪽 방위에 해당하며 ‘봄’을 의미한다. 활기, 용기를 상징하며 간혹 귀신을 쫓거나 괴질(콜레라)을 물리치는 데 사용됐다. 백색은 서쪽 방위에 해당하며 ‘가을’을 의미한다. 우리 민족이 가장 신성하게 여겼던 색이며 빛을 상징한다. 백색은 자연과의 동화를 의미하며 사람이 죽었을 때 세속을 벗고 새로운 삶의 세계를 바라는 뜻에서 사용됐다.

적색은 남쪽 방위에 해당하며 ‘여름’을 상징한다. 따뜻하고 만물이 무성한 남쪽에 해당하기 때문에 생명력이 충만한 색으로 일컬어진다. 이처럼 적색은 청색과 비슷한 의미를 가진다. 그러나 적색의 주술적인 성격은 청색보다 훨씬 강해 주로 인간을 괴롭히는 존재를 쫓는 신앙의 색으로 사용돼왔다. 흑색은 북쪽 방위에 해당하며 ‘겨울’을 의미한다. 예로부터 흑색은 어둠, 죽음과 같은 부정적인 의미를 지니고 있었지만 모든 자연은 위에서 아래로 흐른다는 세상 이치를 의미하기도 하며 모든 만물의 생사를 관장해왔다. 또한 시각적으로 다른 색을 돋보이게 하는 효과가 있어 세련된 이미지로도 사용됐다.

마지막으로 황색은 오색의 중심이며 중앙 방위에 해당한다. 사계절 모두와 연관이 깊은 색이며 오색 중 가장 고귀한 색으로 간주됐다. 황색은 모든 것을 포용하고 조화롭게 한다는 의미가 있으며 천하를 통치하는 천자(天子)를 상징한다. 따라서 과거 임금님만 황색 옷을 입을 수 있었던 것이다.

처용무는 색뿐만 아니라 가면, 의복의 모양, 춤의 자세 및 대형 등에도 깊은 의미가 숨겨져 있다. 윤여탁<연세대 체육교육학과> 교수는 논문 「처용무의 표현적 상징성에 관한 분석」을 통해 “처용무는 괴상한 외모나 사실적인 행위와 동작으로 역신을 퇴치하려는 것이 아니다”라며 “상징적인 의미를 통해 역신을 승복시키려는 정신이 깃들어 있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현재 처용무는 처용 체조, 처용 비보이 등의 다양한 창작활동으로 이어지고 있다. 이에 중요무형문화재 39호 처용무 보유자 김천홍 선생은 논문 「처용무의 전승양식에 관한 연구」에서의 인터뷰를 통해 “처용무의 원형과 전통의 보존이 우선”이라며 “이를 제대로 이해하고 창작이 이뤄진다면 처용무가 더 발전할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참고: 논문 「처용무에 나타난 오방색의 상징성 연구」, 「처용무의 미적 요소에 관한 연구」, 「처용무의 전승양식에 관한 연구」, 「처용무의 표현적 상징성에 관한 분석」
사진 출처: 구글 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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