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글을 쓰는 이유는 문학이 내 삶을 구원했기 때문이다”
“내가 글을 쓰는 이유는 문학이 내 삶을 구원했기 때문이다”
  • 허인규 기자
  • 승인 2012.10.02
  • 호수 137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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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에 생명을 담는 마법사, 동화작가 이상권<국어국문학과 84> 동문

이상권 작가의 원동력은 ‘문학’이다

“그런 나에게 친구가 있을 리 없었다. 학교에 오면 의자에 달라붙어 꼼짝도 하지 않았다. 아무도 나를 건드리지 않았다. 아이들 사이에서 나라는 존재는 아주 별난 놈으로 뿌리내려 있었다. …중략… 나는 고슴도치처럼 몸을 웅크리고 절대로 속마음을 드러내지 않았다.” (이상권 작가의 자전소설 「난 할 거다」 중)
소년에게는 난독증이 있었다. 선생님께 구박받고, 친구들한테는 따돌림당했다. 어느 날 그에게 문학이 다가왔다. 문학 속에서 소년은 세상을 여행하는 모험가나 차원을 이동하는 마법사도 될 수 있었다. 문학은 그에게 선생님이고 친구였다.

문학으로 완성한 마법
이상권 작가는 어릴 적부터 유난히 상상력이 풍부한 아이였다. 곳곳에서 마법이 일어나고, 현실 세계에서 다른 차원으로 이동하는 일이 빈번한 세상을 꿈꿔왔다. 이는 어른이 돼서도 변하지 않았다.

“블로그 별명이 마법사인 건 현실에서는 불가능하지만 아직도 마법사가 되는 걸 꿈꾸기 때문이야. 어릴 적부터 난 환상적인 걸 좋아하는 평범한 아이였어. 그런데 고등학생 때부터 갑자기 책을 읽을 수가 없었어. 난독증이 생긴 거지.”

난독증(글을 소리내어 읽기 힘든 증상)은 많은 것을 빼앗아 갔다. 학급 석차는 58명 중 57등으로 떨어졌고, 선생님께 구박받거나 친구들에게 따돌림당하기 일쑤였다. 그런 환경에서 그는 자연스럽게 책과 만났다. 책을 읽으면서 그는 은연중에 자신의 글쓰기 능력을 발견했다.

“나락으로 떨어지고 나서야 삶의 의미를 발견한 거지. 그때부터 무작정 글을 쓰기 시작한 거야. 한양대 국어국문학과를 나왔지만 부끄럽게도 공부를 안 해서 문학에 대해 배운 것도 없었어. 그냥 나도 뭔가 할 줄 아는 게 있다는 생각으로 외로울 때마다 글을 썼어.”

동화작가이면서 소설작가이기도 한 그는 공부는 못했지만 무작정 글을 썼기 때문에 지금의 그가 있다고 말한다.

“대부분 대학에서는 문학으로 시, 소설만 가르쳐. 그런데 난 공부를 못 해서 모든 장르를 다 공부해야 한다고 믿었어. 동화도 쓰고, 시도 쓰고… 그래야 하는 줄 알았어. 그래서 단지 글을 썼을 뿐이야.”

천상 글쟁이일 것 같은 그도 처음부터 작가의 길을 걸었던 건 아니다. 그 또한 남들처럼 회사에 취직했었다. 다만 남들과 다른 점은 자신이 하고 싶은 일에 회사까지 그만둘 만큼 전부를 걸었다는 것이다. 그는 말한다. 언젠가는 한 번쯤 인생에서 승부수를 띄워야 할 때가 올 것이라고.

“회사 생활에 적응하지 못하면서 지금까지 나를 버티게 했던 것에 대해 생각했어. 바로 문학이었는데 이걸 놔 버리면 어떻게 될까 싶더라고. 그래서 사표를 던졌어. 한 10년만 여기서 몸부림쳐보자고 생각하면서 결혼까지 포기할 정도로 각오했었지. 작가가 못 돼도 후회하지 않겠다고 다짐했어. 그 후 바로 카메라 한 대 들고 이산 저산 야생화 찍으러 다녔어. 글을 쓰려면 감성이 중요한데 어느새 어린 시절 감성이 많이 없어졌더라고. 준비 기간을 10년 잡았는데 한 1, 2년 만에 어느새 작가가 돼 있었어. 나도 모르는 사이에 내 문장이 생겼던 거야.”

모든 것이 생태인 것을
작가들에게 가장 소중한 작품은 무엇일까. 많은 사람들로부터 인정을 받은 작품일까. 아니면 자신만의 철학이 담겨 있거나 특별한 사연이 녹아 있어 향수를 일으키는 작품일까. 이상권 작가에게 가장 소중한 작품을 물었다.

“작가들은 가끔 자전적인 작품을 써. 소설 형식을 빌렸지만 거의 100% 사실이라고 해도 과장이 아닌 자기 이야기를 말이야. 내 작품 중에선 ‘내가 왜 문학을 하게 됐나’가 녹아있는 「난 할 거다」가 있어. 책 안의 주인공은 나와 다름없지.”

대도시로 올라온 주인공은 농촌과 다른 거대한 세계를 보면서 적응하지 못하고 지쳐간다. 그는 「난 할 거다」를 ‘처음으로 세상과 부딪쳐 다치고 무너지면서 또 다른 나를 발견하는 이야기’라고 설명한다.

“지금도 난 그 작품을 보면 ‘아스라해’. 내가 정말 이 시기를 거쳐 왔나. 꼭 꿈같기도 하고. 이런 ‘아스라함’ 때문에 애지중지하는 걸까. 소중한 작품은 완성도나 대중성과 떼놓고 생각해야 한다고 봐.”

대답은 의외였다. 생태문학의 거장이라고 불리는 그라면 생태문학을 대표할 수 있는 작품을 꼽을 것이라 예상했기 때문이다. 화제를 전환하면서 ‘생태’란 뭔지 물었다.

“인간도 생태 일부야. 그런데도 ‘생태’와 ‘인간’을 굳이 분류하는 건 다들 ‘인간’이라는 이야기로 너무 좁게 글을 쓰는 데 익숙해졌기 때문이야. 인간 외의 생명체까지 생각해서 글을 쓰는 게 생태소설이지. 사실 나는 생태소설이라는 말을 그렇게 좋아하지는 않아. 내게는 그저 당연한 일이거든.”

단지 살아있으니까, 글을 쓰는 게 기뻐서 글을 쓴다는 그는 앞으로 동화 등 일반 문학뿐 아니라 자연과학까지 영역을 확장할 예정이다.

“작가들이 글을 쓰는 영역이 너무 좁아서는 안 돼. 쓰고 싶은 글은 다 써야 해. 우리나라 작가들은 너무 영역이 좁아. 이건 작가한테도 바람직하지 않은 것 같아. 삶의 한 부분으로 문학을 받아들이려면 남과 다른 문장을 써야지. 그게 중요해. 아무리 매끄러워도 남과 비슷한 글보다는 서툴러도 자기만의 세계가 있는 것이 중요한 거야.”              

사진 류민하 기자  rmh719@hanyang.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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