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남의 빨래, 위로의 발래, 희망의 빨래
만남의 빨래, 위로의 발래, 희망의 빨래
  • 노영욱 기자
  • 승인 2012.09.22
  • 호수 137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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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살이에 자친 당신에게 들려주는 삶의 이야기, 뮤지컬 「빨래」
▲ 슬플 때는 빨래를 하라는 주인 할머니와 희정 엄마의 위로에 나영은 힘을 낸다.
하늘과 맞닿아 있는 서울의 한 작은 동네. 전형적인 달동네와 같은 모습이다. 언덕 위에 난잡하게 들어선 집 옥상에는 빨래들이 어지럽게 널려있다. 무대 양옆에는 문이 2개씩 나란히 있다. 트럭 소리가 들리고 배우들이 무대 뒤에서 등장하기 시작하더니 이내 마을은 분주해진다. “서울살이 몇 핸가요”라고 서울살이의 애환을 말하는 노래는 가사 내용과는 반대로 비교적 경쾌하게 뮤지컬의 막을 연다.

사람들이 빠져나가고 판 2개가 펼쳐지자 무대는 여주인공 나영의 방이 된다. 나영은 이 동네로 새로 이사 왔다. 주인 할머니의 잔소리 같은 당부를 들은 후 나영은 자신의 방에 들어와서 강원도에서 걸려온 엄마의 전화를 받는다. 이사는 잘 했냐는 엄마의 말에 강원도 사투리로 애써 밝은 척을 하지만 힘 없는 그녀의 목소리는 서울살이의 어려움을 짐작케 한다. 5년 동안 서울에 살며 한 6번의 이사와 7번의 이직. 처음 서울에 올 때는 꿈 많은 소녀였지만 사라져버린 꿈을 다시 찾기엔 그녀는 너무 지친 듯 하다. 

판이 접히면서 무대에서 사라지자 오른쪽의 단상 위에는 남주인공 ‘솔롱고’의 옥상이 등장한다. 그가 몽골인임을 말하듯 옥상 문은 몽골의 국기로 뒤덮여 있다. 나영의 옆집에 사는 솔롱고는 필리핀 친구 ‘마이클’과 함께 빨래를 널며 한국어 공부를 한다. 어눌한 발음으로 한국어 연습을 하는 도중 몰래 책을 컨닝하는 마이클의 모습과 “공장에서 일하는 것이 X같다”는 그의 대사에 관객은 웃음이 터진다. 마이클이 퇴장한 뒤에도 솔롱고는 계속 빨래를 널고 있고 맞은편 옥상인 무대의 왼쪽 단상 위에는 나영이 빨래를 널기 시작한다. 두 주인공의 첫 만남. 처음 보는 나영에게 솔롱고는 관심이 가는 듯 소심하게 나영을 쳐다본다. “안녕하세요, 오늘 날씨 좋죠?”라는 어색한 말로 먼저 말을 거는 솔롱고. 자기소개도 해보지만 나영은 별로 관심이 없는 듯 재빨리 빨래를 널고 내려가 버린다. 솔롱고는 아쉽지만 “다시 만날 때까지 안녕”이라며 애절하게 맞은편 빈 옥상을 응시한다.

양옆에 있던 4개의 문이 일렬로 나열되면서 무대 끝과 제일 왼쪽 문에 연결된 빨랫줄이 나타난다. 또 다른 이웃 주민인 희정 엄마는 이 빨랫줄에 애인 구씨의 빨래를 넌다. 그녀의 방에서 같이 사는 구씨와 함께 나영과 인사를 하던 희정 엄마는 주인 할머니의 등장에 흠칫 놀란다. 방값이 몇 달 째 밀려있기 때문이다. 동대문에서 옷 장사를 하는 그녀의 벌이는 방값을 내기엔 빠듯하다. 자신이 파는 옷을 주며 주인 할머니를 구슬려 보지만 주인 할머니는 매번 방값을 내지 못하는 희정 엄마가 마음에 안 들어 구수한 욕으로 희정 엄마를 몰아세운다.

또 다시 빨래를 널러 옥상에 올라온 솔롱고. 그런데 옥상에 나영의 것으로 추정되는 다소 민망한 속옷이 날라와 있다. 그 속옷을 보고 행여나 누가 볼까 주변을 살필 때 마침 나영도 빨래를 널러 올라온다. 다시 만난 나영과 솔롱고. 솔롱고는 나영의 속옷을 건네주고 아쉬운 마음을 뒤로한 채 방에 들어가려 한다. 그러자 나영은 “몽골에서 왔다고 했죠?”라며 다급히 말한다. 그 말이 끝나자마자 기다렸다는 듯이 솔롱고는 들어가려던 몸을 돌려 나영과의 대화를 시작한다. “우리 친하게 지내요”라는 솔롱고의 말에 나영과 솔롱고는 한층 더 가까워진다.

이렇게 나영, 솔롱고, 희정 엄마, 주인 할머니는 우리 주변의 이웃들과 같이 소소한 일상을 살아간다. 하지만 나영은 일하던 서점에서 뜻밖에 억울한 일을 당하고, 솔롱고는 한국인의 횡포와 폭행을 경험한다. 주인 할머니는 아픈 딸의 똥기저귀를 바라보며 한숨짓는다. 누구나 자신에게 주어진 삶의 무게에 짓눌려 힘겹게 살아간다. 하지만 이들은 포기하지 않는다. 자신들을 위로해 주는 이웃이 있고 사랑하는 사람이 곁에 있기 때문이다. 이들은 오늘도 상쾌한 바람에 빨래를 널며 하루를 힘차게 시작해 본다.

사진 출처: 명랑씨어터 수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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