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궁에는 참말 화약 연기가 없소?”
“수궁에는 참말 화약 연기가 없소?”
  • 김지연 기자
  • 승인 2012.09.08
  • 호수 137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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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연「수궁가」를 통해 세계화로 뻗어가는 판소리
▲ 판소리 오페라 창극 「수궁가」의 한 장면이다.
지난 5일 국립극장 해오름극장에서 열린 판소리 오페라 창극 「수궁가」를 관람했다. 수궁가는 현재까지 전해지는 판소리 다섯 마당 중 하나다. 자라가 병에 걸린 용왕을 위해 약으로 쓸 토끼를 꾀어 용궁으로 데려오지만 토끼가 기지를 발휘해 용왕을 속이고 살아온다는 이야기다.

먼저 개구리의 북소리에 무대가 열린다. 어둠 속에서 도창(창극이 진행되는 동안 극중의 인물이 아닌 사람이 판소리로 해설자의 역할을 하는 사람)역을 맡은 안숙선 명창이 등장한다. 안 명창이 입은 한복의 치마는 높이 3m를 훌쩍 넘는다. 그 위에서 울려 퍼지는 안 명창의 소리는 극장 안을 감싸기 시작한다.

“천지가 탄생할 제. 어둠장막 깜깜한데…” 안 명창의 소리에 맞춰 바다생물들이 안 명창의 치마폭에서 등장한다. 사람 얼굴보다도 큰 동물가면을 쓴 소리꾼들이다. 우스꽝스럽게 표현된 동물가면들은 동물들의 특징을 부각해 만들어 웃음을 유발한다. 아픈 용왕의 주위에서 터지는 바다생물들의 카메라 플래시는 기자들의 취재 열기를 떠올리게 한다. 무대 뒷편에는 용왕을 조롱하듯 유유히 토끼들이 지나다닌다.

“소신의 엄지발로 토끼놈의 가는 허리를 바드드득 물어다가 대왕전에 바치리다.” 자라가 토끼 간을 구해오겠다며 토끼의 생김새를 그려달라고 하는 대목은 매우 인상적이다. 김홍도, 앤디 워홀, 뒤러, 피카소가 차례로 나와 본인들의 화법이 담긴 그림을 보여준다. 결국 자라가 피카소가 그린 성인잡지 ‘플레이보이’ 토끼 로고를 들고 지상으로 향할 때 객석은 웃음바다가 된다.

용궁으로 가자는 자라의 제안에 토끼는 이렇게 말한다. “수궁에는 참말 바람도 없고 티끌 먼지, 화약 연기도 없소? …(중략)… 벼슬 아니어도 화약 먼지 없는 곳이라면!” 이 대목은 인간의 욕심에 피해 입는 동물들의 모습을 보여준다. 그러나 용궁으로 향하는 바다 또한 쓰레기가 둥둥 떠다닌다. 

국립창극단이 세계적인 오페라 감독 아힘 프라이어와 공동 제작한 이번 공연은 ‘판소리의 세계화’라는 평을 받았다. 우리의 전통 서사에 서구적인 무대 연출과 세계관이 더해지면서 국악이 설 자리는 더 넓어졌다. ‘최후의 만찬’을 떠올리게 하는 용왕의 식사자리, 플레이보이지 토끼 가면, 각종 쓰레기로 가득한 무대는 우리 고유 창극이 지루할 것이라는 편견을 깬다. 벼슬을 위해 다투는 동물들의 모습에서 부귀영화만을 좇는 인간에 대한 풍자 또한 볼거리로 꼽힌다.

이런 대중적인 볼거리가 행여 우리 고유의 소리를 방해하지는 않을까 하는 우려의 목소리도 있다. 하지만 도창의 소리는 관객의 마음을 울리고 우리 전통의 소리를 그대로 보여준다. 해학적인 연기를 펼치는 가면 쓴 소리꾼들 또한 우리의 소리를 가슴 깊이 전달한다. 앞으로의 세계 무대에서도 우리 전통공연이 설 자리는 충분해 보인다.

이미지 출처: 국립극장 공식 블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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