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랑 함께 마음을 달달하게 풀어 가실래요?
저랑 함께 마음을 달달하게 풀어 가실래요?
  • 허인규 기자
  • 승인 2012.09.08
  • 호수 137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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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들이 함께 웃는 사회를 꿈꾸는, 유경희<생기랑 마음달풀> 대표
유경희 대표의 원동력은 ‘사람에 대한 애정’이다

유경희 씨를 만나기 위해 합정에 있는 상담소 ‘생기랑 마음달풀’에 도착했다. 깔끔한 인테리어와 아기자기한 장식품들이 자아내는 분위기는 마음을 차분하게 만들었다. 아늑한 분위기에 취하는 것도 잠시, 푸근한 어머니 같은 그가 나긋한 목소리로 이야기를 시작했다.

주부에서 운동가로 그리고 상담사로
1999년 ‘한부모’ 용어 사용, 2005년 3월 호주제 폐지와 같은 큰 사건을 비롯해 ‘평등명절’운동, 난자채취불가운동 등 21세기 전후에 일어난 여성운동들은 큰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일부 남성들은 여성운동에 손가락질을 했다. 그런 손가락질을 꿋꿋이 견디며 밤낮 구분 없이 달려온 운동가가 있다. 바로 여성운동가 유경희 씨다.

“처음부터 여성운동가가 돼야겠다고 생각한 건 아니에요. 그냥 한국여성민우회(이하 민우회)에서 도자기도 빚고 여러 가지 취미 활동을 하면서 시작을 했던 거지.”

민우회의 상임위원이라는 위치까지 올랐던 그는 지그시 눈을 감으며 어떻게 여성운동을 시작하고 상담소를 열었는지 말했다.

“민우회를 졸업한 건 임기를 마무리한 후 건강이 많이 안 좋아서였어요. 디스크 판정을 받고 치료를 3년간 했죠. 쉬면서 그동안 하고 싶었던 그림 그리기, 인형 만들기 등을 배우며 지냈는데 너무 좀이 쑤시고 답답해서 같이 운동하던 사람들이 그립더라고요.”

가만히 있는 게 힘들어 뭔가를 해야 한다는 그는 이런 자신과 운동을 하는 후배들을 위해 ‘생기랑 마음달풀’ 상담소 문을 열었다. ‘생기’는 그의 별칭이다. 생기랑 마음을 달달하게 풀어 간다는 의미를 담고 있는 상담소 이름은 그의 생각을 가장 잘 담고 있는 문구다.

“편안하고 좀 가볍게 하고 싶었어요. 운동을 하면서 계속 느끼던 게 여성운동가들이 너무 소진하면서 일한다는 거에요. 주말도 없이 열악한 환경에서 일을 하잖아요. 운동도 모두가 잘살자고 하는 건데 우선 자신이 먼저 행복해야 할 것 같더라고요. 그래서 운동가들에게 이곳이 충전의 공간이 됐으면 좋겠다는 생각으로 시작했죠.”

비록 민우회에서의 직위는 내려놨지만 그는 아직 여성운동을 그만둔 것이 아니다. 단지 지금은 교육과 상담에 더 초점을 맞추고, 이곳이 안정을 찾으면 생기랑 마음달풀에서만 목소리를 낼 수 있는 이슈를 찾겠다는 것이다. 그는 이제 좀 더 작은 소리에 귀를 기울이려고 한다.

“남성이 인간이듯이 여성도 인간이다”
페미니스트에게 페미니즘을 묻는 것은 인터뷰어로서의 준비 부족으로 여겨질 수 있다. 하지만 여성운동을 하는 사람에게 경험을 통해서만 느낄 수 있는 것을 묻고 싶었다. 그래서 페미니스트에게 물었다. 진정한 페미니즘이란 무엇이냐고.

“결국 페미니즘이 주장하는 바가 성 평등인 거잖아요. 여성들이 세상을 정복하자는 게 아니거든요. 저는 페미니즘이 글자 그대로 ‘인간주의’라고 생각해요. 남성이 인간이듯이 여성도 인간이라는 거에요. 저는 그게 페미니즘의 핵심이라고 생각해요.”

이런 철학을 가진 그도 처음부터 지금 같았던 것은 아니다.

“그 전에는 가족 속에서 엄마, 아내로 머물렀어요. 하지만 사회에 참여하면서부터는 사회 구성원으로서의 나 자신에 대해 이해하기 시작했죠. ‘내가 뭔가 관심 갖고 할 수 있는 일이 아내와 엄마 역할 외에도 있을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정말 내가 무엇을 하면서 살고 싶은지에 대한 호기심으로 가능성을 찾기 시작했어요.”

여성운동의 세계에 발을 담근 후의 삶이 마냥 순탄한 것만은 아니었다. 밤을 새는 경우는 허다했고, 토론장에서 나갈 때면 사람들이 에워싸고 따지는 봉변을 당하는 경우도 있었다. 인터넷 카페에 올라오는 욕설, 비하 발언 등은 말할 것도 없었다. 그런 경험을 침착하게 말하던 그도 감정이 드러날 만큼 힘든 일이 있었다.

“누구도 해결하지 못하는 문제들로 찾아오는 경우가 있어요. 법원에서 계속 불이익 판결을 받거나, 남편에게 시달리는 것에 지쳐서 지방에서 보따리 싸서 오는 사람들도 있죠. 그 중 특히 안타까웠던 경우는 약에 중독돼서 대화를 하는데 약 냄새가 확 풍기는 사람이었어요. 제가 할 수 있는 건 그냥 얘기를 들어주는 것뿐이었어요. 해 줄 수 있는 게 없더라고요. 그럴 때 굉장히 힘들었어요.”

사람 인, 사이 간
같은 ‘운동가’지만 남성이 아닌 여성이라는 이유로 추가되는 고통은 그 무게가 다르다. 그런 고난을 자신만의 에너지로 이겨낸 그는 자신의 원동력이 ‘사람에 대한 애정’이라고 말한다.

“또 다른 세계를 만나는 것이 재미있었어요. 만나는 사람들 속에서 자신이 성장해가는 것을 느꼈거든요. 내게는 없는 매력을 다른 사람에게서 발견하고 배우는 데 호기심이 생겼던 것 같아요.”

예전 이야기를 하면서 그는 작은따옴표를 많이 사용했다. 당시의 생각을 그대로 전달하려는 화법이었을까.
상대가 그의 생각에 공감하기 쉽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대화를 통해 타인과 공감하는 것에 익숙해 처음 온 손님까지 가족처럼 만드는 그녀는 사람 사이에서 더 빛나는 것 같았다.

“저를 계속 움직이게 만드는 힘은 제 안에 있다고 생각해요. 그 힘은 주변의 사람들이 이런 저를 이해하고 지지해줄 때 충전되는 것 같아요. 이 상담소도 마찬가지에요. 후배들이 이 공간을 친정집처럼 힘들 때 털어놓고 의지할 공간으로 생각할 때 저와 상담소는 생기를 찾아요.”

사진 류민하 기자 rmh719@hanyang.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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