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술] 악마의 속삭임에 흔들리는 스포츠
[학술] 악마의 속삭임에 흔들리는 스포츠
  • 김지연 기자
  • 승인 2012.09.07
  • 호수 136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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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작용 심하면 사망에 이르기까지
2012 런던올림픽이 성공적으로 마무리됐다. 우리나라는 종합순위 5위에 오르는 성과를 거뒀다. 선수들의 피나는 노력 덕분이었다. 이처럼 전 세계 스포츠인들은 메달의 영광을 위해 4년 동안 실력을 갈고닦지만 잔인하게도 단 한번의 승부가 이들의 세계 랭킹을 정한다. 그래서 승부의 세계에선 항상 검은 유혹이 따르게 마련이다.

▲ <그림1>
도핑의 유혹에 빠진 선수들
과거 1988년 서울올림픽에서는 캐나다의 세계적 단거리 선수인 벤 존슨이 100m 경기 세계 신기록을 세우고 우승했다. 그러나 금지약물인 남성호르몬 약제를 복용한 채 경기에 참가한 것이 발각돼 금메달 박탈은 물론이고 스포츠 선수로서 영구 제명되는 처벌을 받았다. 2006년 아테네올림픽은 대회 폐막을 앞둔 시점까지 23명의 선수가 금지약물 복용으로 적발되는 등 ‘도핑올림픽’이라는 오명을 남기기도 했다. ‘전설의 사이클 황제’라고 불리는 미국의 랜스 암스트롱은 수년 전부터 금지약물 복용 의혹을 받아 14년간의 선수 생활 동안 쌓은 모든 수상 기록을 삭제당했다.

이번 런던올림픽에서도 금지약물 복용 사례가 있었다. 남자 유도 73kg급 준결승에서 왕기춘 선수와 대결했던 미국의 니콜라스 델포폴로 선수가 대마초 성분이 첨가된 마약과자(해시 브라우니)를 먹은 것으로 밝혀졌다. 또 여자 포환던지기 금메달리스트 벨라루스의 나제야 오스탑추크 선수는 근육 강화제 ‘메테놀론’을 복용해 런던올림픽에서 유일하게 메달을 박탈당하는 수모를 겪었다.

‘도핑(Doping)’은 스포츠에서의 경기력 향상을 목적으로 약물을 오남용하는 것을 말한다. 올림픽 헌장에 따르면 올림픽 운동의 목적은 스포츠의 기반이 되는 육체ㆍ도덕적 자질의 향상을 도모하는 데 있다. 그러나 도핑은 이같은 원칙이 무시된 채 경기에 참가하는 선수의 국위선양과 기록 경신이 맹목적으로 우선시되는 현실을 보여준다. 이는 미국의 한 스포츠 잡지가 국가대표 육상선수들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실시한 결과에서도 드러났다. 질문은 ‘당신은 이 약을 복용하면 금메달을 딸 수 있는 대신 부작용으로 7년 뒤에 사망합니다. 이 약을 복용하시겠습니까?’. 충격적이게도 80%의 선수가 ‘그렇다’고 대답했다. 이처럼 운동선수들에게 있어 도핑은 그야말로 악마의 속삭임이다.

체계적으로 관리하는 금지약물
도핑을 금지하는 이유는 ‘선수가 정상 생리적인 상태에서 발휘할 수 있는 최대의 능력을 공명정대한 방법을 통해 겨룬다’는 스포츠의 본래 목적에 어긋나기 때문이다. 약물의 힘을 빌어 좋은 성적을 내려는 태도는 스포츠 정신을 해치는 행위인 것이다. 또 약물이 선수의 건강에 해를 줄 가능성이 높고 약물 중의 일부는 마약, 흥분제로서 대개 습관성을 가지고 있다. 이런 이유로 국제올림픽위원회(이하 IOC)는 모든 올림픽 선수들에게 도핑에 관련한 규약을 적용시켰다.

세계반도핑규약 제2조에 따르면 금지약물을 투여하는 것은 물론 금지약물을 소지하는 것도 반도핑규정을 위반하는 행위다. 또 △선수의 시료 내에 금지약물 혹은 그 대사물질 등이 존재하는 경우 △시료 채취를 회피하고 도핑관리과정에서 부정행위를 하는 경우도 적발 대상이다.

이같은 규정에도 매해 금지약물이 새롭게 개발되고 있다. 이 때문에 세계반도핑기구(이하 WADA)는 수시로 연간 1회 이상 금지약물을 국제표준으로 공포한다. 개정 사항이 반영된 금지목록 국제표준을 각 가맹기구와 정부에 배포하고 3개월이 경과되면 개정 사항의 효력이 발생된다.

이때 금지목록에 포함되는 금지약물은 3가지 기준 중 2가지 기준에 해당해야 한다. 보통 지정된 금지약물은 동화작용제, 호르몬제, 흥분제, 호르몬 길항제 및 변조제며 이에 해당하지 않는 모든 금지약물은 ‘특정약물’로 지정된다. 특정약물을 금지약물로 지정하는 3가지 기준은 △어떤 약물이 경기력을 향상시키는 잠재력을 가지고 있는 경우 △어떤 약물이 선수의 건강에 잠재적 위험이 되는 경우 △어떤 약물이 스포츠정신에 위배되는 경우 △어떤 약물이 다른 금지약물의 사용을 은폐하는 잠재력을 가지고 있는 경우이다.

이렇게 체계적인 과정을 통해 지정된 금지약물에는 시중에서 판매하는 두통약과 감기약, 심지어 우리가 흔히 마시는 에너지음료와 비타민제도 포함된다. 특히 우리나라에서는 한약이나 건강보조식품이 금지약물에 포함되는 경우가 있어 매우 주의해야 한다. 한약의 경우 마황, 반하, 마전자, 아편 등을 확인해야 하며 건강보조식품의 경우 도핑금지약물이 포함돼있는지를 봐야 한다.

독이 든 사과, 아나볼릭 스테로이드
현재 IOC는 금지약물 목록을 작성해 각 국가 올림픽위원에게 통보하고 있다. 1950년대에는 코카인, 헤로인 등의 마약류만 금지했으나 1970년에 들어서는 흥분제, 진통제로 확대됐다. 현재는 동화작용제, 이뇨제, 호르몬류의 약물을 금지하고 있으며 부분적으로는 알콜, 마취제류 등의 약물도 사용을 제한하고 있다.

이중에는 본래 치료목적으로 사용됐던 약물인 ‘아나볼릭 스테로이드’가 있다. 아나볼릭 스테로이드는 고환이 발달하지 않아 테스토스테론(정소에서 분비되는 남성 호르몬)이 나오지 않는 환자를 치료할 목적으로 개발됐다. 환자에게 영양 공급이 필요할 때도 큰 도움이 된다. 또한 에너지 대사 속도를 높여 단시간 내에 엄청난 힘을 발휘할 수 있게 한다. 서민<단국대 의예과> 교수는 “아나볼릭 스테로이드에는 근육을 증강시키는 기능이 있다”라고 전했다. 이 때문에 운동선수들에게 있어 아나볼릭 스테로이드는 매우 유혹적인 약물이었다.

스테로이드는 대부분의 동물과 식물의 몸속에서 스스로 만드는 화합물을 말한다. 스테로이드는 모든 사람이 갖고 있으며 부신, 고환, 그리고 난소에서 스테로이드 호르몬이 분비된다. 스테로이드 호르몬은 스트레스를 감소시키는 데 도움을 주며 체액의 균형을 맞춰주는 등의 역할을 할 수 있다. <그림 1>처럼 스테로이드는 3개의 육각형과 1개의 오각형으로 이뤄진 스테로이드 핵을 갖고 있다. 이 기본 구조에 무엇이 붙느냐에 따라 신체에 작용하는 성질이 달라진다. 아나볼릭 스테로이드를 복용할 경우 근육과 뼈의 양이 늘어나고 성대와 체모가 자라는 등의 남성적 특징이 뚜렷해진다. 테스토스테론의 구조를 변형시켜 남성적 특징을 강화시킨 것이 바로 아나볼릭 스테로이드인 것이다.

이같은 효과 때문에 역도나 육상, 수영과 같이 근력을 필요로 하는 종목에서 여자 선수들이 아나볼릭 스테로이드를 복용하기 시작했다. 아나볼릭 스테로이드가 금지약물로 지정되기 전인 1972년 뮌헨올림픽 당시 여자 수영선수들은 아나볼릭 스테로이드에 의해 남성화된 모습을 보여준다. 아나볼릭 스테로이드가 근육증강에 뛰어난 효과를 갖고 있음은 분명하다.

그러나 서 교수는 “그 부작용 또한 의심할 여지가 없다”고 강조했다. △성장기 아이들의 성장 발육을 억제하고 남성의 가슴을 크게 만드는 점 △동맥경화증을 유발시켜 심근경색과 뇌졸중의 가능성을 높이는 점 △간 기능의 이상을 초래해 심하면 간종양을 일으킬 수도 있는 점이 그 내용이다. 실제로 보디빌더가 아나볼릭 스테로이드를 장기간 복용한 결과 간암의 발생으로 사망한 사례가 있다. 또 성적 충동, 공격적 태도 등을 유발해 정신병을 야기하기도 한다.

참고: 도서 「도핑: 국내 선수의 관리와 국제 대회 운영」, 「경기력 향상을 위한 스포츠 과학 가이드: 도핑과 금지약물」, 「A Guide to the WADA Code」
이미지 출처: 네이버캐스트 「아나볼릭 스테로이드」, 구글 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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