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자에게 들어보는 뮤지컬 「샘」의 이모저모
기획자에게 들어보는 뮤지컬 「샘」의 이모저모
  • 김명지 기자
  • 승인 2012.09.02
  • 호수 136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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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극장 무대 앞에서 만난 이채경 씨
사회의 ‘순환자’ 역할을 하는 것이 분명하지만 그 가치를 말하기엔 어딘가 민망해질 수 있는 변기, 그러나 뮤지컬 「샘」의 외침은 거리낌 없다. 그리고 그 자신감은 뮤지컬페스티벌에서 수상까지 이끌어냈다. 하지만 사실 기획자 이채경 씨가 말하는 뮤지컬 「샘」의 시작은 단순했다. “작곡자와 함께 코믹한 해피엔딩의 극을 써보자는 생각을 하면서 이것저것 재밌는 요소들을 생각하고 있었는데 마침 우리가 있던 곳이 화장실 앞이었어요.” 화장실에 들어오는 남자, 웃기지 않을까. 그럼 왜 들어오지? 변기… 엉뚱하게 좌변기가 있는 여자화장실에 뒤샹의 샘을 찾으러 왔다고 하면 어떨까? 생각의 꼬리에 꼬리를 물며 브레인스토밍을 하는 것, 그리고는 그것에 새로운 의미를 부여하는 작업의 연속이었다.

희극을 지향하는 점에서 출발했음에도 「샘」에서는 등장인물들의 어두운 이야기가 극의 전반적인 내용들을 휘어잡고 있다. 신문기사를 통해 종종 작품의 영감을 받는다는 이 씨는 자신이 접한 충격적인 이야기들에서부터 이 어두운 이야기를 확장시켜 나가기 시작했다고 한다. “여고생이 아기를 낳아서 변기에 버렸다는 신문기사가 있었어요. 어린나이에 임신한 것이 들킬까 두려워 혼자 고시원에 살다가 그렇게 된 거였어요. 충격적이었죠. 세상이 앓고 있는 ‘정신분열’을 보여주는 사례였죠.”

놀라운 정신분열을 앓고 있는 세상의 치유를 위해 이 씨가 선택한 것은 ‘뮤지컬’이었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그 처참한 현실을 뒤집는 ‘유머’였어요. 1차대전이 한창이던 1917년, 변기를 들고 와서 이것이 예술이라고 얘기했던 뒤샹처럼요.” 뒤샹은 자신의 예술에 △사인이 있어야 함 △대좌에 올려야 함 △박물관의 출품해야 함이란 조건만 달았을 뿐이었다. 이 씨는 “현대사회의 소위 ‘이성’이란 것에 ‘똥침’을 놓았던 뒤샹의 발칙한 유머처럼, 이 작품도 그런 은유를 내포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마침 화장실의 공간은 이처럼 유머, 그리고 사회의 어두운 면모를 향한 유쾌한 지적이 공존할 수 있는 곳이었다. “겉으론 깨끗해 보이지만 사실은 상당히 냄새나는, 동시에 소통하지 못하는 의미심장한 공간이에요. 미스터리하죠. 캐릭터들 역시 비정상적이지 않나요.” 우선 두 명의 배변불량자들이 있다. 변비녀, 싫어도 싫은 티를 못 내다가 어느 날 갑자기 뒤에서 큰 사고를 일으키는 점잖고 세련된 현대인이다. 매끈해 보이는 일상이지만 사실 그 안에는 그녀가 부르짖는 귀곡성처럼 광기가 부글거리고 있다. 그리고 또 설사녀, 순진하게 세상을 바라보지만 마음대로 되는 것이 없다. 두 여자들의 가운데에 선 변기 도둑, 자신이 마치 구원자인 것처럼 이것저것 얘기를 해주지만 사실은 그도 화장실에서의 기억을 온전히 극복하진 못한 상태다. 이들이 모인 그 공간에 대해 이 씨는 다음과 같이 덧붙였다. “세상으로부터 똥처럼 버려진 것 같은 세 사람들의 처지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곳이에요.”

변기, 공중화장실, 그리고 배변 행위 자체란 소재를 중심으로 한 이 독특한 뮤지컬은 뮤지컬페스티벌의 심사위원들의 이목을 끌기에 충분했다. 그러나 수상에 있어서 논란도 있었다고 한다. “소위 ‘뮤지컬적이지 않은’ 부분들이 있었던 거죠.” ‘뮤지컬의 개념 자체에 도전하는 작품’, 그럼에도 이들이 상을 수상할 수 있었던 것은 이를 계기로 뮤지컬의 개념 자체와 시장이 더욱 풍성해지지 않겠냐는 생각들 덕분이었다고 한다.

그러나 한편으로 관객들은 이에 대해 혼란을 겪을 수도 있겠다 싶었다. ‘뮤지컬’이란 뭔가 거대할 것만 같은 장르에 대한 기대를 품고 오는 관객들이 있지 않겠냐는 질문에 이 씨는 호쾌하게 웃으며 대답했다. “정신공황 상태의 한국 사회를 구제해줄 수 있는 것은 유머와 공존의 힘이에요.” 뮤지컬 관련 전공자도 아니었던 그녀가 미국에서 공부를 할 때 배웠던 뮤지컬의 본질은 바로 ‘사람들을 위로할 수 있는 따뜻함과 긍정의 힘’이었다. “빠밤-하는 웅장한 뮤지컬을 기대하는 분들의 기대는 충족시켜드리지 못할지도 몰라요. 그렇지만 ‘고립된 개인이 타인들과 소통하는 방법에 대한 이채경 작가만의 테마가 어떤 식으로 전달될까’에 궁금증을 갖는 분들께는 이 뮤지컬이 해결의 힘을 전달해드릴 수 있을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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