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구공의 속도는 인고의 시간과 비례한다
배구공의 속도는 인고의 시간과 비례한다
  • 전영현 수습기자
  • 승인 2012.05.26
  • 호수 1368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한선수<체육학과 04> 동문의 배구 인생

주변엔 온통 논과 밭뿐이었다. 자동차조차 별로 다니지 않는 도로 때문에 한적함마저 느껴졌다. 진천 선수촌은 선수들이 연습하기에 최적의 조건을 갖추고 있었다.

선수촌의 입구를 지나 중앙 체육관에 들어섰다. 배구 연습이 한창인 선수들이 재빠른 공을 힘차게 주고받는 모습이 보였다. 적막했던 바깥 풍경과는 달리 선수들은 역동적이었다. 운동장에는 남은 올림픽 기간을 알려주는 전광판도 세워져 있었다. ‘D-80’이란 숫자가 올림픽 예선 경기가 얼마 남지 않았음을 말해주고 있었다.

한선수<체육학과 04> 동문 역시 오는 7월에 펼쳐지는 런던 올림픽 예선을 위해 이곳에서 훈련을 받고 있다. 발목 부상을 당한 그는 거동이 불편해 보였다. 그러나 그는 개의치 않았다. 동료들에게 자신의 상태를 이야기 하는 그에게서는 담담함이 묻어나왔다.

두 달여 앞으로 다가온 예선은 그가 올림픽에 첫발을 들여 놓을 절호의 기회다. 그만큼 지금 이 순간은 그에게 특별하다. 

▲ "배구는 협동해야 하는 운동이에요. 혼자서는 할 수 없죠. 그게 배구의 매력인 것 같아요."
때릴수록 단단해지는 쇳덩이처럼
“애초부터 배구선수가 되고 싶어서 배구를 시작했던 건 아니에요. 초등학교 4학년 때 친구들과 배구를 하다보니 재밌다는 생각이 들어서 하게 됐어요. 처음엔 그저 흥미로워서 하게 됐죠.”

배구를 처음 접했던 꼬마시절의 기억이 났는지 그의 입꼬리가 살짝 올라갔다. 그가 지금까지 배구를 손에서 놓지 못한 이유는 처음 배구공을 가지고 놀던 때의 느낌을 아직도 간직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때의 호기심과 짜릿함은 아직도 여전하다.  

“운동을 하면 힘든 시기가 오잖아요. 중학교 때였어요. ‘다른 걸 선택할 걸 왜 이 길을 선택했지’ 란 생각을 한 적도 있어요. 체력적인 것보다 정신적으로 더 힘들었죠. 어렸을 때부터 운동을 시작해서 다른 친구들은 할 수 있는 것들을 저는 운동 때문에 못하는 경우가 있었어요. 그런데 고등학교에 진학하면서부터 생각이 달라졌죠. 지금은 잘 선택했다고 생각해요.”

중학교 때 보낸 힘들었던 시간을 그는 대학에 와서도 겪어야 했다. 우리학교 재학 시절 인하대의 세터 유광우 선수에게 가려져 많은 주목을 받지 못했기 때문이다. 언론에서는 유광우 선수와 그를 라이벌로 인식하고 그를 유광우 선수의 그림자처럼 그려냈던 적이 한 두번이 아니다. 유광우 선수보다 실력이 못하다는 식의 기사가 보도될 때도 많았다. 하지만 그는 흔들림이 없었다.

”사실 저는 라이벌이란 소리를 크게 신경 쓰지 않았어요. 광우가 다른 팀에서 잘하든 제가 여기서 잘하든 저는 우리 팀에서 우승해보는 게 목표였거든요. 그래서 운동만 열심히 했어요. 라이벌이라는 생각은 안해봤어요.”

주변 사람들의 평가에서 완전하게 벗어날 수는 없었다. 하지만 이런 경험을 통해 생겨난 면역력은 그의 선수생활에 밑거름이 됐다.

감독과의 호흡이 잘 맞지 않아 고생했던 적도 있다. 대한항공에 처음 입단했을 때의 전준택 전 감독은 안정적인 볼 배급만을 원했다. 하지만 그는 상황에 따라 대범한 토스를 선보이는 순발력을 주로 보였다. 안정적인 볼배급과 상황에 따른 토스는 물과 불의 만남과도 같았다. 이는 그의 역량을 발휘하지 못하도록 만들었다.

하지만 대한항공에서 신영철 감독을 만나면서 그는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했다. 2007-2008 시즌을 시작으로 그만의 특색 있는 속공, 시간차를 제대로 발휘해 주전 세터로서 인정받았다. 이후 프로 배구 올스타 부문에서 4년 연속 1위를 기록했다.

▲ 한선수<체육학과 04> 동문이 자신의 배구 인생을 되돌아보며 인터뷰하고 있다.
실력은 필요조건, 마음가짐은 필수조건
“매 시합 때마다 공 하나에 집중하고 공 하나에 즐길 수 있는 자세가 필요해요. 그리고 제대로 즐기기 위해서는 몸이 힘들어도 웃을 수 있는 마음가짐이 중요해요.”

그가 실력만으로 여기까지 올 수 있었던 건 아니다. 꾸준함과 긍정성, 그는 이 두 가지를 배구를 할 수 있었던 원동력이라고 말한다. 운동선수라면 대부분 자기만의 신조를 갖고 있기 마련이다.

“지금은 안 되더라도 꾸준히 제가 하던 대로 하다 보면 자연스레 원래 상태로 다시 돌아가게 되는 것 같아요. 생각을 많이 해서도 안 되고 욕심을 부려서도 안 돼요.”

그가 프로에 입단 후 처음 치렀던 경기에 참가하지 못했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경기를 뛰지는 못했지만 그는 꾸준히 개인 운동을 했다. 그러던 찰나 포스트 시즌을 앞두고 대한항공 주전 세터였던 김영석 선수가 경기 도중 발목이 돌아가는 부상을 당하게 되면서 백업 세터였던 그가 투입됐다. 기회는 준비된 자들에게만 주어진다. 결국 스스로 묵묵히 연습을 하던 그가 주전으로 경기를 뛰게 됐다.

“혼자서 매일 연습만 했어요. ‘내가 들어가면 더 잘할 수 있는데’란 생각을 하면서 매일 공을 주고받는 연습만 했죠. 그러다 형들이 다치면서 어쩌다 기회를 얻었어요. 정말 노력을 하다 보면 기회는 오는 것 같아요. 귀찮아도 훗날을 생각하며 혼자 연습했기에 저에게도 기회가 왔던 거라고 생각해요.”

귀찮을 때도 있었지만 그에게 배구는 놀이였다. 그렇기에 즐거울 수 있었다.

“초등학교 때부터 20년간 해온 운동이라 실력이 쌓이는 건 있어요. 하지만 떨거나 긴장하면 시합 때 기량을 발휘할 수 없으니까 어느 경기나 다 똑같다고 생각해요. 물론 중요한 경기에는 더 집중하고 신경을 쓰죠. 하지만 긴장은 많이 안 해요. 최대한 즐겁게 해야 해요. 제가 그 시합에서 논다고 생각하고요.”

경기를 억지로 강박 관념에 시달리면서 하는 게 아니라 순전히 즐겁게 하는 것, 그리고 배구 코트 안에서 웃을 수 있도록 노력하는 것이 그만의 비결이 아닐까. 망설임 없는 단호한 목소리에서 진실성이 느껴졌다.

그는 협동심도 뛰어난 선수였다.

“야구는 혼자 배트를 치고 축구는 혼자 드리블 할 수 있잖아요. 근데 배구는 혼자 하면 반칙이에요. 무조건 3명이서 같이 움직여야 해요. 자기 혼자 할 수가 없어요. 같이 해서 팀원을 도와줘야 득점을 할 수 있죠. 그래서 배구는 협동하지 않으면 안 돼요.”
협동을 통해 얻은 승리는 함께 했다는 뿌듯함이 크다. 그가 힘을 주며 말했다. 그는 그것을 무엇보다도 중요하게 여기는 듯했다. 
 

시간이 흘러도 열정은 사그러들지 않는다
그간의 선수생활은 그에게 단단한 내공을 선물했다. 그의 긍정적인 성격과 꾸준함으로 키워진 실력 덕분에 올림픽 예선을 준비하는 현재까지 이르게 된 것이다.

“제가 앞으로 이뤄야 할 것이 두 개가 있어요. 첫 번째 목표는 올림픽에 나가보는 거에요. 배구 선수로서 태극 마크를 달고 올림픽에 나가보는 거죠. 그리고 두 번째 목표는 나이를 먹어도 최대한 할 수 있는 데까지 운동을 해보는 거예요. 한 40살 때까지 해 보는 게 지금 목표에요.”

앞으로의 꿈을 이야기하는 그는 야무지게 주먹을 꽉 쥐었다.

현재 프로 배구는 국민 스포츠로 자리 잡지 못한 상태다. 팀이 적고 운영도 어려운 상태이기에 발전이 부진한 것이 사실이다. 이런 문제점을 개선하기 위한 방안을 그에게 물었다.

“배구계가 더 발전하기 위해서는 우선 선수들을 배출할 수 있는 폭이 넓어져야 해요. 그러려면 프로팀 창단을 많이 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에게 혹시 마지막으로 더 하고 싶은 말이 있는지 물었다. “한양대 배구팀에게 한마디 하고 싶어요. 요즘 우리학교가 계속 예선 탈락을 한다는 얘기를 많이 들었어요. 이제는 예전 한양대처럼 우승을 더 많이 하길 바라요.”                                                   

사진 김유진기자 youuzin@hanyang.ac.kr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