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산당의 구속에 익숙해진 한 인민의 토로
공산당의 구속에 익숙해진 한 인민의 토로
  • 박정우 수습기자
  • 승인 2012.05.26
  • 호수 136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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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9년 6월 4일, 2차 천안문 사건 발생
▲ 중국의 대학생이 천안문 광장 시위에 참여해 민주화를 요구하고 있다.
오늘 천안문 광장에서 인민해방군이 시위를 하는 인민들을 향해 발포했다. 시위대는 지난 4월 후야오방이 사망한 뒤부터 민주화를 요구하는 시위를 꾸준히 해왔다. 공산당에서 군을 동원해 시위대를 무력으로 진압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덩샤오핑 어른이 후계자로 낙점했던 후야오방은 경제 개발만 추진할 것이지 왜 정치까지 손을 댔을까. 덩샤오핑 어른이 정치와 경제 개혁의 상호 의존성을 강조하긴 했지만 그것은 당을 개혁하고 능률을 올리기 위함이었지 민주화를 위한 것은 아니었다.

최근 들어 많은 대학생들과 도시 노동자들이 민주화를 요구하고 있다. 하지만 우리 중국 인민에게 자유나 민주주의는 독이다. 모두들 자신들의 욕심대로 행동할 것이다.

정치란 것은 복잡해서 덩샤오핑 어른과 같은 똑똑한 윗사람들이 다뤄야 하는 일이다. 우리 인민들은 알아서 지도해주는 바를 따르는 것이 편하다. 하루하루 살아가기 힘든데 정치까지 신경 쓸 여유가 어디있나.

당의 발표에 따르면 미국을 비롯한 자유주의 국가들은 더 이상 무력이 아닌 방법으로 우리 중국과 같은 사회주의 국가를 전복시키려고 한다고 한다. 이런 자유주의 국가의 평화적인 전략은 우리 중국과 공산당에도 영향을 미치게 됐다. 서양의 문물을 접하기 쉬운 대학생을 중심으로 민주화의 열망이 드러난 것은 자유주의 국가의 이 같은 전략이 영향을 미친 것이다.

중국과 공산당에 민주화 바람이 본격적으로 불기 시작한 것은 후야오방이 집권 하고 나서부터였다. 후야오방은 덩샤오핑 어른의 후계자라는 소문이 자자했으나 경제의 개혁·개방뿐만 아니라 기자들이 신문을 자유롭게 쓰고 인민들을 당의 감시가 아닌 법으로 다스리는 등 정치의 민주화까지 추진했다.

이것이 공산당 내 보수 인사들의 심기를 건드렸고 그는 불명예스럽게 정계에서 쫓겨나게 됐다. 그러나 당시 그가 추진했던 민주화 정책은 이미 많은 대학생들과 인민들을 홀렸다.

그러나 나는 덩샤오핑 어른이 추진한 경제의 개혁·개방 운동에 긍정적이다. 2년 전 덩샤오핑 어른이 공산당 전당대회에서 “사회 생산력 향상에 대한 노력이 중심 임무가 돼야 한다”고 말했던 것처럼 최근 중국의 생산력은 눈부시게 발전했다고 들었다. 욕심을 감추지 못하고 생산력만을 강조하는 자본주의 국가들과는 다르게 우리 중국은 부를 재분배하는 과정도 이뤄지고 있다고 한다. 나는 그 말을 무조건 믿는다.

그런데 아무것도 모르는 아들놈은 대학에서 자유니 민주화니 말도 안 되는 소리에 물들어 내 생각에 반대하고 나선다. 양상쿤과 리펑에 의한 무력 진압도 잘못됐다고 말한다. 학교에선 무엇을 가르치기에 중국의 미래인 학생들이 이런 위험한 생각을 한단 말인가.

아들은 물론이고 나아가 나라가 걱정이다. 앞으로도 후야오방과 같은 자가 정권을 잡는다면 아들과 같이 잘못된 생각을 지닌 대학생들에 의해 이 같은 시위가 또다시 발생할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니 잠을 이루지 못하겠다.

참고: 논문「‘6.4천안문사건’에 대한 ‘역사적 기억’과 중국의 외교정책」,
「덩샤오핑 개혁·개방정책의 이론적 체계」
사진 출처: 구글 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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