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것은 단순한 기적 이야기가 아니다
이것은 단순한 기적 이야기가 아니다
  • 이우연 기자
  • 승인 2012.05.19
  • 호수 135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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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를 친숙하고도 낯설게 만든 영화 「슬럼독 밀리어네어」

Q. 자말이 2천만 루피 상금까지 오른 비결은?
A. 부정행위를 했다 B. 운이 좋았다 C. 천재이다 D. 운명이다.
영화는 4 가지 선지의 질문을 던지며 시작한다. 답은 D였다. 미래와 사랑에 대한 희망을 품은 인도의 빈민가 소년이 억만장자가 되는 판타지를 다룬「슬럼독 밀리어네어」는 지난 2009년 아카데미상에서 작품상과 감독상을 비롯한 8개 부문에서 상을 거머쥐며 명실공히 당해 최고의 영화로
주목받았다.

영화는 뺨을 맞으며 취조를 당하는 주인공 자말의 모습으로 이어진다. 이유는 하나, 정규교육조차 제대로 받지 못한 뭄바이 빈민가 출신의 고아가 인기 퀴즈쇼「누가 백만장자가 되고 싶은가」의 문제를 모두 맞히고 우승으로 향하는 마지막 문제만을 남겨두고 있다는 것이다. 퀴즈쇼의 사회자와 경찰은 그가 속임수를 썼을 것이라 의심하고 있다. 사실을 토로하라며 강도 높은 고문을 행하는 경찰에게 자말은 침착하게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주기 시작한다.

영화는 경찰이 자말을 심문하기 위해 튼 녹화 테이프 속의 퀴즈쇼 모습과 경찰 취조실, 주인공 자말의 회상을 교차하며 이야기를 서술해 나간다. 어릴 적 어머니를 잃고 형과 겪은 온갖 어려움과 운명이라 믿었던 여자 라티카를 향한 사랑이 그의 인생 역정의 내용이다. 이를 통해 그의 인생이 절묘하게 퀴즈의 정답을 알아낼 수 있는 단서를 제공해왔음이 밝혀지고, 그가 퀴즈쇼에 출연한 진짜 목적이 사랑하는 라티카를 찾기 위함이었음도 서서 히 드러난다.

 

▲ <영화 「쉰들러 리스트」의 장면>
할리우드적이면서 할리우드적이지 않은
아카데미상을 받은 영화답게 원작 소설인「Q&A」를 기반으로 한 탄탄한 서술 구조와 「트레인스포팅」으로 인정받은 감독 대니 보일의 연출력이 영화 내내 돋보인다. 특히 이 영화는 서구 감독들에 의해 제작된 기존의 인도 관련 영화와는 다르게, 백인의 개입 없이 인도인들 스스로 인도 사회 내부의 문제를 해결해나가는 모습을 그림으로써 국제 영화계에서 환영을 받았다.

제작은 영국에서 했지만 내용은 인도를 배경으로 하는 다국적 합작의 영화로서 이 영화는 전 세계 관객들에게 친근하게 다가가고자 시도했다. 이형숙<이화여대 영어영문학과> 교수는  “관객들에게 익숙한 할리우드 영화의 기억을 불러일으키면서도 이를 전복시키는 영화의 내용은 낯선 인도 소재의 영화를 좀 더 친숙하고 즐겁게 느끼도록 하는 시도로 보인다”고 말했다.

▲ <영화 「슬럼독 밀리어네어」의 장면>
퀴즈쇼를 중심으로 이에 관련된 음모와 술수를 밝혀나가는 영화의 내용은 레드포드 감독의 「퀴즈쇼」와 겹쳐진다. 「퀴즈쇼」는 쇼의 출연자인 교수가 쇼의 재미와 시청률을 위해 방송국과 짜고 사기 행각을 벌이는 줄거리로 미국의 미디어와 지식인의 부패를 고발하고 있다. 하지만 「슬럼독 밀리어네어」에서 자말은 아무리 취조를 당해도 퀴즈쇼에서 부정을 저지르지 않았음이 밝혀진다. 뿐만 아니라 인도 사회에 대한 비판보다는 자말이 돈과 사랑을 모두 쟁취하는 판타지적 결말을 보여주며 제2의「퀴즈쇼」를 기대했던 관객들의 예상을 뒤엎는다.

어린 자말이 오물을 뒤엎는 장면에서는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의「쉰들러 리스트」가 연상된다. 나치 경찰을 피해 도망가던 아이가 재래식 화장실의 오물 속에 숨어 목숨을 보전하는「쉰들러 리스트」의 비극적인 장면은 「슬럼독 밀리어네어」에서 화장실에 갇힌 자말이 대스타의 사인을 받기 위해 오물 속을 헤집고 나오는 희극적 장면으로 치환된다.

 

극복하지 못한 ‘타국’의 시선

▲ 주인공 자말이 퀴즈쇼에 우승해 2천만 루피를 타게 되는 모습이다.
앞서 보인 노력에도 이 영화는 ‘영국인 감독’ 제작의 한계를 극복하지 못하고 있다. 이 교수는 “감독은 스스로 인도에 대해서는 아무 것도 모른다고 자인했다”며 “만만한 상대라고 여겨 다루기 쉬운 소재를 택한 것은 아닐까 싶을 정도로 영화가 인도를 바라보는 시선에 부족함이 많았다”고 말했다. 영화가 서구 관객에게 낙후된 인도의 이미지를 시각적으로 향유하도록 제공하는 점은 이전의 인도 관련 영화들과 다를 바가 없다.

영화 전반에 롱 쇼트로 펼쳐지는 뭄바이 빈민가의 전경과 애수에 젖은 음악은 세계의 관객들에게 극장 의자에 편하게 몸을 기대고 앉아 뭄바이 빈민가의 경치를 음미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고 있다. 이 교수는 “서정적인 음악은 가난과 인권 유린의 현장이 개혁해야할 숙제이기보다는 감상에 젖어 즐길 수 있는 먼 나라의 풍경인 것 같은 느낌을 준다”며 “이는 관객들과 인도 빈민가 현실 사이의 간극을 넓히고 있다”고 말했다.

영국인 감독의 한계가 드러나는 지점은 학교 수업 시간에 딴청을 피우는 여섯 살 꼬마 자말의 머리를 선생님이 책으로 내리치는 장면에서도 나타난다. 감독은 이 장면에서 서구 사회에서는 민감하지만 인도, 특히 빈민가의 교실에서는 빈번히 일어나는 아동 학대의 현장을 사실적으로 묘사하고자 했다. 하지만 어린 배우가 현장에서 학대됐다는 의심을 피하기 위해 특수 촬영 기법을 이용해 이 장면을 느린 화면으로 보여줌으로써 실제로 머리를 맞았는지 촬영술에 의한 눈속임인지 알 수 없게 해버린다. 이는 거꾸로 생각해보면 제작자 자신들이 연출된 상황에서조차 불편함을 느끼는 아동 폭행이 인도에서는 일상적으로 자행되고 있다는 것을 전 세계에 공표한 셈이다. 이 점에서 본의 아니게 인도의 ‘야만성’을 드러내 준 것이다.

참고: 논문「〈슬럼독 밀리어네어〉를 통해서 본 영화에서의 다국적 합작의 문제」
이미지 출처: 구글 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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