붕괴된 교권, 한양인 앞에 놓인 부끄러운 자화상
붕괴된 교권, 한양인 앞에 놓인 부끄러운 자화상
  • 김명지 기자
  • 승인 2012.05.19
  • 호수 136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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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은 개교기념의 달인가보다. 5월 15일이 개교일인 우리학교를 비롯한 서울 시내 여러 대학들이 5월에 개교일을 두고 있는 것을 보니 말이다.

굳이 그 이유에선지는 모르겠지만 유독 5월에 많은 대학들이 문을 연 이유에 ‘스승의 날’을 연결해 생각해봤다. 학점 관리에, 취업 준비에, 또는 놀기에 바쁜 대학생에게 스승의 날은 1년 중 거의 유일하게 ‘스승’의 참 의미를 되새겨보는 때라 해도 과언이 아닌 것 같다. 오늘날 우리는 얼마나 많은 스승을 가슴 속에 모시고 있는 지 문득 궁금해진다.

한 때 ‘학생의 인권 문제’가 여기저기서 터져 나오더니 이제는 ‘교권 침해’를 두고 아우성이다. 대다수 중·고등학교에서는 학생이 교사를 욕하는 것이 당연시되고 있는 분위기다. 심지어는 폭력 행위가 행해지기도 한다. 교사 또는 관련 직종에 일절 인연이 없는 나로서도 분통이 터질만한 이야기들이 많다. 사제관계를 떠나 인간 대 인간으로서 일어나선 안 될 일들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물론 이는 입장을 바꾼 경우에서도 마찬가지다. 결국 어느 한 편에만 서서 이렇다 저렇다 함부로 생각하고 얘기하는 것은 경계해야 할 일이다. 그러나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분명히 짚고 넘어가야 할 것들이 있다.

문제가 되고 있는 것은 ‘교권’이다. 교권의 사전적 정의는 ‘교직에 종사하는 교원의 권리 또는 권위’인데 넓은 의미에서는 ‘교육을 받을 권리와 교육을 할 권리’를 포괄한다고 한다. 그렇다면 분명 교권은 교사와 학생이 상호작용하는 가운데 성립될 수 있는 개념이다. 어느 한 쪽의 권리가 일방적으로 무너지면 온전해질 수 없는 힘이다.

앞선 사례에서와 같은 일선 중·고등학교에서의 이야기는 단편적인 사례에 불과하다. 핵심은 “학생의 인권과 교사의 인권은 공존할 수 없느냐”의 문제가 아니라 어느 한 쪽의 권리가 존중되지 못했기 때문에 교권 자체가 붕괴되는 것이다. 교권은 관련 당사자들 모두의 노력이 필요한 바다.

그렇다면 우리는, 우리학교의 모습은 어떤가. 한양대는 교수와 학생 모두를 포괄하는 넓은 의미에서의 교권이 완전히 존중되는 사회인가. 안타깝게도 그렇지만은 않은 것 같다. 필자는 학생의 입장에서 되돌아본다. “어떻게 이 시간을 모면할 수 있을까”하는 얄팍한 생각으로 임하는 수업, 누군가의 것을 베껴 제출한 과제, 이 모든 것들이 지금 우리의 모습에 반영된 교권 붕괴의 모습이다.

또 넓은 의미의 교권 개념에서 살펴보면 ‘시험 족보’만큼 적나라한 소재가 없을 것이다. 족보는 교수와 학생 쌍방의 과오로 서로의 권리를 무너뜨리고 혹은 스스로의 권리를 무너뜨리는 모습의 단면이다. 교수는 나태함으로, 학생은 비겁함으로 ‘시험’이란 소중한 기회를 낭비한다. 이는 결국 교권의 총체적 부실을 상징하는 것이 아닌가.

교권에 대한 상호 책임의 의미를 다시 한 번 강조해본다. 더 발전하는 대학 교육이 되기 위해 우리학교는 교원 확충과 ‘학문다운’ 커리큘럼이 필요하다. 당연한 전제다.

그러나 결코 이것을 요구하는 데 그쳐서만은 안 된다. 부끄러운 자화상을 돌아보며 교권이 한편으로는 본인과 관련된 것임을 알고 책임 의식을 갖는 교수와 학생, 한양인 모두의 각성이 절실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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