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이날을 향한 두 시선
어린이날을 향한 두 시선
  • 전영현 수습기자, 노영욱 수습기자
  • 승인 2012.05.05
  • 호수 136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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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5년 5월 1일 제3회 어린이날 행사가 열리다
<윤극영 입장>
나는 지금 제3회 어린이날 행사에 ‘색동회’ 구성원 자격으로 참석해 있다. 색동회인들 끼리 모여 어린이와 관련된 이야기를 나누다가 재작년 5월 경에 조직된 천도교 소년회를 시초로 소년운동에 박차를 가했던 것이 여기까지 온 것이다.

행사장은 시끌벅적하다. 행사 전에 선전지를 배포했던 게 효과가 있었는지 10만 명 이상의 사람들이 행사장을 찾아왔다. 이번 행사는 어린이들이 받는 탄압을 줄이고 이들의 인권을 재고하기 위함이다. 우리 색동회가 다른 소년운동단체와 마찬가지로 어린이 문제에 관심을 기울인 이유도 여기에 있다. 특히 여아들이 더욱 홀대를 받아 안타까웠다. 어린이들은 부모의 소유물로 취급받아서는 안 될 존재가 아닌가. 따라서 우리는 어린이들이 이 점을 잊지 않게 하기 위해 동요를 비롯한 각종 문화 활동으로 친근하게 다가가는 중이다. 오늘은 어린이날 노래를 부르며 행진을 하고 글피에는 동화회, 음악회 등을 열어 어린이들을 위한 날을 만들어갈 예정이다.

▲ 어린이날 행사를 주관한 '색동회'의 윤극영 외 7인
처음엔 조촐한 행사였지만 지금은 대규모의 행사로 자리 잡았기에 일본인 경찰들이 잠복해 우리를 체포하려는 계획을 갖고 있다는 소문이 들리기도 한다. 걱정이 되긴 하지만 ‘어린이날’에 대한 관심이 많아졌다는 사실은 기분이 좋다.

앞으로 일제의 탄압이 심해지고 많은 난관이 닥쳐온다 해도 나는 이 길을 포기하진 않을 것이다. 오늘처럼 의미 있는 날을 만듦으로써 어린이의 인권을 고취하고 민족의 독립의지를 높이는 게 얼마나 보람찬 일인지를 지금 다시 또 한 번 깨닫게 되었기에.

참고: 논문 「방정환의 소년인권운동 재고」,「윤극영의 동요세계」

<일본경찰 입장>
나는 지금 일본 경찰관으로서 어린이날 행사를 중지하기 위해 가는 중이다. 원래 강화소년개벽 강화지사에서 어린이날을 기념해 낮에는 시위행렬이, 밤에는 기념식이 있을 예정이었다. 그런데 오늘이 노동기념일이라 오해를 줄 수 있다는 핑계로 모든 행사를 막으라는 것이다.

어제만 해도 색동회를 발족시킨 방정환 씨는 노동기념일과 어린이날의 성격을 구분하며 행사가 중지될 것이라는 소문을 일축했다. 그리고 우리 일본경찰 측으로부터 승낙을 얻었기 때문에 일본경찰의 간섭은 없을 것이라 확신하는 눈치였다.

솔직히 여태까지 그들이 행해왔던 활동 내역을 살펴보면 우리의 비위를 건드리기에 충분했다. 어린이 인권의식을 고취시킨다는 명목 하에 민족의식을 널리 퍼뜨려 독립운동을 진행하려했기 때문이다. 그들이 발행하는 잡지 「어린이」만 봐도 조선의 문화, 역사, 지리는 물론 동요가 있어 어린이들이 민족의식을 체득하는 지름길이 되고 있었다. 또 작년 어린이날 행사가 성황리에 치러졌기에 그들의 입지가 확장되는 것을 막기 위해서라도 이번 행사는 꼭 중단시켜야 한다.

강화소년개벽 강화지사에 도착했다. 경찰들이 들이닥치자 조선소년운동협회와 색동회 인사들은 당황하는 모습이다. 또 행사를 중단해야한다는 소식을 전해 듣고 실망하는 표정을 감추지 못한다.

소년운동의 본질이 민족운동에 있다는 것을 우리 일본경찰이 알아차린 이상, 이를 방치할 순 없다. 그리고 이들에 대한 탄압은 더욱 노골적으로 변할 것이다. 우리 대일본제국이 조선 식민지를 안정적으로 유지하고 세계를 제패하기 위해선 반드시 선행돼야할 일이다.

참고: 논문 「방정환의 소년인권운동 재고」,「윤극영의 동요세계」
도움: 김정의<한양여대 여성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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