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출발은 구악의 청산을 전제로 한다
새 출발은 구악의 청산을 전제로 한다
  • 한대신문
  • 승인 2006.03.12
  • 호수 121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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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설위원│이 도 흠 <인문대·국문> 교수
어느덧 봄이다. 아직 꽃샘추위가 앙탈을 부리고 있지만 세월의 힘은 어이할 수 없으리라. 쌀쌀함 속에서도 봄기운이 완연하다. 얼어있던 나무들은 한껏 물이 올라 곧 싹과 꽃을 틔울 기세고, 창을 통과한 햇볕은 연구실을 온화하게 유지할 만큼 따스하다. 겨우내 비어있던 강의실은 제 주인을 찾아 들썩인다. 교정은 새내기들의 재잘거림으로 한창 흥이 돋아있다. 새 학년, 새 학기다. 

오랜, 그리고 고통스런 대학 입시의 수행 끝에 새내기들이 들어왔다. 말 그대로 입학식 장에서 청운의 꿈을 꾸지 않은 이들이 어찌 있겠는가. 위대한 과학자에서 올곧은 판, 검사, 세계적인 인문학자, 연봉이 수 십 억 원에 이르는 CEO에 이르기까지 다들 야무진 꿈을 꾸었을 것이다. 그들은 이제 그 꿈을 이루기 위하여 다양한 실천들을 행할 것이다. 헌내기, 2, 3, 4학년이라고 예외는 아니다. 꿈에 다소 수정은 있을지라도 작년을 반성하며 올해는 꿈을 향해 매진하자고 각오를 새로이 했으리라.

문제는 초발심의 유지다. 처음처럼 사랑한다면 헤어질 연인이 어디 있고, 처음처럼 의지를 강하게 유지한다면 금연을 못할 사람이 누가 있겠는가. 입학한 날의 꿈과 의지를 졸업하는 순간까지 흐트러트리지 않는다면 꿈을 이루지 못한 학생이 누가 있겠는가. 사람들은 며칠, 몇 달, 몇 년을 지키지 못한 채 초발심을 잃는다. 

모든 것이 개인의 의지에 달려있지만, 그리 간단하게 의지의 박약만을 탓할 일이 아니다. 새 출발은 구악의 청산을 전제한다. 비유하여, 범죄를 상습적으로 저지른 자가 그 범죄에 대하여 반성하지도 않은 채 새 출발을 하겠다면 누가 그 말을 믿겠는가.

양극화를 심화하는 신자유주의식 정책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으면서, 게다가 그를 획기적으로 강화하는 한미 자유무역협상을 강행하고 있으면서 이제 양극화를 해소하겠다고 공언하는 노무현 대통령의 말은 진실성도, 실현성도 없다. 학생들도 마찬가지다. 게으름, 미루는 습관, 새로운 학문과 지식에 폐쇄적인 자세, 놀기 좋아하는 습성, 잡기나 향락에 대한 기웃거림 - 이런 것들을 고치지 않은 채 아무리 좋은 꿈을 꾸어봤자 그것은 허황한 꿈일 따름이다. 새로운 꿈을 꾸겠다면 자신부터 새로워져야 한다. 아무리 훌륭하고 강한 의지에 의해 뒷받침되는 초발심도 낡은 시스템과 충돌하면 곧 힘을 잃는다.

다음은 상황에 대한 유연성과 일관성이다. 법고창신(法故創新). 초발심을 세운 본뜻에 대해선 조금도 흔들리지 말아야 하겠지만 변화하는 새로운 상황에 대하여 유연성을 발휘해야 하리라. 세상은 그리 만만하지도 않고 또 복잡하여서, 금연을 결심한 자에게 실연의 고통이 닥치고 금주를 결심한 사람에게 입시나 취업의 낙방과 같은 일이 일어난다. 처음 출발 때와 다른 상황이 벌어지는 것이다. 이때 고지식하게 대처하면 자신이 먼저 지쳐 합리화를 하게 되고, 그 결과는 의지의 상실이다. 너무 유연하게 대처하다 보면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상황논리에 빠지게 되고, 그 결과는 초발심의 상실이다.

우리가 늘 처음처럼 사랑한다면 사람 사이에 무슨 갈등이 있겠는가. 올해는 우리 한양인 모두가 자신을 과거에 얽매이게 하는 시스템을 혁신하고 새로 초발심을 세우고 이를 끝까지 밀고 나가 모두들 꿈을 이루기를 고대한다. 딴 생각을 하기에는 너무도 아름다운 봄날이지 않은가. 너무도 빨리 달려가는 세상이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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