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범죄가 발생한 이유를 알아야 한다"
“범죄가 발생한 이유를 알아야 한다"
  • 김유진 기자
  • 승인 2012.04.08
  • 호수 136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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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년 퇴임한 국내 1호 범죄심리학자 강덕지

범죄심리학자 강덕지
현장뛰며 1천여 명 범죄자 만나와
“범죄자는 환경의 영향을 받는다”
퇴임 후 교육문제에 관심가져

유영철, 정남규, 강호순을 기억하는가. 한때 우리사회는 이들이 저지른 연쇄 살인으로 떠들썩했다. 매스컴에선 연신 이들의 이야기가 쏟아져 나왔고 시민들은 이들의 만행에 분개했다. 그리고 그 곁에는 범죄심리학자 강덕지가 있었다. 그는 작년 12월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이하 국과수)을 은퇴하기 전까지 이들을 포함한 1천여 명의 범죄자들을 직접 만나 왔다. 그는 “흔히 연쇄살인범들을 사이코패스로 알고 있지만 이는 잘못된 고정관념”이라며 “사이코패스는 인격 장애의 한 종류일 뿐 범죄와 연결해선 안 된다”고 말한다.

범죄자를 만드는 환경


그의 태도에는 다양한 부류의 범죄자들을 만나며 인생을 살아온 사람의 내공이 보였다. 하지만 이와 관련된 이야기를 할 때는 무척이나 조심스러웠다.

“남한테 자랑스럽게 얘기할 만한 내용이 아니야. 피해자는 피해를 봐서, 피의자는 남에게 상처를 줘서 나름의 아픔이 있어. 근데 내가 그걸 안다고 해서 마음대로 떠들면 되겠어?”

그는 31년간의 현장 경험을 통해 ‘범죄’를 알아갔다. 범죄자들은 그에게 자신의 이야기를 가감 없이 털어놨다.

“내가 하는 말이 ‘이건 너도 처벌해야 하지만 너희 부모도 같이 처벌해야 한다’야. 범죄자들의 어렸을 적 가정환경을 묻잖아? 그럼 십중팔구 부모한테 문제가 있어. 맨날 아버지가 술 마시고 와서 어머니 패고, 난동 부리고. 그런 부모 밑에서 계속 살아왔는데 그 애가 보고 배운 게 뭐겠어. 자기도 모르게 난폭하게 변하는 거지.”

그는 범죄자 형성에 다양한 것이 영향을 미치지만 환경이 가장 큰 영향을 준다고 강조했다. 그의 목소리가 격앙되기 시작했다.

“주로 환경의 영향을 많이 받아. 범죄자들이 평범하고 원만한 가정에서 성장했다면 그렇게 되지 않았겠지. 예를 들어 유영철 옆에 훌륭한 멘토가 있었다면 그렇게까지 되진 않았을 거야. 그림 실력이 보통이 아니거든. 감성도 풍부하고 영리한 사람이야. 환경이 얼마나 중요한지 알 수 있는 사례지.”

저지른 범죄만 보고 범죄자를 판단하는 것은 섣부르다는 말이었다. 행여나 피해자 가족들이 들으면 화가 나진 않을까 걱정이 됐다.

“그래서 내가 이런 말을 함부로 할 수가 없는 거야. 옛날에 이걸 한 시간짜리 프로그램으로 만든 적이 있는데 피해자 부모가 알게 된 거야. 우린 단순한 강도 살인이 아니라 이러이러한 요인 때문에 일어났다고 했는데 소송을 걸었어. 우리로 인해 한 사람이 상처를 입었으니까 사과를 했지.”

범죄심리학의 개척자
대학에서 심리학을 전공한 그가 첫 직장으로 국과수에 들어간 건 1981년이었다. 그가 심리학을 선택한 것은 ‘우연’을 가장한 ‘운명’이었다.

“상업고등학교 취업반을 졸업하고 취직을 했는데 대학에 들어간 진학반 친구들이 와서 막 대학 얘기를 하더라고. 나도 한 번 경험해보고 싶단 생각이 들었어. 전혀 다른 세계잖아. 그래서 2년 동안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고 고등학교를 졸업한 지 3년 만에 다시 공부를 시작했지.”

처음 하는 입시 공부는 너무 어려웠다. 그는 의미도 모른 채 무작정 외우기 시작했다. 코피가 쏟아지기도 했다. 우직하게 한 공부는 빛을 발했다. 예비고사와 본고사가 있던 시절, 그는 그 어렵다던 시험을 혼자 공부해서 통과했다.

“당시 심리학과는 3개 대학에 밖에 없었거든. ‘이건 사람들도 잘 모르는 학과니까 여기 시험 치면 되지 않겠나’하고 생각했지. 그래서 심리학을 선택했어.”

인생이란 참 신기하다. 그렇게 선택한 길을 그는 평생을 걸었다. 국과수는 대학을 졸업할 때 교수님이 추천서를 써줘 특채로 들어갈 수 있었다. 입사 후 범죄심리과에 배정됐지만 그야말로 황무지였다. 국과수가 처음 문을 연 1959년에 생긴 과였지만 전공자가 없었다.

“하다못해 책 하나 제대로 없는 거야. 범죄심리학이란 용어 자체도 생소하던 때였거든. 그럴 듯하게 작명만 해논 거지. 처음부터 시작해야 했어.”

그는 현장에 나가 범죄자들을 직접 만나면서 이론을 정립해갔다. 미국심리학회 회장 앞으로 무작정 편지를 보내기도 했다.

“그땐 아무것도 모르고 ‘프레지던트 귀하’라고 적어서 보냈어. 일하는 데 필요한 자료와 사람을 좀 소개해달라고 했지. 이 양반이 답장을 보내왔는데 사람들을 몇 명 알려주면서 그들이 쓴 논문 제목도 세세히 적었더라고. 그 교수들한테 일일이 전화를 걸어 한국에서 ‘강덕지’라는 사람의 편지가 오면 이러저러한 논문을 찾아주라는 얘기까지 해놨다는 거야.”

외국 유수의 범죄심리학자들과 교류하며 입수한 엄청난 양의 논문과 자료는 그의 재산이자 국가의 재산이 됐다. ‘맨땅에 헤딩’하는 식으로 모은 자료를 분석해 보고서를 만들고 논문을 발표했다.
1999년에는 국내에 처음 최면수사를 도입하기도 했다. 낚시를 하다 불편한 점이 생기는 낚시꾼은 직접 무언가를 만들기 마련이다.

“교통사고는 뺑소니가 많아. 증거가 있으면 좋을 텐데 증거는 없고. 목격자는 그냥 대수롭지 않게 봐버리고. 그럴 때 다른 방법이 없어. 강력 사건도 마찬가지야. 당시의 정서적 충격으로 기억을 잃은 피해자들의 기억을 되살릴 방법은 최면밖에 없어. 이걸로 범인들 많이 잡았지.”


범죄자와 교육의 상관관계
그는 범죄가 일어났을 때 행위 자체뿐만 아니라 범죄가 발생한 이유를 면밀히 봐야 한다고 말한다. 범죄를 올바르게 보는 방법이다.

“사람들은 매스컴에 나온 내용만 가지고 범죄자들한테 흉악하다고 해. 그 사람의 행동 자체는 흉악하지. 그건 논쟁의 여지 자체가 없지만 그 사람도 똑같은 인간이야. 자꾸 죄를 지은 행위만 가지고 우리가 그 사람을 보면 절대로 이해가 안 돼. 범죄의 근본적인 문제를 해결할 수가 없어.”

그는 그 이면에 올바르지 못한 인성교육이 있다고 말한다. 그래서 가정에서든, 학교에서든 제대로된 교육을 시켜야 한다는 것이 그의 생각이다.

“요즘 아이들은 학교 끝나면 학원가기에 바빠서 제대로된 인성교육도 못 받고 있어. 내가 볼 때 그건 아이들을 정신적 불구자로 만들고 있는 거야. 이 사회가 점점 마비되고 있는 거지.”

그는 교육의 중요성에 대해 역설했다. 그가 말하는 교육이란 올바른 인격을 함양시키는 것이다.

“직접 해보고 싶은 생각은 많지. 내가 마지막으로 할 수 있는 건 내 경험을 사회에 알리는 거야. 우선 지금은 개인적인 시간을 보내고 싶어. 다음 학기부터 강의를 해볼까 생각 중이야.”

그는 퇴임한 후 매일 새벽에 공부를 하고 있다. 몇 번이나 읽고 또 읽었던 「중용」이다. 하고 싶은 공부를 하니 마음이 즐겁다.

“죽을 때까지 내 관심사는 인간을 올바르게 이해하는 거거든. 인간에 대한 총체적인 이해 없이 감히 범죄에 손을 대면 안 돼.”

사진 김유진 기자
일러스트 출처: 아이클릭아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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