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대혁명 속에서 표출된 옥시덴탈리즘
문화대혁명 속에서 표출된 옥시덴탈리즘
  • 김지연 기자
  • 승인 2012.03.17
  • 호수 136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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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대파를 잠재우고자 했던 마오쩌둥의 정치적 수단
20세기 중국 근대 지식인들과 중화인민공화국 당 지도층은 각기 다른 정치적 목적이 있었다. 중국 근대 지식인들은 기존의 지배 이데올로기에 맞서 진보적이고 민주적인 서양의 가치관을 따를 것을 주장했다. 그러나 중화인민공화국의 지도자였던 마오쩌둥은 옥시덴탈리즘적 정책으로 중국의 정치권력을 잡게 된다.

마오쩌둥은 중국 공산주의 혁명가다. 마오쩌둥의 공산당은 4년여의 전투 끝에 국민당을 몰아내며 마침내 1949년 베이징에서 중화인민공화국 수립을 선포했다. 그러나 1950년대에 농업 중심의 사회주의 정책을 폈던 중국은 경제적인 어려움을 맞는다. 이에 일부 근대 지식인들이 마오쩌둥의 정책을 비난했고 마오쩌둥은 이런 반대 세력을 제거하기 위한 권력투쟁인 ‘문화대혁명’을 일으켰다.

송도영<국문대 문화인류학과> 교수는 “문화대혁명은 옥시덴탈리즘이 잘 표출된 사례”라고 말했다. 당시 마오쩌둥을 비롯한 지배계급은 국내 사회주의 체제를 가동시키기 위한 기술과 생산력을 향상시키고자 초강대국(미국과 옛 소련)으로부터 지원을 받았다. 이 과정에서 마오쩌둥은 이들이 제3세계(아시아 및 라틴아메리카) 나라들을 착취하고 억압한다고 주장했다. 이후 서양을 동양의 적으로 규정하기에 이른다. 마오쩌둥에게 있어 초강대국은  단순히 ‘서양’전체를 대표했으며 중국은 ‘동양’을 대표하는 곳이었다.

“북미와 서유럽이 ‘세계의 도시’로 불릴 수 있다면, 아시아 및 라틴아메리카는 ‘세계의 시골’을 구성한다.” 1965년 ‘인민일보’에 발표된 린뱌오의 ‘인민 전쟁 승리 만세’라는 글의 일부이다. 린뱌오의 담론은 반서양, 반부르주아 이데올로기를 표현하고 있다. 이 글에서 린뱌오는 도시와 시골을 이분화하면서 마오쩌둥의 주장을 세계 혁명이라는 더 넓은 맥락 속으로 확장시켰다. 이때 제3세계의 ‘시골’은 서양의 ‘도시’에 맞서 승리하는 것으로 해석된다. 이는 중국의 도시가 농촌을 착취하는 것을 강대국이 제3세계 나라를 착취하는 것으로 비유했고 이런 기존 사회 구조를 역전시킬 것을 주장했던 마오쩌둥의 사상이 드러나는 대목이다.

샤오메이 천<오하이오대 중국문학ㆍ비교문학과> 교수는 저서 「옥시덴탈리즘」에서 “사실 중국의 옥시덴탈리즘은 오리엔탈리즘과는 다른 이데올로기적 기능을 수행해왔다”고 말한다. 에드워드 사이드가 정의한 오리엔탈리즘이 서양의 세계 지배를 위한 전략이라면, 중국의 옥시덴탈리즘은 주로 중국 국내 정치에서 여러 가지 다양한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중국 사회 내의 경쟁적인 집단들에 의해 환기된 담론이라는 설명이다.

궁극적으로 중국의 옥시덴탈리즘은 세계 지배의 목적이 아닌 중국 내의 정치적 반대파를 억압하는 데 있었다. 마오쩌둥은 서양을 동양의 적으로 규정하면서 중국 내에서도 존재하던 다양한 이견, 즉 반대세력들을 잠재우고자 한 것이다.

송 교수는 “중국의 옥시덴탈리즘은 문화대혁명을 통해 초래된 것이 아니라 문화대혁명을 통해 표출된 것”이라며 “마오쩌둥은 옥시덴탈리즘을 정치적으로 이용했다”고 전했다. 

참고: 도서 「옥시덴탈리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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