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객도, 저도 재밌는 영화를 하고 싶어요"
"관객도, 저도 재밌는 영화를 하고 싶어요"
  • 김유진 기자
  • 승인 2012.03.03
  • 호수 136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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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mm 필름에 그의 색깔을 기록하다, 영화감독 박홍민

서울 중구에 위치한 영화감독 박홍민의 작업실 겸 숙소. 4평 남짓한 공간에 그와 기자 두 명이 들어서니 방이 꽉 찬다. “많이 좁죠? 차 한 잔 마시고 인터뷰해요.” 차분한 그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종이컵에 보리차가 채워지고 접의식 의자를 탁자 삼아 차를 홀짝인다. 소박한 티타임과 함께 인터뷰는 시작됐다.

그의 잠자리를 해결해 주고 있다는 소파에 앉으니 안 그래도 비좁은 책상을 가득 채우고 있는 컴퓨터 4대가 보인다. 일반용 컴퓨터와 3D 작업용 컴퓨터들이다. 그는 이 컴퓨터들로 영화 「물고기」를 탄생시켰다. 「물고기」는 진도 씻김굿을 소재로, 집을 나간 아내를 찾아 나선 교수와 그의 아내가 무당이 됐음을 전하는 흥신소 직원을 중심으로 펼쳐지는 미스터리극이다. 그는 통상 10억 원 이상이 드는 3D 영화를 7천만 원으로 완성시켜 작년 부산국제영화제에서 시민 평론가상을, 올해는 로테르담영화제에 초청됐다. 단편영화 7개를 거쳐 만든 첫 장편영화가 처음으로 국내 영화제에서 상을 받은 순간이었다.

물고기, 강을 헤엄쳐 바다로 나아가다 

▲ 박 감독 뒤로 영화 「물고기」의 포스터와 영화의 한 장면을 띄워놓은 모니터가 보인다.

Q.
 영화 「가위 바위 보」와 「88, 세대들」이 해외 영화제 경쟁부문에 출품된 적은 있었으나, 국내 영화제에서 상을 받은 것은 「물고기」가 처음입니다.
「물고기」 전에 제작했던 영화들을 국내 영화제에 출품했었어요. 그때 이상한 고집이 있었던 게 이름 있는 영화제에만 올렸어요. 근데 다 떨어졌죠. 지금 그 영화들을 보면 ‘아, 그땐 생각이 얕았구나’ 싶어요. 굉장히 날것이었어요. 그 당시에는 화면 초점이 안 맞아도 ‘나쁘지 않은데?’ 하면서 출품했죠. 자아도취였죠. 하지만 그것도 성숙하는 과정이에요. 그러다가 영화를 하나 등록해놓으면 전 세계 단편 영화제에서 메일이 오는 사이트를 알게 됐어요. 거기에 영화를 올려놨는데 뭔휀국제영화제 학생경쟁부문과 러시아부끼그영화제에 초대를 받았어요.

Q. 그럼 부산국제영화제에서 상을 받기 전까지 본인의 영화랑 국내 영화제랑 맞지 않다고 생각할 수 있었겠어요.
그렇다고 원망하지 않았어요. 이럴수도 있고 저럴수도 있다고 생각해요. 얼마 전에 「무산일기」를 만든 정범이 형(영화감독 박정범)이 이걸 멋있게 정리해주셨어요. 이창동 감독님한테 들은 얘기를 저한테 또 해주신 거에요. 영화감독은 농부다. 이번에 풍년이 났든 흉년이 났든 간에 내년에 또 씨를 뿌리고 다시 추수를 해야 한다고. 뭐 어차피 창작적인 욕망이 있으면 계속 찍는 거지. 물론 영화제에 초청 받거나 상을 받으면 창작 욕구가 조금 더 고무될 수 있을진 몰라도 못 받는다고 안 할 건 아니지 않냐고.

농부가 씨를 뿌리고 추수를 하듯이 그는 우직하게 영화를 만들었다. 2006년 「연애하기 좋은 날」부터「물고기」까지 그는 6년 동안 손에 쥔 메가폰을 놓지 않았다.

Q. 지금까지 모든 영화의 시나리오를 직접 집필하신 걸로 알고 있습니다. 시나리오에 감독님의 경험이 반영되기도 하나요.
 그렇죠. 저는 모든 매체에 자신의 내면이 어떤식으로든 변화돼 반영된다고 봐요. 다큐멘터리라도 그것이 편집을 거치면서 연출자의 의중이 들어가고 다양해지기 마련이에요.

Q.「물고기」는 어떻게 쓰게 됐나요.
동아방송예술대(이하 동아예대)에 다닐 때 교수님께서 씻김굿에 대해 아냐고 물어보시더라고요. 그날로 집에 와서 인터넷으로 진도 씻김굿에 대한 책을 주문했어요. 책에 실린 사진을 봤는데 전 그 이미지가 너무 좋더라고요. 사람들은 보통 굿이라고 하면 알록달록하고 굉장히 강한 이미지를 떠올리는데 씻김굿은 그렇지 않아요. 무당들이 하얀색 옷을 입고 소박하게 해요. 그 모습이 한국적으로 보여서 그때부터 진도를 자주 갔어요. 그런 모습들이 정말 좋아서 씻김굿을 자주 보다 보니 느낀 게 많았죠. 그래서 이걸 엮어서 영화를 해야겠다고 생각했어요.

Q. 그럼 영화에서 씻김굿이 많은 비중을 차지하나요.
씻김굿이 중심인 영화에요. 그렇지만 씻김굿이 전부는 아니에요. 한 남자가 자신이 납득할 수 없는 상황을 계속 맞닥뜨리죠. 영화는 이 남자의 시점으로 진행돼요. 이 남자가 얻고 있는 정보를 관객들도 그대로 얻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남자가 헷갈리는 것을 관객들도 같이 헷갈리게 받아들이게끔.

Q. 부산국제영화제에서 「물고기」는 제한된 자원을 더할나위 없이 영리하게 사용한 영화라는 평가를 들었습니다. 처음부터 3D로 제작하려고 생각했나요.
아니요. 2008년 12월에 시나리오 초안이 나왔지만 그 다음해에 3D로 만들어도 좋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물고기」의 촬영과 조명을 맡아주셨던 최성원 감독님이 그 때 3D 컨퍼런스에 같이 가자고 해서 갔거든요. 그때 전 3D가 과장되고 왜곡된 매체라고 생각했어요. 어떻게 보면 폭력적이기도 하고. 영화가 어느 순간부터 현실에서 판타지로 넘어가요. 그런 공간들과 기호들에 관한 것들을 활용해서 영화를 만들면 재밌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영화판에 뛰어들다

Q. 영화제작은 본격적으로 언제부터 시작 했나요.
고등학교 때부터 영화를 하고 싶었는데 성적이 그리 좋지 않았어요. ‘방송이나 영화나 비슷하겠지’란 생각에 한림대에서 방송통신을 전공했죠. 하지만 똑같은 일이라도 언론적으로 접근하는 것과 영화적으로 접근하는 것은 전혀 다르더라고요. 그래도 영화는 동아리를 하면서 계속 접하고 있었어요. 그러다 군대에 갔고 제대 후 본격적으로 영화를 찍기 시작했죠.

Q. 첫 영화 제작이 순탄하지만은 않았을텐데요. 배우나 스텝을 구하는 것부터 어려움이 많았을 것 같습니다.
항상 시나리오랑 기획서, 콘티를 작성한 서류를 들고 다녔어요. 학교 다니다가 괜찮은 애가 있으면 그걸 보여주면서 출연을 부탁했죠. 처음에는 이상하게 보는데 밥 사주면서 도와달라고 계속 부탁했어요. 그렇게 학교에서 한 세 작품을 찍었죠.

Q. 적극적인 성격인가 봅니다. 모르는 학생에게 영화 출연을 부탁하는 게 쉬운 일은 아닌데요.
아니에요. 부끄러움이 되게 많아요. 아마 개인적으로 만났으면 그러지 못했을 거에요. 그때는 영화를 정말 만들고 싶었으니까 그렇게 되더라고요. 잠깐 부끄러운건 상관 없었어요. 한 번 성공하니까 그다음부터는 뻔뻔해졌어요.

Q. 한림대를 졸업하고 동아예대와 동국대 대학원에서 영화를 배웠습니다. 한림대 시절 이미 몇 편의 영화를 제작했는데 큰 도움이 됐나요.
한림대를 졸업하고 잠깐 회사에 다닌 적이 있어요. 어느 날은 집에 돌아가는데 버스 손잡이가 안 잡히더라고요. 계속 눈물이 났어요. 왜 눈물이 났는지 모르겠는데 ‘계속 이렇게 일해야 하나, 이러다가 내가 하고 싶은 일을 못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그래서 관두고 동아예대에 들어갔어요. 그때 제가 과대표였어요. 그래서 편집실 열쇠를 제가 관리했죠. 처음 만들어진 편집실이었는데 장비가 너무 좋아서 하루종일 거기서 살았어요. 시기를 잘 맞춰 들어간 거죠. 최신 장비를 많이 누렸죠. 아직까지 동아예대의 장비가 우리나라에서 제일 좋다고 알고 있어요.

그가 생각하는 재미

Q. 한림대 이황석 교수님에게 많은 도움을 받았던 걸로 알고 있습니다. 영화 크레딧에 항상 등장하던데요.
군대에서 시나리오를 하나 썼어요. 이 교수님이 독일에서 독립영화를 전공하셨다길래 수업도 들어본 적 없는 분에게 시나리오를 보여드렸죠. 그랬더니 1주일 뒤에 오라고 하시더라고요. 1주일 뒤에 갔더니 다 정리하고 체크하신 다음에 찍어보라고 주시더라고요. 스토리텔링을 바꾸는 수정은 안 하셨어요. 그 분은 학생을 다 창작자로 대해주셨어요. 그래서 함께 고민을 해요. ‘왜 이런 얘기가 나왔을 까’하고. 전 확신하는 표정을 싫어하거든요. 확신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거든요. 너무 절대적으로 강요하는 건 부담이 돼요. 그래서 회사 다닐 때도 불편했던 거 같아요. 요즘들어 다른 감독님들과 친해져서 이야기를 하다보면 다들 사회성이 떨어지긴 하더라고요(웃음). 창작하는 사람들은 그런 부분이 있는 거 같아요.

Q. 혹시 그래서 상업영화 말고 독립영화만 찍는 건가요.
아니요. 전 상업이고 독립이고 그런 선도 없다고 생각해요. 제 영역이 이 정도고 거기에서 최적으로 할 수 있는 걸 하는 거죠. 독립영화라는 건 자본에 대한 독립을 말하는 거겠지만 기본적으로 영화는 재밌고 영상적이어야 한다고 봐요. 다른 좋은 매체 정말 많잖아요. 소설도 있고 수필도 있고. 그런데 굳이 영화를 찍으면서 자위할 필요는 없죠.

Q. 감독님이 생각하는 재미란 무엇인가요.
전 외적, 내적으로 전복이 있으면서 관객들이 신뢰하고 납득할 수 있는 이야기를 좋아해요. 그래서 기존의 구조를 파괴하는 것들을 정말 좋아하죠. 박찬욱, 봉준호 감독님처럼 저만의 색깔이 있는 영화를 만들고 싶어요.

Q. 앞으로 어떤 영화를 만들고 싶은 가요.
재밌는 거 하고 싶죠. 관객도 재밌는 거요. 그래서 저는 제가 재밌어서  이거 재밌지 않냐고 관객들한테 물어봤을 때 관객들이 갸우뚱하면, 왜 그럴까 하면서 저도 같이 고민하고. 그렇게 영화를 하고 싶어요. 
                                           
사진 류민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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