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폭력에 대항해 꿋꿋하게 살리라
모든 폭력에 대항해 꿋꿋하게 살리라
  • 이나영 기자
  • 승인 2012.02.27
  • 호수 135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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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3년 2월 22일, 뮌휀의 '백장미단'처형
▲ <독일의 숄 남매 기념 우표>
단두대로 향하는 내 발걸음은 차라리 가볍다. 내 운명을 조금도 저주하지 않는다. 모든 것이 내가 택한 길이었기에. 스스로 저승을 선택해 걸어가고 있는 지금, 다시 한 번 생각해본다. 생전에 가장 찬란히 빛나던 때가 언제였던가를.

몇 시간 전 마지막 면회가 있었다. 아버지께선 “역사는 너를 기억할 것이다”라며 나를 꼭 안아주셨다. 아버지는 늘 옳으셨다. 어린 시절 나와 동생 죠피는 아무것도 모른 채 ‘히틀러 유겐트’에 입단했다. 아버지는 히틀러를 믿을 수 없다며 우리의 입단을 못마땅해 하셨다. 내가 ‘백장미단’ 활동을 하게 된 데는 이런 아버지가 있었기에 가능했으리라.

어린 시절, 히틀러 유겐트에서 나치스당 대회에 기수로 참가한 적이 있다. 그 전까지만 해도 매일같이 듣던 조국에 대한 사랑, 히틀러에 대한 이야기를 곧이곧대로 믿던 나였다. 그러나 나치스당 대회가 열리던 뉘른베르크에서는 모든 것이 틀에 맞춰 행해졌고, 모두 조국에 대한 충성심에 대해서만 떠들고 있었다. 그때서야 지금 독일이 자유 없이 충성을 강요받는 사회라는 걸 깨달았다. 그 후 나는 대학교로 돌아와 의학 공부에 매진했고, 나치에 회의적으로 변하기까지 했다.

사회에 대한 불만을 접은 것도 잠시, 양심을 잃지 말라는 후버 교수의 강의를 듣고 나는 다시 사회에 대한 저항심으로 불타올랐다. 알렉스, 크리스토프, 빌리, 그리고 나는 후버 교수를 따로 만나 생각을 공유하는 사이가 됐다. 히틀러와 그 정부에 조종당하는 국민들을 보고만 있을 수는 없었다. 특히 학문을 하는 나와 같은 학생들은 더욱 깨어있어야 했다. 우리는 결국 나치에 대항할 ‘백장미단’을 조직하기에 이르렀다.

우리는 선언문을 만들어 학생들에게 뿌렸다. 나치의 행각과 전쟁의 고통을 알려 학생들을 일깨우려던 의도였다. 선언문은 학생들의 입을 타고 퍼져 성공하리라고 확신했다. 하지만 언제부터인가 나치는 우리가 만든 선언문을 저지하기 시작했고, 이내 찾아볼 수 없게 만들었다. 다음 전단을 준비할 새도 없이 나는 전쟁터로 끌려갔다.

전쟁을 직접 겪으며 극심한 고통을 보고 겪었다. 배고픔에 미쳐가는 소녀와 장애가 있단 이유로 가스실로 보내지는 어린이들을 봤다. 전 까지는 주로 나치의 억압에 저항했으나 이제는 나라와 국민들을 전쟁이란 무의미한 광란으로부터 구해야 한다는 소신이 생겼다. 히틀러에게 독일인 모두가 이 전쟁을 맹목적으로 받아들이진 않았음을 보여주고 싶었다.

전쟁터에서 돌아와 다시 동료들과 모여 밤을 새가며 선언문을 인쇄했다. 스스로를 걱정할 틈이 없었다. 살아 숨 쉬는 것조차 안전할 수 없었으니까. 동료들 사이에선 고단함과 불안 섞인 한숨이 오갔다. 그럴 때면 예수 그리스도가 그러했듯 우리도 부정한 현실을 해결할 길을 찾아가고 있다며 서로를 다독였다.

누구보다 소중히 여기던 동료들이었기에 비밀경찰 게슈타포에 추적을 당하고 있다는 소식을 듣고서도 도망을 갈 수가 없었다. 마음만 먹으면 탈출할 수 있었음에도 가지 못했다. 나와 연관 있는 사람들의 생명을 담보로 해야 했기 때문이다.

4일 전, 나는 동생 죠피와 결의에 찬 선언문을 들고 학교로 향했다. 우리를 주시하던 한 사람을 알지 못한 채 말이다. 우리가 선언문을 뿌리는 사이 학교 건물 관리인은 우리를 염탐하고 있었고, 선언문 소식은 나치에 알려졌다.

죠피와 나는 이내 비텔바허의 궁전으로 수감돼 갖은 고문을 당했다. 그럼에도 결코 나와 함께 했던 동료들에 대한 이야기는 하지 않았다. 그저 내가 죽어야 하는 이유를 찾아 동료들을 보호해야 했다. 내가 먼저 간다 하더라도 그들이 남아서 끝까지 대항해주리라 믿었기에. 더 살기 위해 조금의 타협도 하고 싶지 않았다. 나는 당당하니까.

지난날들을 회고하니 가슴이 벅차오른다. 이 독일 땅에 자유가 다시 찾아오는 날까지 나는 죽지 않는다. 자유를 갈구하는 생명들 속에 함께 할 테니까. 마지막으로 설 단두대에서 나는 외치겠다. “자유 만세!”                            

참고: 저서 「아무도 미워하지 않는 자의 죽음」
사진 출처: 구글 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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