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의 인물 ‘투표자’
올해의 인물 ‘투표자’
  • 유성호<인문대 국어국문학과> 교수
  • 승인 2012.01.01
  • 호수 135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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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대선과 총선에서 비롯된 한국 정치 지형의 보수화 국면은, 최근 치러진 지방선거와 서울시장 재선거를 통해 커다란 수정을 요청받기에 이르렀다. 그동안의 가부장적 독재 체제를 무너뜨리고, 양극화를 동반한 성장보다는 계층적 간극을 좁히는 분배를, 권력 집중보다는 분권적 네트워크를, 수직적 억압보다는 수평적 활력을 선택하면서 한국 사회를 이끌어갔던 진보적 열정이 새롭게 나타나기 시작한 것이다.

여기에는 현 정부의 고물가, 전세난, 실업난 같은 경제 정책 실패와 예전 권위주의로 돌아간 듯한 민주주의 억압 행태, 그리고 경색된 남북 관계 등 여러 불안 요인에 대한 시민들의 저항과 반감이 크게 작용했다고 할 수 있다.

근본적으로 진보란, 인간 사회의 개별 영역들이 낮은 차원에서 보다 높은 차원으로 나아가 그 질적 전환을 통해 더 큰 행복을 구현하려는 노력의 총화이다. 그것은 근대 부르주아 계몽주의의 철학적 산물로 나타난 것으로서, 그 핵심에는 세계를 합리적으로 규율하고 관리할 수 있는 사회적 관계와 그것을 형성하는 인간적 노력의 총체가 담겨 있다고 할 수 있다. 또한 그 안에는 인간 이성에 대한 낙관적 신뢰와 사회 변혁에 대한 이상주의적 원망(願望)이 함께 들어 있는데, 그래서 진보는 일종의 세계관이자 실천적 에너지로 작동하게 된다.

새해에는 총선 및 대선, 금융자본주의의 글로벌 위기 심화, 양극화로 인한 계층 갈등, 남북 관계 변화 등 우리 사회를 둘러싼 의제들이 숨 가쁘게 기다리고 있다. 대학에서는 그동안 심도 있는 축적을 이뤄왔던 인문학과 기초 학문에 대한 홀대가 진행되고 있고, 인간의 문화가 오랫동안 축적해왔던 고전 정신의 해체 작업이 자본의 힘에 의해 빠른 속도로 이뤄지고 있다.

이러한 움직임은 대학마저 시장에 철저하게 종속되면서 나타난 현상인데, 자본의 무한질주 끝에는 이처럼 신성하게 존재해야 할 것들마저 삼켜버리는 블랙홀이 준비돼 있었던 것이다. 가히 공포와 불안의 시대이다.

최근 대학생들이 가장 보수적이라는 말도 들린다. 정확하게 말하면 정치적 보수 지향보다는 진보가 추구해온 공동선에 대한 회의, 집단적 사유보다는 개체적 감각 우선, 그리고 미래적 존재 불안에 따른 냉소적 무관심 같은 것이 대학생들을 사로잡고 있는 것일 터이다.

대학생이란,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한 사회의 보루이자 새로운 가치 형성의 근간이 되는 핵심 동력이지 않은가. 시사 주간지 타임은 지난해의 ‘올해의 인물’로 ‘시위자(the protester)’를 뽑았다. 우리 대한민국의 ‘올해의 인물’은 ‘투표자(the voter)’가 되길 기대한다. 그래서 젊은 그대들이 이 공포와 불안의 시대를 바꿔주길 간곡하게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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