끊임없이 실패하겠다는 다짐
끊임없이 실패하겠다는 다짐
  • 안원경 기자
  • 승인 2011.12.05
  • 호수 135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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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대신문 편집국장이라는 자리가 기자에게 처음 주어졌을 때 끊임없이 실패하겠다고 독자와 약속했다. 대학 언론은 점점 설 자리를 잃어가고 있고 여러 시도를 통해 실패하더라도 용기 있는 실패를 하겠다는 마음가짐이었다. 하지만 임기를 다해가는 현재, 언론의 위기라는 단어가 너무 익숙해 둔감해져 버렸다.

기자가 이끈 한대신문은 올해도 빠르게 변해가는 학생들과 시대를 뒤쫓기에 바빴고 잃어버린 정체성은 아직도 찾지 못했다. 대학 사회의 변화를 이끌어야 한다는 대학언론의 소명 의식 또한 신문 발행에 급급해 간과했다. 수많은 대학신문 편집국장들과 앞선 선배들이 고민했던 문제들은 또 반복됐다. 독자의 무관심에 지쳐 또 그래왔던 것처럼 한대신문이 가진 가치와 무게를 고민하지 못한 채 한 호, 한 호 관성에 끌려 발행해야만 했던 적도 있었다. 대학 신문을 책임지고 있는 한 사람으로, 내부에서 쏟아져 나오는 의무감과 외부로부터 요구 받는 역할의 무게가 무거워 부러 위기의 현실을 목도하지 않으려 했던 것이다.

“신문 발행하기 위한 신문은 만들지 마라. 한 주 한 주 면 채우기 위한 기사는 쓰지 마라. 그러면 잉크 값, 종이 값만 아깝다. 면 채운다고 쓴 너희들의 시간만 아까운 거다”라는 말을 기자들에게 끊임없이 반복했다. 하지만 편집국장 역시 얕은 의무와 관성의 굴레서 벗어나지 못했다. 그렇기에 가끔은 신문사가 기자들에게 변화의 가능성은 없고 매일 고된 일을 반복해야 하는, 벅찬 의무감으로 해야만 하는 일을 강요하는 곳으로 받아들여질 때가 있었다. 임기가 끝나가는 현재 처음 독자들에게 했던 약속과 다짐을 다시 꺼내들기엔 부끄럽다. 나름대로 현 상황을 극복하기 위한 시도가 있었지만 금방 지쳐버렸다. 다양한 내용과 다양한 면을 구성하기 위한 노력이 있었지만 스스로에게 만족스럽지 못하다. 한 번 더 부끄러워지려한다. 많은 선배들이 하지 못했고, 한 해만으로는 가시적인 성과를 잡을 수 없는 노력이지만 풀지 못한 문제를 떠넘기려 한다. 한 편집국장이 한 해만에 못했기에 선배의 부탁이자 후배에게 또 짊어지우려는 의무다.

처음 끊임없이 실패하겠다는 다짐, 잃어버렸던 언론의 정체성을 만들어보겠다는 계획, 매일 달라지는 모습으로 독자를 끌어들여 보겠다는 포부, 앞으로 대학 언론을 짊어지고 갈 어떤 이들이든 지금 내민 부끄러운 손을 잡아주길 바란다.

앞으로도 우리가 발행하는 신문 중 수천 부는 비 가리개로, 노천극장의 깔개로 한 번도 읽지 못한 채 버려질 것이다. 하지만 또 고민하고 또 실패해야 한다. 1년 동안 봐왔던 실패를 잊지 않은 채 끊임없이 실패하려 들어야 한다. 하지만 실패를 시도하지 않았기에 직면할 수밖에 없었던 실패, 즉 관성에 따라, 신문만 발행하면 된다는 안일함으로 발생했던 필연적 실패는 하지 않았으면 한다. 올해도 실패였고 내년에도 실패해야 한다. 끊임없이 시도하고 실패해야 한다. 실패는 어쩔 수 없는 결과가 아닌 앞으로 짊어지고 갈 사람들의 의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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