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것은 문제의 본질이 아니다
그것은 문제의 본질이 아니다
  • 김명지 기자
  • 승인 2011.12.05
  • 호수 135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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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5년 12월 18일 한일국교정상화
▲ <1964년 한일회담에 대한 반대 시위>
일제 강점기 이후 오랜 단절이 끝나고 일본과의 국교가 새로 시작됐다. 지난 1951년 이승만 정부 때부터 국교 정상화의 물꼬가 트였던 것은 사실이다. 1965년 12월 18일 오늘 국교가 정상화된 것은 회담이 시작된 때부터 14년이 흐른 후다. 끝 모르게 길어지던 회담은 박정희 현 정부가 들어서면서 급속으로 진행됐다. 박정희 정부의 적극적 추진에 의한 결과였다.

‘14년 협상’이란 시간은 근본적으로 한일 양국의 역사적 인식의 차이에 그 원인이 있었다. 회담이 처음 열렸던 그해 당시 한국 측 수석대표인 양유찬과 일본 측 수석대표인 이구치 사다오의 대화가 향후 행보를 짐작케 했다. “이제 화해합시다”란 한국 측 대표의 말에 대한 일본 측 대표의 대답은 “도대체 무엇을 화해하자는 겁니까”였다. 과거사를 잊고 새로 시작하자는 한국에 마치 과거사 문제 자체가 없었던 양 굴었던 일본이었다. 영영 좁혀질 수 없을 것 같던 간극이었다.

이런 차이를 극적으로 해결한 것이 결국 한국 측의 ‘물러섬’이었다는 것에 나는 분노를 느끼며 한일회담 반대 시위에 가담했다. 1961년 쿠데타로 집권을 시작한 이후 박정희 정권은 ‘경제 개발’에 주력했다. 그들은 이를 실현하기 위해 안정적인 자본 조달을 필요로 했고 여기에 이용된 것이 바로 한일국교정상화였던 것이다. 6.25 전쟁 이후 피폐해진 한국은 미국으로부터 무상원조를 받아왔었는데 얼마 후 이것이 ‘차관’ 즉 대출의 형태로 바뀌었던 것도 이에 한 몫 했다.

물론 경제 개발은 모든 국민에게 중요한 가치다. 이를 위한 기본 자본이 필요했던 정부의 입장도 이해 못할 것은 아니다. 들리는 말에 의하면 미국 역시 한국 정부가 일본의 자본과 기술을 도입하도록 강력한 압박을 가했다고도 한다. 이에 박정희 정부는 급히 한일 양국의 인식적 차이를 억지로 봉합하고자 했다.

한일회담이 갖는 가장 큰 논란 중 하나는 한국을 식민지로 삼아 지배했던 일본의 ‘배상’ 문제가 단순 ‘청구권’ 문제로 격하된 데 이어 이것이 경제 논리로 마무리 됐다는 데 있었다. 이케다 수상은 한일회담의 본질을 경제적 문제로 보았고 지불 액수에 대해서는 한국 측의 요구를 최대한 반영했다. 그러나 이에 대한 명목은 과거사에 대한 배상이 아닌 경제협력이었다. 결국 한일회담의 본질이 과거사에 대한 사과와 화해가 아닌 경제적 협력의 한 방법인양 정리된 것이다.

또 일본의 배상 문제는 향후 한국 경제, 특히 공업에 대한 일본의 진출로를 여는 의미를 지니기도 했다. 경제협력에서 일본 측이 지불한 것은 자본 자체가 아닌 공업 제품 등이었다. 이는 일본이 전후 베트남, 인도네시아 등에서도 적용했던 방식이었다. 결국 ‘경제협력’ 조차도 일본의 입맛에 맞게 짜이고 말았다.

1953년의 3차 회담 중 일본 측 대표였던 구보다의 발언이 있었다. 한국의 홍진기 대표의 “일본이 점령하지 않았더라면 한국인 스스로 근대국가를 만들었을 것이다”란 말에 일본 측 대표 구보다는 “일본이 진출하지 않았더라면 한국은 더 비참한 상태에 놓였을 것”이라고 답한 사건이다. 나와 같이 시위에 가담한 사람들은 모두 이 발언을 가슴에 새기고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시위는 무엇이고 나아가 민주주의란 무엇인가. 이 모든 것이 허무하다.

구보다의 발언 이후 4년간 단절됐던 한일회담이 재개되고 마무리 지어진 후에는 또 어땠는가. 회담의 완료 이후 각국이 국회에서 한일국교정상화를 비준하는 데에서도 인식 차이는 계속됐다. 한일병합이 ‘이미 무효’란 것에 대해 한국 정부는 “원천적으로 무효였다”라고 해석한 반면 일본 정부는 “현재는 무효지만 당시엔 유효하고 합법적이었다”고 해석했다. 박정희 정부 들어서 급히 전개된 회담이 종료된 이후로도 논란을 이어가고 있는 것이었다. 결국 진짜 ‘문제의 본질’은 미궁 속으로 빠졌다.

감수: 이원덕<국민대 일본학전공> 교수
참고: 논문 「한일회담에서 나타난 일본의 식민지지배 인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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