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과 세계를 만나고 배우고 나누기
삶과 세계를 만나고 배우고 나누기
  • 류민하 기자
  • 승인 2011.11.28
  • 호수 135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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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정한 여행의 의미, 임영신<이매진피스> 활동가

‘평화를 위해 일하기 위해서는 일이 아니라 평화로운 존재가 필요하다’ 임영신 씨가 이라크에서 반전운동을 하며 깨달았다는 생각이다. 항상 이 구절을 마음에 지니고 있었을까. 평안한 눈으로 조근조근 이야기하는 그가 바로 ‘평화로운 존재’인 것 같았다. 그는 여행자들이 단순히 먹고 즐기는 여행이 아니라 공정한 여행을 시작하면 세계를 평화롭게 바꿀 수 있다고 굳게 믿는다. 그의 말에는 유난히 점층적인 표현이 많았다. 인식이 시작되면 그 다음 인식이 일어난다. 변화는 또 다른 변화를 일으킨다.


만나고 경험하는 여행


해외여행은 이제 더 이상 특별한 일이 아니다. 마음만 먹으면 세계 어디로든 여행을 떠날 수 있다. 누구나 유명 관광지를 방문하고, 기념 사진을 찍고, 기념품을 사서 돌아온다. 하지만 이 정도의 수박 겉 핥기 식의 여행에서 벗어나는 사람은 많지 않다. 파리에 가서 스타벅스 커피를 마시며 백화점을 돌아다니고 에펠탑과 루브르 박물관에 들렸다 오는 식의 ‘구경하는’ 여행은 우리가 모르는 사이에 여행지의 원주민에게 피해를 주기도 한다.

리조트를 만들기 위해 삶의 터전을 잃고 쫓겨난 가난한 어부들이 자신들의 어장이었던 연안에서 고기잡이를 하다가 미관을 해친다는 이유로 잡혀가 처벌을 받는가 하면, 아프리카에선 사파리 관광객들을 위해 소수 부족들이 강제로 이주당하기도 한다. 15살의 포터가 자기 몸무게보다 무거운 짐을 지고 히말라야를 오른다. 여행객들은 고어텍스 소재로 된 등산복을 입을 때 이들은 비닐을 뒤집어쓰고 산을 오르다 동상에 걸려 수족을 절단하기도 한다. 고산증으로 쓰러져도 의료보험의 혜택을 받지 못한다.

“‘나는 250만원을 냈는데 내가 낸 돈은 다 어디갔을까’, ‘네팔에는 이렇게 많은 관광객이 다녀가는데 왜 사람들이 여전히 가난한걸까’ 저는 이런 작은 물음에서 구조의 변화가 시작된다고 보거든요. 한 사람이 가지는 문제의식은 개인에서 그칠 수도 있지만 여러 사람이 행동하기 시작하면 구조를 변화시키는 힘이 될 수 있어요.”

어떻게 하면 진정한 의미의 여행을 할지 고민하는 사람들이 모여 새로운 여행의 개념을 만들었다. 이 새로운 여행은 책임 여행, 착한 여행, 공정 여행 등으로 불리기 시작했다. 이 여행은 단순히 먹고 즐기는 여행이 아니라 그 나라 사람들의 기쁨과 슬픔을 함께 나누는 소통의 여행이다. 새로운 여행을 하는 사람들은 현지인에게 수익을 공정하게 배분하지 않는 여행 상품 패키지를 이용하지 않는다, 또 현지인들을 착취하는 호텔 대신 현지인들이 제공하는 숙소와 음식을 이용한다. 때론 그들의 문화를 배우고 우리의 문화도 알려준다. 여행하는 사람에게도 배움을 준다.이런 여행의 방식은 내가 쓰는 돈이 그 지역의 발전을 위해 환원되게 한다.

“책임 여행이나 착한 여행이라는 말도 좋지만 그건 개인의 태도와 베풂에 관한 말이잖아요. ‘공정’이라는 말은 지켜야만 하는 가치에요. 내가 페어플레이 했다고 해도 상대편이 인정하지 않으면 성립이 안되는 거죠.”

취지에는 누구나 공감할 것 같다. 하지만 공정여행을 하기위해서는 지켜야 할 규칙이 꽤 많다. 기본적으로 방문하는 나라의 구조를 이해하고 있어야 하고 국제 포터 인권 조항같은 세부적인 사항에 대해서도 알아야 하기 때문이다. 사람들이 어렵고 불편한 공정여행을 꺼리지 않을까.

“지켜야 할 규칙도 많은데 어떻게 야구를 하냐고 묻는 거랑 똑같은 거죠. 초보일 때는 규칙에 신경쓰지만 룰을 알고 나면 룰을 즐기게 돼요. 룰 너머에 즐거움이 있는 거죠. 관광이 빛을 본다면 공정여행은 빛과 그늘을 함께 보는 여행이라고 생각해요. 세상에는 높은 언덕만 있는게 아니라 골짜기도 있고요. 그걸 함께 볼 때 세상을 제대로 보는 여행을 하게 되는거죠. 다만 야구의 룰을 모르고 야구를 할 순 없잖아요.” 

 

나에게 묻는 여행

이라크에 반전평화팀으로 떠났을 때도, ‘이매진피스’의 일원으로 일하고 있는 지금도, 그는 하고 싶은건 다 해본다. 사는대로 생각하지 않고 생각하는 대로 살고 싶기 때문이다.

“우리가 어떤 직업을 가지느냐도 중요하지만 내가 살고 싶은 세상이 어떤 세상인지 그 안에서 난 어떤 역할을 하면 좋을지 질문하는 것도 좋은 질문이라고 생각해요. 길을 찾는것도 중요하지만 길을 내는 사람이 될 수도 있는거죠.”

열일곱 살 때부터 그와 함께 여행을 하던 학생이 그를 찾아왔다. 외국의 대안학교로 가고 싶은데 어디가 좋을지 추천해 달라고 했다. 학생에게 뭘 하고 싶은지, 어떤걸 좋아하는지 물었지만 학생은 계속해서 모르겠다고 답했다. 그는 학생에게 아시아 15개국의 스무살들을 만나 무엇을 하고 싶은지 묻는 여행을 제안했다.

“이 친구가 여행하면서 오키나와에 있는 미군 기지를 철수하게 만드는 아시아의 유엔 같은 기구를 만들고 싶다는 일본 친구, 히잡(이슬람식 머리 수건)을 쓰고 결혼을 준비하는 인도네시아 친구, 태국 난민촌에서 영어를 공부하지만 난민 신분이라서 직업을 가질 수 없는 미얀마 친구, 방콕으로 자원봉사를 하러 왔다가 돌아가며 국제개발을 공부해서 다시 와야겠다고 말하는 노르웨이 친구를 만났어요. 그리고 제게로 와 추천서 한 장을 내밀더군요.”

그는 기꺼이 이 학생을 위해 스웨덴의 사회적 기업 양성 과정에 추천서를 썼다. ‘제가 이 친구를 만난 건 열일곱 살 때였습니다. 저희는 여행을 했고, 삶의 방향을 찾고, 지금 이 학교에서 첫 번째 걸음을 떼려고 합니다. 저는 기쁜 마음으로 이 학생을 추천합니다.’

“저는 그 친구가 진로를 잘 찾아가고 있다고 생각해요. 왜냐하면 이 친구는 물음을 붙들었고, 자신이 뭘 하고 싶은지를 진지하게 물었고, 그리고 하고 싶은 일의 방향을 찾았을 때 그것에 도전하고 나아가는 삶의 결단력을 가졌기 때문이에요. 처음부터 자기 꿈이 뭔지 아는 사람은 드물어요.”

그는 하고 싶은 일과, 살아가는 형태와 걸어가는 속도를 스스로 정하라고 권했다. 삶은 여행과도 같다. 무엇이 되느냐 보다 중요한 것은 더 많이 경험하고, 시도하고, 실패하는 것이다.

“좋아하는 걸 먼저 찾아야 해요. 그러기 위해 시간을 들여서 나에게 깊이 물으라고 말해주고 싶어요. 대학생 시기가 지나면 생각할 틈도 없이 계속 뭔가 선택해야 해요. 대학시절은 배우기 위한 시간이기도 하지만 나에게 묻기 위한 시간이라고 생각 하고요. 뭘 좋아하는지 한 번에 정답을 찾으려 하지 말고 다 해보라고 이야기 해주고 싶어요. 실패했는데도 또 하고 싶은 일이 있어요. 그게 자기 일이라고 생각해요. 직업이 아니라 길을 찾으면 어떤 길도 만들어갈 수 있는 힘이 생기겠죠. 내가 서 있는 세상에서 나는 무엇을 만들 것인지 근원적인 고민을 해야하는 시간이 여행의 시간이고 대학생 때인 것 같아요.”

사진제공 : 이매진피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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