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적인 허기 속에서 살아라
영적인 허기 속에서 살아라
  • 이순임<교목실> 교목
  • 승인 2011.11.20
  • 호수 135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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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순임<교목실> 교목>
전 세계 사람들에게 놀랄 만한 장난감들을 선물하는 데에 결정적인 공헌을 한 사람이 세상을 뜨자, 지구인들은 저마다 슬픔에 잠겨 아이새드(iSAD)를 외쳤다. 음악을 손 안에 휴대하고 다니도록 만들어준 아이팟, 전화기를 손안의 PC로 바꾼 아이폰, 걸어다니는 PC 시대를 연 아이패드의 뒤를 이어 그가 지구인들에게 선물한 마지막 품목은 아이새드였던 셈인가.

전 세계가 그를 추모하는 가운데 여러 어록이 소개되고 있지만, 그가 즐겨 사용했다는 “스테이 헝그리, 스테이 풀리쉬(Stay Hungry. Stay Foolish)”라는 명언의 속뜻이 제대로 전달되지 않은 것 같아 안타까운 마음이 든다. 이 명언은 2005년 스탠퍼드대 졸업식에서 사회 진출을 앞둔 졸업생들을 대상으로 한 축사 중에 등장한다. 그는 “누구도 죽음을 피할 수 없기에 삶을 낭비할 수 없으며, 진정으로 당신이 무엇을 원하는지를 생각하면서 살라”고 충고하면서, 어린 시절에 늘 끼고 살았던 「지구의 카탈로그」라는 책에 나오는 한 구절로 연설의 마침표를 찍었다. 거기에 나오는 말이 바로 “늘 허기지게, 늘 바보인 줄 알고 살아라(Stay Hungry. Stay Foolish)”이다.

“Stay Foolish”를 “늘 우직하게 살아라”로 옮긴 기사들이 적지 않지만, 그가 전하고자 했던 맥락에서 본다면 크게 어긋나 있음을 알 수 있을 것이다. 지적인 허기증, 지혜의 허기증은 자신이 부족한 줄을 알 때만이 생겨난다. 부족한 것을 안다는 것은 먼저 내 잔을 비워야 한다는 말이다. 빈 잔을 들고 서 있어야 귀한 선물을 받을 수 있다. 이미 채워져 있는 잔은 아무리 좋은 것이 있어도 채워 줄 수가 없다. 자신이 부족한 줄 알아야 그 부족한 것을 요청할 수도 있을 것이다.

영적인 배고픔과 허기와 목마름이 있어야 존재에 대한 질문도 던질 수 있다. 내 안에 무엇이 있어 이 허기를 느낄 줄을 알까. 누군가 내 이름을 부르면, ‘네?’라고 대답할 줄 아는 내 안의 “그것”은 무엇인가. 내 안에 누가 있어 내가 잠을 잘 때에도 심장 박동을 뛰게 하는가? 내 안에 무엇이 있어 세상을 알아보고 세상을 향해 나 자신이 살아 있다는 신호를 보내는가.

살코기들로 배를 잔뜩 채우고는 정작 영적인 배고픔은 모르는 채 살아가는 사람들에게는 선물이 주어질 리 없다. 우리 스스로 자신의 주린 정도와 상태를 알아야 채워질 도리가 생긴다. 주린 배의 상태를 아는 것, 그것은 어느 누구도 대신해 줄 수 없다. 우리 스스로 자기 자신의 굶주리는 정도를 알아야 한다.  진리를 살지 못하는 사람은 용서받을 수 있을지라도, 진리를 추구하지 않고 포만감에 사로잡힌 채 영적인 물음표를 잃어버리고 사는 사람은 아마도 용서받을 수 없지 않을까. 자기 배 주린 줄을 알면서 살았기에 늘 새로운 것에 목이 말랐던 우리 중의 한 거인을 떠나보내면서, 내 안의 영적인 허기증을 점검해 보지 않을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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