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앎’은 속이지만 ‘느낌’은 속이지 않는다
‘앎’은 속이지만 ‘느낌’은 속이지 않는다
  • 유영만<사범대 교육공학과> 교수
  • 승인 2011.11.14
  • 호수 135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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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영만<사범대 교육공학과> 교수
앎은 속일 수 있지만 느낌은 속일 수 없습니다. 가슴으로 느낀 감정이 머리로 올라가면서 희석되고 탈색되고 변색되는 것입니다. 느낌은 솔직합니다. 느낌이 앎으로 전환되는 과정에서 주관적 감정을 논리적 언어로 바꿉니다. 논리적 언어는 감성적 느낌을 모두 담아낼 수 없습니다. 우리는 아는 것보다 더 많은 것을 느낍니다. 가슴으로 느낀 점을 머리가 모두 이해할 수 없습니다. 머리는 생각하지만 가슴은 느낍니다. 우리는 지금까지 느낌보다 생각의 중요성을 강조해왔습니다. 생각하는 인간, 호모 사피엔스는 지금까지 철학의 중요한 탐구대상으로 간주되어왔을 뿐만 아니라, 모든 학교교육에서 최우선적으로 개발해야 될 분야였습니다. 느낌은 변덕스럽기에 합리적이고 객관적인 생각이나 이성의 지배를 받아야 된다고 생각해왔습니다. 그래서 따뜻한 가슴’보다 냉철한 이성을 강조했던 것입니다.

“머리에 두 손을 얻고 생각하라”고 하지 않고 “가슴에 두 손을 얻고 생각하라”고 합니다. 상식적으로 머리가 생각하는 것 같지만, 사실은 가슴이 생각하는 주체입니다. 머리로 생각하는 것보다 가슴이 생각하는 것이 더욱 진정성이 있습니다. 머리는 거짓말을 하지만 가슴은 거짓말을 못하기 때문입니다. 가슴으로 대상이나 사람에 대해 느낀 점을 머리로 생각하기 시작하면서부터 이른바 잔머리를 굴리기 시작합니다. 오만 가지 잡생각으로 느낌을 어떻게 표현할지 구상하기 시작합니다. 그때부터 느낌은 느낀 대로 표현되지 않고 논리적 언어로 재단되기 시작합니다. 가슴으로 느낀 점이 머리로 올라가면서 희석되고 탈색되며 변색되기 시작합니다.

생각을 의미하는 한자 ‘思’는 ‘밭田+마음心’의 합성어입니다. 밭을 의미하는 ‘田’은 본래 인간의 숨골, 즉 ‘이성’을 의미한다고 합니다. 감성(心)의 기초 위에 이성(田)이 작동되는 것이 생각 ‘思’입니다. 생각 ‘思’를 보면 마음이 밑에 있고 그 위에 생각이 있습니다. 생각도 마음을 기반으로 작동돼야 한다는 의미입니다. 감성은 대상에 대한 가장 정직한 느낌입니다. 머리로 판단하기 전에 가슴으로 먼저 느낍니다. 느낌이 오지 않는데 계속 논리적으로 설명하면 설령 이해가 되었어도 마음이 후련하지 않고 찝찝한 느낌이 남습니다. 논리적으로 ‘설명’하면 지루해하지만, 감성적으로 ‘설득’하면 눈에 광채가 납니다. 감성적 ‘설득’ 없이 논리적 ‘설명’으로 일관할 경우 “그래 너 잘났다. 너나 잘해라!”라고 상대방을 비아냥거리기도 합니다. 가슴 속 깊이 공감을 불러일으키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머리로 이해는 되지만 가슴으로 느껴지지 않으면 행동으로 옮기지 않습니다. 마음이 움직여야 감동(感動)이 다가옵니다. 감동해야 행동(行動)합니다.

세상을 지배하는 사람은 머리보다 마음을 뒤흔드는 사람입니다. 위대한 리더일수록 팀원의 머리가 아닌 마음을 공략합니다. 그는 시간이나 일을 관리하지 않고 팀원의 마음을 관리합니다. 마음을 움직이면 시간과 일은 팀원이 알아서 관리합니다. 나아가 지금하고 있는 일에 몰두하고 몰입합니다. 열정을 쏟아 붓습니다. 팀원은 자신의 마음을 알아주는 리더에게 자신의 모든 것을 던집니다. 불광불급(不狂不及)입니다. 즉 미치지 않으면(不狂) 미칠 수 없습니다(不及). 프랑스의 시인 보들레르는 늘 취(醉)하라고 했습니다. 취(醉)하지 않으면 취(取)할 수 없습니다. 취한다는 이야기는 술에 취하는 것이 아니라 사랑하는 대상에 흠뻑 빠지는 일입니다. 무엇인가를 얻고자 한다면 무엇인가에 흠뻑 빠져야만 합니다. 빠지지 않으면 빠질 수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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