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막 없는 영상물, 이빨 빠진 호랑이
자막 없는 영상물, 이빨 빠진 호랑이
  • 김지연 기자
  • 승인 2011.11.05
  • 호수 135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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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그램의 성격뿐만 아니라 미적 요소까지 고려해야

어느날 우연히 희진이는 즐겨보던 오락 프로그램의 ‘무편집 영상’을 보게 됐다. 영상 속의 출연진들은 이전과 같았지만 평소와 달리 희진이는 별 재미를 느끼지 못했다. 영상에 자막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이처럼 TV 프로그램의 자막은 우리에게 큰 영향을 끼치는 요인으로 자리 잡고 있다.


시청자를 사로잡는 TV 프로그램 속 자막

TV 프로그램들은 시청자들의 다양한 욕구를 충족시키기 위해 노력해왔다. 시청자들의 시선을 끌기 위한 방법 중 가장 쉽고 적은 비용이 들어가는 것이 편집이며 영상자막(이하 자막)은 그 중 하나로 꼽힌다. 박성복<언정대 신문방송학과> 교수는 “초기 자막은 시청자들에게 최소한의 정보만을 제공하는 역할을 했다”고 설명했다. 이후 더욱 치열해지는 방송사 간의 시청률 경쟁으로 정보제공의 목적이 아닌 자막의 사용 또한 눈에 띄게 늘어났고 이제 자막은 방송제작을 하는 데 있어 중요한 요소로 자리 잡게 됐다.

자막이 시청자들에게 큰 영향을 끼치는 이유는 시청자가 영상물을 이해하는 데 도움을 주고 있기 때문이다. 출연자의 음성 언어를 그대로 인용하거나 음성 언어로 제공되지 않는 필수적 정보들을 나타내는 것 등이 시청자들의 이해를 돕는 기능을 하는 자막의 대표적 유형이다. 이 외에도 자막은 △TV 화면의 영상요소로서의 기능 △흥미를 유발하고 재미를 보강하는 기능 △연출자의 의도를 자막에 반영하는 기능을 수행하고 있다.


사실 전달부터 웃음의 기능까지

TV 프로그램은 크게 △뉴스 프로그램 △시사·교양 프로그램 △오락 프로그램으로 나뉜다. 박 교수는 “자막도 프로그램의 성격에 따라 프로그램 내에서의 기능과 표현방법이 다르다”고 설명했다.

▲ <뉴스 프로그램에서 출연자의 음성언어를 그대로 인용한 경우>
뉴스 프로그램은 사실 전달을 목적으로 하기 때문에 자막 사용이 절제돼 있는 것이 특징이다. 자막이 정확하고 가독성이 좋아야 하기 때문에 미적인 요소도 상당 부분 제한된다. 앵커 및 기자를 제외한 출연자의 음성 언어는 정확한 전달을 위해 자막으로 처리한다. 이에 대해 박 교수는 “음성 언어는 말하는 사람의 의도대로 시청자에게 전해지지 못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출연자가 말하고자 하는 의미를 시청자들이 해독할 때 오디오 외에도 시각적인 요소가 가미되는 것이 더 좋다는 것이다. 뉴스 프로그램에서 사용된 고딕체와 파란색 계열의 자막은 무겁고 강한 느낌을 줘 보도의 신뢰성과 책임감에 대한 상징적인 요소로 작용한다.

▲ <시사ㆍ교양 프로그램에서 최소한의 정보만을 전달한 경우>
시사·교양 프로그램에서는 정보 전달과 교육 기능에 초점을 둔다. 이지양<가톨릭대 국어국문학과> 교수는 논문 「프로그램 성격에 따른 TV 영상 자막의 분석」을 통해 “시사·교양 프로그램은 시청자에게 어떤 메시지를 전달할 것인가를 명확히 설정해야 한다”며 “주제의식을 부각해야 하고 재미보다는 유익함에 비중을 둬야 한다”고 설명했다. 시사·교양 프로그램은 자막을 사용할 때 프로그램의 목적을 충분히 전달하고 화면에 집중할 수 있게 해야 한다. 때문에 내용전달이 쉬워야 하고 자막의 심미성까지 고려하는 것이 좋다. 또 시사·교양 프로그램의 출연자들은 아나운서 혹은 성우이기 때문에 발음상의 전달성이 비교적 더 좋아 음성 언어를 자막으로 처리하는 경우가 거의 없다. 반면 다양한 지식을 제공하는 프로그램의 특성상 부연설명을 하는 자막이 많이 쓰이는 편이다. 시사·교양 프로그램에서는 주 대상층이 누구인가를 파악하고 방송되는 시간을 고려해 자막을 디자인해야 한다.

▲ <오락 프로그램에서 연출자의 의도에 따라 자막이 사용되는 경우>
마지막으로 오락 프로그램에는 자막이 가장 많이 사용된다. 정보를 전달하는 기능보다는 시청자의 재미를 위해 자막이 사용되는 경우가 많다. 박 교수는 “오락 프로그램은 기본적으로 프로그램의 목적인 재미가 자막에 표현돼야 한다”며 “오락 프로그램의 자막은 웃음의 포인트를 잡아주거나 특정 상황에서 웃음의 의미를 강화하는 기능을 한다”고 설명했다. 오락 프로그램에서의 자막은 화면의 전체적인 느낌에 맞춰 자막을 제작하는 것이 좋다. 비교적 다양한 색채와 효과를 사용해 화면과 어울리고 보다 창의적인 자막을 디자인해야 한다.

 

 

잘못된 자막, 바르게 사용하려면

과거에 비해 빈번해진 자막의 사용으로 나타나는 문제점도 있다. 과거 TV 프로그램에서 자막의 목적은 기본적인 정보 전달 등과 같은 시청자의 이해를 돕기 위한 것이었다. 1990년대에 접어들면서 오락 프로그램을 중심으로 자막의 사용이 점차 빈번해지기 시작했고 현재는 대부분의 프로그램이 다양한 용도로 자막을 활용하고 있다. 그러나 자막을 상황에 맞지 않는 때에 사용하는 등 갖가지 문제점이 발생하고 있다.

먼저 어법, 맞춤법에 어긋난 자막을 오용하는 것이 문제가 된다. 이에 대해 박 교수는 “음성 언어를 자막으로 바꿔 쓰는 과정에서 나타나는 현상”이라며 “말로 할 때는 주어를 생략해도 되던 것이 글로 바꾸는 과정에서 오류가 생기는 경우가 이에 속한다”고 설명했다. 또 부가적 기능의 자막을 남용하는 사례도 있다. 출연자의 대사를 그대로 인용해 전달하는 것이 대표적인데, 굳이 자막으로 제공하지 않아도 되는 경우에도 쓰이는 것이 문제가 된다. 정확한 발음을 구사하는 내레이션이 그대로 자막으로 처리되는 등의 경우도 이에 속한다. 연출자의 의도에 의해 자막이 사용되는 사례에서도 잘못된 용례를 볼 수 있다. 박 교수는 “연출자가 음성 언어를 자막으로 만드는 것은 시청자들에게 프로그램을 연출자의 의도대로 수용하도록 강요해 시청자의 상상력을 제한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같이 자막의 사용이 빈번해지면서 발생하는 문제점은 크게 △방송 언어로서 부적합한 자막의 사용 △자막의 무분별한 사용 △시청자의 상상력을 제한하는 자막으로 나눌 수 있다. 물론 적재적소에 자막을 사용하는 것은 프로그램에 대한 시청자들의 이해를 돕고 새로운 정보를 제공하는 등의 순기능이 있다. 이를 위해서 연출자는 TV 프로그램의 제작자라는 책임의식을 가져야 한다. 단순히 시청자의 흥미를 유발하기 위한 자막이 아닌 실속 있는 정보를 제공하고 꾸준히 아이디어를 개발하는 등의 노력이 필요하다. 박 교수는 “프로그램 특성별로 어떻게 자막처리를 하는지에 대한 법칙은 없다”며 “하지만 연출자가 프로그램 특성에 맞는 적절한 자막을 제작한다면 시청자도 효과적으로 프로그램을 시청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참고: 논문 「프로그램의 성격에 따른 TV 영상 자막의 분석」, 논문 「TV 프로그램 속 영상자막의 활용 및 표현에 관한 연구」 , 논문 「프로그램 유형별 방송 자막의 활용 현황과 그 문제점에 관한 연구」
사진 출처: 구글 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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