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나간 죽음 앞에서
지나간 죽음 앞에서
  • 김명지 기자
  • 승인 2011.10.31
  • 호수 135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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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9년 10월 26일 안중근 의사 의거

 

▲ <안중근 의사>
길지 않은 유학생활을 마치고 돌아온 조선은 그 사이 많은 변화를 겪은 듯하다. 지금은 부모님의 성화로 경성의 집을 잠시 벗어나 친가인 의주를 방문하러 가는 길, 경의선 철도를 타고 가는 길에 치러야 하는 값이 적지 않았다. 값싼 화물운임에 비해 턱없이 비싼 여객운임을 지불하고 나니 “조선을 위해 철도를 만들었다”던 그들의 말이 얼마나 허황된 바인지 새삼 깨닫는다. 철도가 싣고자 한 것은 조선인들의 기쁨인가, 조선인들의 소유였던 각종 자원들인가.

냉소적인 시선으로 열차 곳곳을 들여다보다 우연히 집어든 신문엔 지금으로부터 30년 전의 사건이 다시 한 번 실려 있었다. 지난 1909년 10월 26일 하얼빈역 플랫폼에서 안중근 선생이 조선 침략의 ‘핵’ 이토 히로부미를 사살했던 이야기다. 기사는 거사 30주년을 맞아 안중근 선생에 대해 다시 한 번 주목하고 있었다. 그는 이미 그 사건 이전부터 진남포의 ‘돈의학교’를 운영했던 교육운동가로서, 평안도의 국채보상운동가로서, 1908년 국내진공작전에서 의병으로서 활약을 펼치며 조선인들 사이에서 주목을 받고 있었다고 한다.

그런데 별안간 중절모를 쓰고 옆에 앉아있던 신사 한 분이 내가 쥐고 있는 신문을 한 번 힐끔, 나를 한 번 힐끔 보더니 내게 말을 거는 것이 아닌가. “안중근이란 자의 테러에 대해 어찌 생각하시오.” 잠시 할 말을 잃었다. “그의 잔혹한 테러에 대해 어찌 생각하냐는 말이오. 난 신문을 읽는 당신의 눈에서 인텔리적인 기품을 느꼈소. 말이 통할까 싶어 묻는 것이오.” 나는 여전히 할 말을 찾지 못했다.

일제에 협력하는 일부 인물들이 그 제국주의를 옹호한다는 말은 이미 들어 알고 있었다. 그들은 일제가 조선의 근대화를 진행시켰다고 말한다. 그러나 그들이 말하는 근대화의 실체가 무엇인가. 근대화는 단순히 한 영역에만 국한해 설명할 수 없는 개념이다. 정치적 민주화, 경제적 산업화, 사회적 평등화, 문화적 합리화와 자유화 등 근대화를 설명하는 데에는 수많은 요소들이 필요하다. 그러나 그들은 오직 하나, 경제적 산업화에만 기준을 맞춰 일차원적인 해석을 내놓았다. 심지어 이 경제적 근대화 역시 한반도에 사는 일본인들과 일부 매판자본가들의 이익에만 집중된 것이었다. 매판자본이란 식민지 국민임에도 외국자본과 결탁해 자국민들의 이익을 해치는 이들을 설명하는 말이다. 이런 불완전한 산업화는 식민지 치하에서 조선인들이 경제적으로 독립하지 못하고 남에게 의지하며 살도록, 또 그것이 영속되도록 만들었다.

안중근 선생에 대한 평가 역시 마찬가지다. 중절모의 사내가 무슨 생각으로 그런 말을 하는지는 알만하다. 나 역시 오랫동안 ‘살상’에 대한 회의를 품었다. 내게 일침을 가한 것은 내 유학동기였던 K다. 그는 그것이 ‘정당방위’이자 ‘대항폭력’이라고 강조했다.

한일병합이 이뤄지기도 전에 조선에서 남한대토벌작전을 비롯해 수많은 학살과 만행을 자행했던 일제였다. 그리고 그 폭력의 중심에 서있던 이토 히로부미였다. 이토와 일본 고관들을 목표로 한 선생의 거사는 폭력에 시달리는 민중을 위한 것이었다. 의거 이후 태어나 유학을 경험한 내 시각에서 이것은 세계 각지에서 일어나던 테러리즘과 본질적으로 비교가 불가한 것이었다. 이토 히로부미가 일본 정계에서 ‘온건파’ 취급을 받았던 것을 두고 일부는 의거가 병합을 앞당겼다 말하기도 한다. 그러나 이것이 조선과 일제의 관계를 ‘감히’ 변화시킬 수 있었다고는 생각할 수 없다.

나는 차창 밖 풍경과 한껏 멋을 낸 사내의 중절모를 한 번씩 번갈아 바라보았다. 그러나 내 오른편에 있는 조선의 황폐한 풍경과 왼편에 있는 사내의 정갈한 차림새를 동시에 볼 수는 없었다. 사팔뜨기가 아닌 ‘정상인’의 눈이니 당연한 일이다. 철커덩, 드디어 의주에 도착한 열차는 어서 내리라는 듯 손님들을 재촉하고 있었다.

도움: 조광<고려대 한국사학과> 명예교수
사진 출처: 구글 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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