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말 그대로 살아도 괜찮아요"
"정말 그대로 살아도 괜찮아요"
  • 류민하 기자
  • 승인 2011.10.02
  • 호수 135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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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길로 느려도 미친듯이, 표철민<위자드윅스> 대표

85년생. 27세. 그리고 12년차 CEO. 표 대표는 언제나 나이로 화제가 됐다. 열 여섯에 설립한 다드림 커뮤니케이션부터 지금의 위젯 분야 1등 위자드웍스까지. 아직 젊지만 긴 그의 사업역사에는 굴곡이 정말 많았다. 하지만 그는  언제든 새로 시작했다. 창업초기의 절박한 느낌이 너무 좋단다. 

일벌이기 좋아하던 아이, 위젯 1등이 되다

그는 어릴때부터 일을 벌이는 것이 좋았다. 초등학교 때부터 그는 미니 레이싱카 표지그림을 학종이로 거래하는 사업을 벌였고 잡지사도 차렸다. 열 여섯 살엔 재미로 인터넷 도메인 등록대행을 하다가 다드림 커뮤니케이션을 설립하기도 했다.

웹 2.0 개념이 뜨던 2006년, 대학생활을 하던 그는 개인화 포털을 만들어 서비스 하자고 결심했다. 개인화 포털은 내가 필요한 콘텐츠만 선택해서 나만의 포털을 꾸밀 수 있는 사이트를 말한다. 그는 한국에서 최초로, 세계에서 여섯 번째로 개인화 포털 ‘위자드닷컴’을 론칭했다.

개인화 포털은 전문가들과 파워블로거들의 열렬한 환호를 받았다. 2007년 가을에는 미국 IT전문지 「레드헤링」이 선정하는 ‘아시아 100대 유망 벤처기업’ 안에 들어 홍콩에서 상을 받기도 했다. 하지만 상업적으로는 성공을 거두지 못했다. 위자드웍스는 개인화 포털로 돈을 번 적이 거의 없었다.

“사람들이 귀찮아서 개인화 포털을 안 꾸민다고 생각했었는데 알고보니 사람들은 자신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모르는 거였어요. 그동안 그렇게 고생을 하면서 ‘기술자랑’만 한거죠. 사실을 깨닫고 굉장히 충격적이었어요.”

홍콩에서 한국으로 돌아온 지 얼마 되지 않은 어느 날, 그는 몇통의 이메일을 받았다. 개인화 포털의 재료가 되는 위젯들을 자신의 블로그에 가져다 달 수 있는 방법을 제공해달라는 내용이었다. 표 대표는 ‘돈도 안 되는데 가져다 쓰라지 뭐’하고 위젯을 퍼갈 수 있는 서비스를 열었다. 놀랍게도 개인화 포털을 내놓은 후 1년 반 동안 모은 트래픽보다 블로그로 퍼간 위젯이 만들어낸 트래픽이 더 많았다.

“항상 도화지만 생각하다보니 그 도화지를 구성하는 개별 그림 자체의 가치에는 신경을 못쓴거죠. 사람들은 전체보다는 자기에게 필요한 것만 골라서 자기의 공간에 붙여두고 싶어했던 것 같아요.”

이후 위자드웍스는 위젯 전문 회사로 방향을 바꿨다. 위자드웍스가 개발한 W위젯은 큰 반향을 일으켰다. 유명 포털들과 제휴를 맺으면서 반향은 증폭됐다. 2010년 여름, 위자드웍스가 만든 위젯들을 한 곳에 모아놓은 ‘위자드팩토리’는 국내 전체 26위 사이트로 성장했다. 하지만 성공의 기쁨도 잠시였다.

2009년 말 아이폰의 국내 발매로 국내에는 스마트폰 열풍이 불기 시작했다. 위젯으로 승승장구 하던 그도 큰 실수를 했다. 스마트폰의 가능성을 간과한 것이다. 그는 어려운 스마트폰이 절대 대중화 될 리가 없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스마트폰은 초보자들도 이용하기 쉽도록 인터페이스가 쉽게 변해있었고 디자인도 아기자기했다. 다음해 초 위자드웍스는 바로 회사 모토를 ‘Beyond Widget’으로 잡았다. 위젯을 몇 년간 파고들어 대중화에 성공한 회사가 다음해 선택한 구호라고는 생각하기 어렵다. 그는 항상 새로 시작했다.

   
다시 초심으로

인터뷰 전날 위자드웍스 블로그에 2011년 하반기 공개채용 글이 올라왔다. ‘진솔한 저희 이야기를 드리려고 해요.’ 여느 공개채용 글과는 다른 느낌이었다. 담담한 표 대표의 고백투로 시작되고 있었다.

요약하자면 글의 내용은 이러했다. ‘B2C(business to customer)서비스로 시작했던 위자드웍스는 기업들의 위젯 개발대행을 하면서 어느새 광고위젯을 만들어주는 B2B(business to business)광고회사가 되어있었다. 이제부터라도 완전히는 어렵겠지만 조금씩 B2C회사가 되려고 한다.’

어느 때부턴가 위자드웍스는 회사의 생존을 위해서 광고위젯 개발을 더 많이 맡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사원들도 더 많이 뽑기 시작했다. 늘어난 사원들에게 월급을 주기 위해서 회사는 광고업무를 더 많이 맡았다. 위자드웍스는 근 3년간 웹서비스를 하나도 내놓지 못했다. 악순환의 고리는 계속됐다.

▲ <위자드윅스 회의실 책장 위에 사훈이 적힌 액자가 놓여있다>
“누군가 멈추지 않으면 처음 생각했던 것과는 너무도 멀어진 채로 계속 달리게 될 것 같았어요. 이건 멤버들에게나 저에게나 '위자드웍스'라는 이름으로 모여있을 이유가 없는 일들이라는 확신이 들었죠.”

그는 악순환의 고리를 끊기로 했다. B2C사업 분야로 위자드웍스가 새롭게 채택한 분야는 클라우드 서비스다. 위자드웍스는 오는 11월 새로운 시작을 맞는다.

한편 그는 2010년 소셜 앱게임 회사 ‘루비콘 게임즈’를 설립했다. 싸이월드 앱스토어 오픈에서 72개 서비스 중 72등을 한 뒤 그는 140평의 사무실을 두고 다시 3평짜리 사무실로 들어갔다. ‘루비콘 게임즈’의 창업멤버로는 게임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들이 모였다. 그는 멤버들이 스스로 공부해서 올라올 때까지 기다렸다. 그는 성과뿐 아니라 멤버들의 성장도 신경썼다.

아무것도 모르던 멤버들이 겨우 두달간 공부해서 게임 ‘뽀잉뽀잉’을 내놨다. 큰 인기를 끌지는 못했지만 게임을 내놓은 것만 해도 대단한 성과였다. 이어진 ‘슈팅스타’, ‘스타시티’는 조금씩 순위를 올려갔다. 

지난 29일 루비콘 게임즈는 4번째 야심작 ‘드림밴드’를 내놨다. 전세계 최초의 밴드 육성 시뮬레이션이다. 미니홈피 일촌 친구들을 밴드 멤버로 모아서 처음엔 허름한 학교 지하실에서 연습을 시작한다. 성장한 밴드는 나중에 큰 콘서트홀에서 연주를 하게 된다.


“게임의 순위가 올라가긴 했지만 그래도 여전히 대박을 친 적은 없어요. 드림밴드는 루비콘 게임즈에게 마지막 게임일 수도 있어요. 더 이상 돈이 없어서 못 만들어요. 다음이라는 기회가 없다는 걸 모두가 알고 있으니 그 어떤 전작들보다 절박하게 만들었죠.”

그는 말로만 도전하는 사람이 절대 아니었다. 그의 저서에서, 강연에서 하는 이야기를 그대로 실천하는 사람이었다.

사진 박욱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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