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들’이 싸우는 이유
'그들’이 싸우는 이유
  • 안원경 기자
  • 승인 2011.10.01
  • 호수 135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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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싸우는 건 세상을 바꾸기 위해서가 아니라 세상이 우리를 바꾸지 못하게 하기 위해서에요” 영화 「도가니」에서 나오는 대사다.

영화 「도가니」는 고립된 청각장애인 학교에서 발생한 집단 성폭행 사건을 다룬 실화영화로 불편한 진실을 목도하게 만든다. 성폭행 피해자들은 뇌물과 인맥으로 무너뜨릴 수 없는 성벽을 쌓아놓은 성주와 법정 싸움을 이어간다. 권력자들은 진실을 외면하고 그들의 법정 싸움은 패배로 끝난다. 하지만 그들은 앞선 대사처럼 스스로가 세상에 의해 변하지 않기 위해 끊임 없이 투쟁을 계속해 나간다.

영화 개봉 이후 「도가니」사건 관련자를 다시 재판하라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영화  「도가니」가 사람들에게 불의에 대한 분노의 감정을 일으킨 것이다. 세상에 의해 변하지 않고 진실만을 추구했던 그들에게 세상을 변화시킬 기회가 왔다. 옳지 못함, 그동안 회피했던 진실을 마주한 많은 이들의 분노가 안개에 싸여 무너지지 않을 것 같았던 성벽을 조금씩 무너뜨리고 있다.

불의에 대한 분노는 지난 고려대 성추행 사건에서도 타올랐다. 학교의 미적지근한 대응, 유명 변호사로 꾸려진 가해자 변호인단, 피해자의 상처는 안중에도 없었던 가해자의 뻔뻔함, 해당 대학의 묵인 등 권력자에 의해 진실이 가려지고 약자만 상처받아야 하는 현실에 대해 분노했다.

가해 학생 휴학 조치 등으로 유야무야 넘어가려했던 학교는 학생들과 여론에 밀려 해당 학생이 재입학할 수 없는 출교조치를 내렸고, 유명 변호인단을 통해 ‘옳지 않은’ 형량을 받으려했던 가해자들에게 징역형이 가해졌다.옳지 못함에 대한 사람들의 분노가 조금씩 세상을 바꾸려하고 있다. 이는 대학 사회도 마찬가지다. 지난 달 29일 청계광장서 열린 거리 수업에 주최 측 추산 7천여 명이 모였다. 등록금에 대한 분노와 왜곡된 대학 구조에 대한 분노가 거리로 쏟아져 나왔다.

그들이 또 다시 거리에 나온 이유는 앞선 분노처럼 멋있지 않다. 약자의 상처에 대해 공감하고 정의로운 사회를 위한 분노는 아니다.

‘반값등록금’이라는, 대학생 입장에선 이기적일 수 있는 의제를 들고 나온 이들에게 세상을 바꾸려는 고매한 의지보단 현실에서 자신들이 겪고 있는 고통을 조금이나마 줄이려는 노력이다. 영화의 대사처럼 점점 각박해져 가는 세상이 자신들을 바꾸지 못하게 하기 위한 외침이다.

하지만 그들의 외침은 자신을 바꾸지 못하게 하는 분노인 동시에 현실의 고통을 견디다 못해 나온 외침이다. 영화와 고려대생 성추행에 따른 분노보다 당사자가 겪고 있는 대학 문제에 대한 분노는 훨씬 더 직접적이고 훨씬 더 큰 폭발력을 가진다. 어떤  분노든 많은 사람들이 목적을 같이 한다면 그 분노는 분노를 넘어 대안이 되고 변화의 중심이 된다. 사회는 우리들의 분노에 주목해야 한다. 그들이 싸우는 이유에 귀 기울여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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