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처럼 남기고 싶은 인생의 흔적
재처럼 남기고 싶은 인생의 흔적
  • 김유진 기자
  • 승인 2011.09.26
  • 호수 134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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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쓰는 소방관, 전세중<서울소방방재본부 광나루안전체험관> 관장
저서「아름다운 도전」,「걸어오길 잘했어요」를 집필한 전세중 관장. 반백년이 다 돼가는 나이에 펜을 든 것이 그에게는 ‘아름다운 도전’이었다.  이제 그에게 글을 쓰는 것은 ‘도전’을 넘어 ‘인생’이 됐다.


바보의 길을 걷다

글쟁이 소방관 전세중 씨. 그는 2편의 저서와 수십 개의 동시와 시조를 지은 엄연한 한국문인협회 회원이다. 하지만 본업은 소방관이다. 1984년에 시작한 그의 소방관 인생도 벌써 28년차에 접어들었다.

“어릴 적에는 경찰관 같은 공무원이 되고 싶었어요. 학창시절 선생님께서 나눠주신 장래희망을 묻는 질문지에 공무원을 적은 기억이 아직까지 나요. 그 때는 어린마음에 막연히 국가에 도움이 되는 사람이 되고 싶었어요. 그런 생각이 쭉 이어졌죠. 성인이 된 후 군복무를 마치고 고향을 떠나 서울로 이사를 왔어요. 그 당시 잠실에 살았는데 강남 소방서쪽으로 차를 타고 가다 보면 소방관들이 운동을 하고 있더라고요. 그 모습을 보면서 ‘저들처럼 소방일을 하면서 국가에 이바지 해야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그렇게 소방관의 길을 걷게 됐죠.”

그는 바로 그 ‘강남 소방서’에 첫 배정을 받았다. 꿈을 꾸기 시작한 곳에서 꿈을 성취한 것이다. 그의 소방관 인생은 그렇게 시작됐다. 누군가 세상에서 제일 바보는 소방관이라고 했다. 자신의 몸을 희생해 남을 살리는 직업이기 때문이다.

“소방관은 국민의 봉사자에요. 재난이나 사고가 발생했을 때 현장에 제일 먼저 달려가야 해요. 누군가를 구해내야 하는 게 소방관의 사명이죠. 그러니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고 뜨거운 불속에 뛰어들 용기를 가져야 해요.”

소방관들은 이것이 숙명이라 묵묵히 불 속으로 뛰어든다. 남들은 불을 피해 대피하는 순간, 거꾸로 불길 속으로 뛰어 들어가는 것이다. 그는 30년 가까운 소방관 생활을 하면서 몇몇 동료들을 떠나보낼 수밖에 없었다.

얼마 전에는 한 대원이 화재현장에서 숨지는 사건이 발생했다. 시민들을 다 구하고 혹시 건물 안에 사람이 있을지 몰라 들어간 대원이 엘리베이터를 설치하기 위해 만든 4층 통로를 보지 못하고 발을 헛디딘 것이다. 그는 한동안 동료 대원을 구하지 못했다는 생각에 죄책감에 시달렸다.

먼 길 떠난 당신은 늘 푸른 나무/ 순수의 열정으로 빛나던 투혼/ 절망 속에 온몸 던진 희생과 사랑/ 아낌없이 다 내준 거룩한 사명/ 가슴마다 강물되어 길이 흐르리/ 먼 길 떠난 당신은 늘 푸른 나무

그가 순직한 동료들을 생각하며 지은 시다. 그는 이 시를 볼 때마다 시민들을 구하기 위해 순직한 동료들의 숭고한 희생정신을 기린다.

그에게 가장 잊지 못할 사건은 1995년에 일어난 ‘삼풍백화점 붕괴 사건’이다. 당시 그는 강남 소방서 구조팀장으로 근무하고 있었다. 설계단계부터 시공, 감리, 관리의 모든 과정에서 부실이 드러난 삼풍백화점의 붕괴는 이미 예고된 일  이었다. 삼풍백화점 사건은 건국 이래 최악의 인재로 기록됐다.

“현장에 도착했을 땐 이미 앞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희뿌연 먼지가 가득했어요. 도착하자마자 차량 밑에 깔린 시민 2명을 동료들과 함께 구조했죠. 우리나라에서 어떻게 이런 사건이 일어날 수 있는 건지 가슴이 먹먹해지더라고요. 당시 사건 현장이 하도 커서 한 달간은 사체를 발굴해야 했어요. 붕괴위험이 있는 곳에서 구조작업을 하는 와중에도 시민들을 구조해야 된다는 생각으로 버텼죠.”

이 사건을 계기로 그는 안전의 중요성을 절실히 느꼈다. 안전의식이 전혀 없던 시공자들 때문에 벌어진 사건이었기 때문이다.

“우리나라는 70년대부터 고속성장에만 주력하느라 안전에 대한 인식이 미미했어요. 오직 개발만 중요시 여겼죠. 그러다보니 성수대교와 와우 아파트 붕괴사건이 발생한 거에요. 우리나라 국민들의 대부분은 안전 불감증이 있어 큰 문제에요. 이제는 안전의식을 가지고 실천해야 돼요.”

 

운율로 되살아나는 삶

수많은 생명을 구해온 그의 인생. 정년퇴직이 다가오면서 그는 은퇴 시점에 맞춰 인생이라는 조각을 퍼즐 맞추듯이 정리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경북 울진이 고향이에요. 서울에서 울진까지 한 번 가는데 4시간 30분이 걸려요. 울진까지 가는데 이렇게 오랜 시간이 걸리니까 차창 밖 풍경을 자주 구경하곤 해요. 고향에 갈 때마다 보는 풍경인데 한 번은 그것들이 낯설게 느껴지더라고요. 그러면서 문득 ‘사람이라면 언젠가는 세상을 떠나는데 글 한 편이라도 써놔야 되지 않을까’란 생각이 들더라고요.”

▲ <그의 저서「걸어오길 잘했어요」와「아름다운 도전」에는 그의 인생이 담겨있다>
이런 생각은 그의 글에 고스란히 담겨있다. 그가 쓴 수필과 시조, 동시 모두가 그의 인생이고 경험이다. 하나의 자서전인 셈이다.

“지금까지 해온 구조 활동이 글 쓰는데 많은 영향을 미쳤어요. 소방관 일을 하면서 겪었던 일화를 쓴 글이 많은 걸 보면 알 수 있죠. 어렸을 때 시골에서 부모님을 도와 농사를 지었던 경험도 좋은 소재가 됐고요. 고향, 가족, 어린시절,지금까지 했던 여행 등도 글 쓰는데 많은 도움이 됐어요.”

그는 49세 때부터 시를 쓰기 시작했다. 집필 활동을 시작하기에는 늦은 나이라고 생각할지도 모르지만 그는 실력을 인정받았다.

2002년에 공무원 문예대전에서 시조부문 최우수상을 받은 것을 시작으로 같은 대회에서 동시부문 최우수상, 동시문학에서 신인상을 수여 받았다.

“서울소방학교에 순직 소방관을 위한 추모탑이 있어요. 그곳에 내가 쓴 시가 새겨져 있죠. 또 내 시가 분당의 어느 뒷산에 있는 목판에 새겨져 있다고 하더라고요. 지인이 그곳을 지다가다가 우연히 발견했는데 「남한산성 수어장대」가 새겨져 있대요. 고향에서도 내가 쓴 시가 새겨지고 있어요. 그래서 상당히 자부심을 느끼고 있지요.”

그는 뒤늦게 맺은 문학과의 인연을 계속 이어갈 생각이다. 그의 머릿속은 쓰고 싶은 글들로 가득하다.

▲ <글을 사랑하는 사람답게 그의 사무실 한켠엔 책이 쌓여있다>
“한 2년 전에 스스로 다짐을 했어요. 직장에 대한 논문을 1년에 한 편씩, 한 달에는 시 한편, 수필 두 편씩 쓰기로. 하지만 앞으로 좀 더 노력해야 될 것 같아요. 요즘은 특히 어떤 주제로 글을 써야 하나 고민이 많아요. 인생에 대해서 쓸까 아니면 여행을 다녀온 뒤에 글을 쓸 것인가. 지금은 2년 정도 썼던 수필집을 낼 계획이에요. 또 전에 다녀왔던 인도 기행문도 낼 거고, 우리 소방 잡지에 15개월 정도 연재한 글도 엮어서 책으로 낼까 하는 생각도 가지고 있어요.”

그는 소방관 일을 하면서 글에 대한 열정으로 9년 전 뒤늦게 한국방송통신대학에 입학했다. 대학에서 국어국문학을 전공한 뒤에는 우리학교 행정자치대학원에 입학했다.  늦게 시작한 집필 활동은 그의 학구열을 불타오르게 했다.

“요즘 들어 인생을 아름답게 마무리 하고 싶다는 생각을 많이 해요. 정년퇴임을 앞두고 있어서 그런가 봐요. 저는 인생의 아름다운 마무리란 자기 글을 써서 후세 사람들에게 남기는 것이라고 봐요. ‘나’라는 사람이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도록 말이에요. 젊은 친구들도 이런저런 글을 써보고 뚜렷한 목표를 세워 이를 실천하는 자세를 가졌으면 좋겠어요."                                                                        

사진 박욱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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