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을 견생에 바치다
인생을 견생에 바치다
  • 박욱진 기자
  • 승인 2011.09.17
  • 호수 134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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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발과 네 발의 행복한 반려, 이웅종<이삭애견훈련소> 소장

TV동물농장의 감초로 널리 알려진 이웅종 소장. 그는 ‘이삭애견훈련소’의 대표다. 그가 훈련사가 되겠다고 했을 때만 해도 주위사람들은 한참 일할 나이에 보신탕 키우러 간다면서 무시하기도 했다. 하지만 아이가 학교에 가듯이 이제 애견도 학교에 가는 시대가 왔다. 애견도 단순히 애완동물을 넘어 인생을 같이 살아가는 삶의 동반자가 된 것이다. 일생을 같이 보내는 만큼 잘못된 것이 있다면 고쳐주고, 애견의 재능을 키워줄 필요가 있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계속 빠지다, 개에 쏙 빠지다

이 소장이 개와 깊은 인연을 맺게 된 것은 고등학교를 진학한 후였다. 그는 방학만 되면 서울에 있는 고모부 댁에 놀러가곤 했다. 그의 고모부 자택엔 ‘아끼다’라는 일본품종견이 있었는데 보는 순간 첫눈에 반했다. 고모부는 그가 개를 좋아하는 모습을 보고 마침 아끼다 견사(개를 전문적으로 번식시키는 곳)를 운영하는 친구에게 그를 소개했다. 아끼다를 키우고 싶던 그는 필사적으로 돈을 벌었다. 결국 아끼다 암컷 한 마리를 분양 받을 수 있었다.

“아끼다를 키우면서 점점 개에 대한 애착이 강해졌어요. 꿈같은 얘기지만 견사를 운영하겠다고 생각했죠. 그런데 견사를 운영하자니 비용이 엄청나더라고요. 부지도 많이 필요했고요. 그러다 군대에 갔죠. 군견병으로 복무하며 훈련을 본격적으로 배우게 됐습니다. ‘와! 개가 훈련을 저렇게 잘 받을 수 있구나’ 감탄하며 애견훈련사가 되겠다고 진로를 결정했죠.”

애견훈련사가 되기 위한 정보를 찾으려 했으나 방법이 전무했다. 지금처럼 인터넷이나 동호회가 활성화 되지도 않은 시대였다. 하루는 우체국에 가서 팔도 전화번호부를 뽑아들고 전국의 애견훈련소를 뒤졌다. 한참을 뒤져 찾아보니 전국에 훈련소가 6개 있었다. 막무가내로 수원에 있는 이삭애견훈련소에 찾아가 견습생이 됐던 그는 지금 애견훈련소를 이끄는 소장이다.

“훈련사라는 직업을 선택하려면 단순히 개를 좋아만 해서는 안됩니다. 개에 미치지 않으면 힘들어요. 사실 고된 하루일과보다 부담되는 건 자신과의 싸움입니다. 훈련프로그램을 스스로 개발해서 개들이 지니고 있는 소질을 끌어내야 되거든요. 미쳐서 깊이 파지 않으면 훈련소 왔다가 한 두 달 안에 다 도망가 버립니다. 실제로도 그런 경우가 허다해요. 확신이 없으면 하지 말아야 해요.”

세 살 버릇 여든까지 간다고 개들도 유년기에 악습관을 바로 잡아야 한다. 인간처럼 성견이 되면 가치관이 생겨 바로 잡아주기 어렵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소장은 사실 유년기에 훈련시키는 것보다 중요한 것이 있다고 한다. 그만이 가지고 있는 훈련비책이 있는 것일까.

“특별한 방법이 있다기보다는 누구나 다 훈련을 통해 애견의 문제점을 고칠 수 있다고 얘기합니다. 단지 전 그 사람들 보다 조금 더 깊이 파고들었을 뿐이죠. 제가 애견을 교정하는 방법은 개에게 있는 것이 아니라 견주에게 있습니다. 개들의 잘못된 습관은 견주의 행동에서 비롯돼요. 견주의  잘못된 행동을 이해시키고 개가 그런 버릇을 가질 수 밖에 없던 이유를 설명합니다. 견주가 바뀌어야 개가 바뀌는 거죠.”


사랑만큼 책임 
                                                                                    
▲ 이 소장과 훈련견 '조로'의 원반던지기 훈련이 한창이다.

얼마 전 공사 중이던 인부들이 주변에 있던 개가 시끄럽다고 학대한 사건이 벌어졌다. ‘광화문 소망이’ 사건이다. 소망이는 비록 목숨을 구했지만 평생 장애를 안고 살아가게 됐다. 주위에서 이같은 애견 문제(애견 학대, 화학적거세, 성대제거 수술, 유기견)가 많이 발생하고 있다. 늘어난 애견에 대한 관심이 잘못된 방향으로 변질된 것이다. 특히 유기견 문제의 경우 1년에 버려지는 강아지 수가 10만 마리가 넘는데, 유기견 보호소에 있다 입양되지 못한 강아지의 경우 결국 안락사 되고 만다. 인간의 이기심에 죄 없는 개들이 희생되고 있다.

“요즘 유기견 보호소가 늘어나고 있는데 그건 절대 대비책이 아닙니다. 유기견 보호소가 늘어나면 늘어날수록 유기견들은 더 많아집니다. 중요한 건 인식의 변화에요. 개를 처음 기르는 사람들 중엔 개를 좋아만 했지 어떻게 길러야하는지 모르는 사람이 많아요. 가령 TV에서 예쁜 개를 보고 순간 끌려서 덜컥 분양받는 사람이 있어요. 대소변처리, 목욕, 먹이챙기기, 운동시키기 같은 의무는 뒷전이고요. 이런 의무를 귀찮아 하다보니 길에 버려지는 개들이 많아지는 거죠. 반려동물을 기를 사람들은 책임이란 단어를 깊게 새겼으면 해요.”

이 소장은 유기견 보호소 같은 미봉책 보다는 정부나 단체에게 각 지역별로 애견운동장을 설치하고 견주들의 에티켓교육을 활성화 시켜야한다고 말한다.

“애견운동장은 만남의 공간이잖아요. 개들에게 자연스럽게 사회성 교육이 될 수 있어요. 그런데 운동장에서 개를 놀게 해주고 싶어도 자신의 개가 말썽을 부린다면 운동장에 못 들어가잖아요. 그럼 견주는 애견이 들어갈 수 있도록 훈련을 시켜야 하겠죠. 그럼 애견 교육수준도 높아지고요. 또한 애견인들에게 에티켓 교육을 받게 하는 프로그램을 확충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라고 생각해요. 이런 방법이라면 애견문제가 줄어들 것이라 봅니다.”


희로애견

▲ 조로가 이 소장의 지시에 따라 장애물을 뛰어넘고 있다.
이 소장은 개 덕분에 장가도 갔다. 그처럼 훈련사인 부인에게 골든리트리버 ‘엔젤’을 선물하면서부터 인연을 쌓았다. 이 인연은 결혼까지 이어졌다. 훈련소에서 치러진 결혼식에서 그가 아끼는 세퍼드 ‘이쏘’가 그의 아내에게 부케를 물어다 준 것도 그에겐 잊을 수 없는 기억이다. 살림 장만도 전부 훈련시합에서 받은 상품으로 했다고 한다. 애견과 20년 이상을 동고동락 하다보니 희로애락이 진하게 묻어있다고 한다.

“세퍼드 '이쏘'가 가장 기억에 남아요. 훈련시합 최고 난이도 과정에서 챔피언에 오르면서 지금의 제가 있게 해줬어요. 그런데 여느 아침과 다름없이 같이 훈련하고 뛰어 놀았는데 점심때 쯤 땅을 파더라고요. 계속 땅을 파더니 움직이질 않아. 저녁때 보니까 자기가 판 구덩이에 들어가서 죽어있더라고요. 지금 돌이켜보면 아마 자기가 묻힐 자리를 직접 만들어 놓고 간 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어요.”

이 소장은 한 때 사냥견 훈련을 부탁받기도 했다. 큰 돈을 벌 수 있는 기회였지만 그는 이 제의를 받아 들일 수 없었다. 도저히 개가 다른 동물들을 죽이고 입에 피를 묻히고 있는 모습을 볼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에게 있어 개는 더 이상 짐승이 아닌 자식같은 존재가 된 것이다. 얼마 전에는 개에게 물려 인대가 끊어져 병원신세를 지기도 했지만 그는 개가 마냥 사랑스럽기만 하다.

“역시 제게 개란 있다는 것만으로도 행복한 존재에요. 개를 동반자라고 여기는 사람들이 있잖아요. 저도 마찬가지입니다. 보고 있으면 행복하고 웃음짓게 만드는 존재니까 기쁘거나 슬프거나 개를 바라보면서 나도 위안을 얻어요. 같이 가족처럼 살아가는 거죠.”

사진 류민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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