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질에 다가가면 자유로워질 것이다
본질에 다가가면 자유로워질 것이다
  • 박욱진 기자
  • 승인 2011.08.31
  • 호수 134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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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는게 즐겁다는 행복한 깨달음, 보경스님

각자의 삶과 분주한 차들이 휘돌아 나가는 광화문. 그 옆엔 도심 속 사찰 법련사가 자리잡고 있다. 문 밖의 세상 돌아가는 소리와 판이하게 사찰의 내부는 시간이 멈춘 듯 적막만이 가득했다. 기다려야 한다고 해서 잠시 앉았다. 절 특유의 분위기와 타들어가는 향 냄새에 취해 까무룩 잠들 무렵 스님의 목소리가 들렸다.


얽매이지 않기위해

▲ 보경스님 오른편에 있는 그림은 지혜를 상징하는 문수보살이다. 보살은 성인이 아니라 어린아이의 모습일 때도 있다. 스님이 어린아이처럼 맑게 웃고 있다.

‘조용한 구도자’를 미리 상상했던걸까. 보경스님과의 첫 만남은 다소 어색한 경험이었다. 파르스름하니 깎은 머리와 잿빛 승복은 분명 세속과의 괴리감을 자아냈지만 둥근 얼굴과 수더분한 웃음은 영락없는 옆집아저씨의 그것이었기 때문이다. 세상에 재미를 찾지 못해 떠났다는 말에 오히려 그와 시대를 같이 살아가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세상을 살려면 세상일이 재미가 있어야 하잖아요. 밖에서 살려면 직업이란 것도 있어야하고 결혼도 해야 되는데 세상일이 흥미롭지가 않더라고. 내가 평생을 바쳐 할 만한 일이 무엇이 있을까 고민했는데 와닿는 게 없었어요. 내가 고등학교 때부터 불교를 접했거든요. 이 세계(불도)를 알고 나니까 자유로웠어요. 출가한 이유도 세상의 모든 굴레로부터 자유롭게 살고 싶어서였던 것 같아요.”

그는 고등학교 시절 불교학생회 활동을 하며 불도에 몸을 담기 시작했다. 고등학교 졸업 후 송광사에서 은사 현호스님의 도움으로 출가해 지금은 송광사 서울 분원인 법련사에서 주지의 소임을 다하고 있다. 승려의 길을 걷는다는 것은 직업의 선택이 아닌 삶의 모습을 선택하는 것이기에 굳센 결심이 필요하다. 승려의 길을 선택하기까지 본인도 많은 어려움이 있었겠지만 부모님과 마찰도 있었을 것 같다. 계를 받는 일 자체가 속세와 인연을 끊는 일이기 때문이다.

“누구나 원치는 않죠. 스님 같은 경우 다른 종교인과 외형부터 완전히 다르잖아요. 전혀 다른 길을 간다는 게 심적으로 큰 부담이 되셨을 것 같아요. 그런데 그 당시에 어머니께서 산에 꽃이 피고 열매가 맺고 곡식도 쌓여있는 꿈을 참 많이 꾸셨대요. 내가 출가하겠다고 이야기하니까 어머니께서 ‘아 너는 산으로 가야 잘될 사람이겠구나’하시면서 말리지 않고 보내셨죠.”

어디선가 출가를 할 때 99%의 마음으로도 출가하면 안 된다고 들었다. 출가하고자 하는 마음에서 단 1%라도 부족하면 결국 그 1%에 번뇌가 쌓여 산을 내려가기 때문이다. 그는 일생 중 가장 큰 번뇌가 제대하고 난 뒤 다시 승가에 돌아왔을 때 찾아왔다고 회상했다.

“군대에서 바쁜 생활을 하다가 승가의 생활로 돌아오니 공허해졌어요. 같이 말을 나눌 또래가 있지도 않고. 이런 말이 있어요. 산중무력일(山中無曆一)이다. 산중에는 날짜와 시간이 없다는 말입니다. 한번은 서향의 뒷마루에 앉아 있었는데 아무리 기다려도 해가 지지 않더라고. 그때 고민이 들더군요. 내가 이 맛도 색도 없는 세계에서 평생을 살 수 있을까 생각하니 무섭더라고요. 시간이 두려웠어요.”

그는 꼬박 일주일을 고민했다. 너무 무력한 자신이 한심해 미칠 것 같아 잠깐 여행을 다녀오기로 했다. 광주에서 부산으로 가는 가장 느린 완행열차에 몸을 맡겼다. 자동차를 타면 한시간이 걸리는 광주와 순천 사이의 거리가 아무리 자다깨다를 반복해도 좁혀지지 않았다.

“시간이 느려서 나온 여행인데 느리디 느린 완행열차를 탔잖아요. 이게 복장이 터지는 거라(웃음). 얼마나 답답해요. 내가 느꼈던 답답한 시간보다 더 느리니 못살겠더라고. 그 순간 머리에 정리가 되더라고. 내가 느끼던 시간은 별게 아니었구나. 그 순간 마음을 얻고 순천역에서 내려서 송광사까지 걸어갔어요. 더 큰 문제를 만나니 작은 문제는 아무것도 아니게 된거죠. 달리는 말은 뒤를 돌아보지 않는다고 그때부터 정진하며 살았죠.”


매 순간 본질에 다다르고
보경스님은 스승께 ‘하루를 살아도 천년의 마음으로 살라’라는 가르침을 받았다. 순간순간을 진실한 마음으로 살라는 것이다. ‘내일 지구가 멸망한다 해도 한 그루 나무를 심겠다’는 스피노자의 말처럼 내 삶은 여기 있으니 지금 충실하면 된다고 설명한다. 당장 오늘 저녁  일도 모르는데 내일을 걱정하는 것은 기우다.

“부처님의 가르침이 그래요. 과거는 지나간 것이니 더 이상 연연하지 말고, 오지 않은 미래를 고민하지 말고 지금 네가 잘할 수 있는 일을 하라. 그것도 즐겁게 하라. 최근에 신도 하나가 하루에 4시간만 자고 공부한대요. 미련한 거죠. 공부가 즐거우면 자라고 해도 안잘 거에요. 이건 잠하고 싸우는 거지 공부하곤 관계가 없는 거잖아요. 이치가 이와 같아요. 자기가 하는 일이 즐겁다면 모든 번뇌를 초극할 수 있어요. 본질에 들어가야 되는데 사람들은 본질을 피하려 하죠. 불속에 들어가면 어떨 것 같아요. 불속에 뛰어든 사람은 뜨거움이 없어요. 속으로 들어가지 않으니 뜨거운 거에요.”

불도는 생이 고통 속에 차있다고 말한다. 쇠기둥을 금으로 칠한다고 금이 되는 건 아닌 것처럼 본질은 변하지 않는데 인간은 끊임없이 욕망을 부리고 여기에서 고통이 생긴다. 고통을 줄이려면 욕망을 절제해야 할텐데 방법이 없는지 물었다.

“욕망을 이해하기는 어려우니 무리하게 이해하려 하기보단 배움의 즐거움을 느끼라는 거죠. 잘 살고 싶고 맘에 드는 이성도 만나고 싶잖아요. 이러한 것들이 오히려 삶의 자극이 돼 잘 살 수 있게 되는 거죠. 세상을 너무 단정짓지 말았으면 해요. 젊을 땐 일단은 모든 것을 긍정적으로 봐요. 실패를 두려워않고 과감하게 문제 속으로 뛰어들어가는 패기가 중요해요. 욕망에 위축되지 말아요. 난 연인들이 손잡고 가끔 안기도 하는 모습을 보면 참 아름다워. 하고싶은대로 하는 건 젊은이의 특권이니까요. 젊으니까 실패해도 돌아올 수 있는 거에요. 다만 모든 것에서 배우려는 자세는 놓지 않아야 하죠. 좋고 나쁨이 모두 스승이 될 수 있어요. 자신을 믿을 수 있으면 돼요.”


긴 호흡으로 살아가길
차 한 잔으로 시작된 인터뷰는 찻주전자가 세 번 식을 정도가 되자 마무리됐다. 우문현답이 많았다. 아쉬운 마음을 남기며 자리에서 일어나니 스님이 입구까지 나와 배웅했다. 두 손을 마주잡고 자주 놀러오라 하시는 모습에서 자식을 걱정하는 노부의 모습이 언뜻 겹쳐보였다.

“삶은 영원한 과정인 것이죠. 항상 부족하다 느끼지만 내가 세상에서 얻고자 하는 것은 이미 이 세상에 있습니다. 그렇기에 사소한 희비, 조그만 성패에 연연하지 않고 삶을 긴 호흡으로 살았으면 합니다.”
마지막으로 그가 한 말이다. 인터뷰가 끝나고 돌아가는 동안 생각했다. 아무래도 오늘은 빈손으로 가 한아름 선물을 받고 온 기분이다.

사진 류민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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