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그닥 타그닥, 경쾌한 말발굽소리는 그에게서
타그닥 타그닥, 경쾌한 말발굽소리는 그에게서
  • 류민하 기자
  • 승인 2011.05.28
  • 호수 134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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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 구두 디자이너, 장제사 이은상

우여곡절 장제사

동물로선 특이하게도, 말은 신발을 신는다. 말이 신는 신발을 바로 ‘편자’라고 부른다. 말발굽을 보호하기 위해 덧대어 박는 쇠다. 장제사는 말의 상태에 따라 알맞게 편자를 만들어 갈아끼우는 일을 한다. 최근들어 많이 알려지고는 있지만 아직도 대부분은 생소해하는 직업이다.

이은상 씨는 장제사 일을 시작한지 10여 년 됐다. 물론 이 정도면 장제사 중에서도 베테랑에 속하지만 예순이 넘은 나이를 고려해보면 생각보단 경력이 짧은 것도 같다.

“나는 원래 이걸 하던 사람이 아냐. 원래 꽃 기르고 공예품 만드는 거 좋아하는 사람이었어. 군대에 있었는데 보직문제가 꼬여가지고 장제일을 배우기 시작한거지. 정적인 것만 하던 사람보고 움직이는 말한테 신발을 신기라니. 쉽지 않은 이야기지. 아무튼 결정된 이후로 마사회 출근을 열이틀 동안 했어. 근데 장제사들이 가르쳐 주냐고. 자기 기술인데. 시작은 했는데 가르쳐 주는 사람이 하나도 없었어. 그래도 혼자 시행착오를 거듭하다 보니까 어느새 기술자가 되어있더라고. 한 번 실수하면 큰일나니까 배운 건 안까먹었지.”

원래 섬세하고 손재주가 뛰어났던 그는 혼자 장제일을 배워갔다. 그가 장제일은 ‘자기와의 싸움’이라고 했다. 20~30kg에 이르는 말 다리를 들고 작업해야 하고 어느 때는 발길질에 맞아 나가떨어진 적도 있었다. 그도 처음 2년 정도까진 말발굽에 걷어차여 갈빗대가 두 번이나 나갔다. 다쳤다고 드러누울 수도 없었다. 말 주인들의 신뢰에 금이 가면 더 이상 일이 들어오지 않기 때문이다.

“아들이 직장에서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나 봐. 나는 노는 거 같은데도 저보다 돈을 더 버니까 배워볼까 하는 것 같더라고. 관심있으면 한번 따라오라고 했지. 근데 그날따라 아주 지랄같은 말이 하나 걸린거야. 걷어차여 가지고 내가 나가떨어지는걸 아들이 봤지. 집에 돌아오는데 이 놈이 말을 한마디도 안해. 그러다가 그러더라고. 오늘 끝이라고, 당장 그만두라고. 일 배워보겠다고 졸졸 따라나선 놈이 펄펄 뛰는거야, 하지말라고. 아버지 내가 먹여살릴테니까 하지말라고.”


목덜미에 손을 대면

어떤 면에서 장제사의 일은 대장장이 같기도 하고 언뜻 외과의사가 떠오르기도 한다. 장제일은 삭제, 조제, 장제의 세 과정으로 나뉜다. 말과 발굽의 상태를 확인하고 죽은 신경들을 깎아내는 삭제가 끝나면 발굽에 맞는 편자를 만들어야 한다. 편자는 그의 차에 있는 이동식 화로에서 만든다. 차가 꼭 움직이는 대장간 같다.

“편자를 달궈서 말발굽에 대면 타는 냄새가 나서 다들 역하다고 하는데 나는 구수해. 허허.”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보니 어느새 발 한쪽의 작업이 끝났다. 그가 일어나서 다른 쪽 발로 옮겨가는데 말이 그쪽 다리를 슬그머니 들었다.

“말이 원래 겁이 많은 동물이라고. 장제사를 신뢰하지 못하면 이렇게 알아서 발을 들지 못해. 내가 몇 년동안 이렇게 말의 상태를 보면서 일해왔으니 가능한거야. 장제사 일은 말하고의 교감이 제일 중요해.”

교감. 그냥 하는 말이 아니었다. 작업 중 말주인이 손님들과 말을 타려고 세 마리 중 두 마리를 끌고나가자 남은 한 마리가 불안해하기 시작했다. 남은 녀석은 ‘히히힝’ 하고 계속 울부짖었다. 자기를 묶고있는 줄을 풀려고 거칠게 움직이던 말은 그가 편자를 구워와서 목덜미를 쓰다듬어주자 차분해졌다. 더군다나 아무리 말발굽에 감각이 없다지만 발에 못이 박히고 있는데도 잠자코 있는다는 것은 놀라웠다. 그의 말대로 말과의 교감이 뒷받침되어야 가능한 일처럼 보였다.

그가 오늘 맡은 세 마리 중 두 마리의 작업이 거의 끝나갔다. 미진하게 느껴져 보태고 싶은 말이 있으신지 여쭤봤다. 환갑이 넘은 나이에도 힘든 일을 하는 그였지만, 늙은 느낌이 전혀 들지 않는 정정한 그였지만 미래에 대한 꿈은 여느 중년과 같았다.

“앞으로 승마하는 사람들은 계속 많아질테니까 장제사 되고 싶어할 젊은 사람들은 많을거야. 대우도 좋아지겠지. 나는 힘 닿는데까지 일하다가 지리산 자락에 집 지어놓고 정원가꾸고 싶어. 거기서 좋아하는 차나 마시면서 살라고.”

글ㆍ사진 류민하 기자 rmh719@hanyang.ac.kr

▲ 이은상 씨가 편자를 부착한 뒤 마무리로 다듬는 작업을 하고있다.
▲ 그가 이동식 화로가 장착된 차에서 달군 편자를 두드려 모양을 잡고있다.
▲ 떼어낸 낡은 편자들과 발굽전용 오일통. 오일은 달군 편자로 말발굽을 지진 후 발굽을 보호하기 위해 발라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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